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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레코드로 음악을 들은 역사

Reconstructed from an article contributed at HiTEL Classical music forum(1994)

   이 글은 제가 음악에 접하기 시작한 유년기부터 지금까지 음악과 같이 살아 오면서 음악과 친해진 역정을 솔직히 기록한 것입니다. 다소 시시콜콜한 것까지 적었기 때문에 약간 지루하시겠지만, 다른 분께서도 이런 얘기를 해 주신다면 저도 보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올립니다.

   나는 음악을 어려서부터 피아노로 익혔지만, 피아노를 전공하는 사람들이 다 레코드를 열심히 사 모으면서 음악을 듣는 것은 물론 아니다. 아주 우연한 일이 있기 전에는 나도 레코드로 음악을 듣는 것에 대해선 거의 몰랐었다.
   
내가 레코드를 처음 들은 것은 집에 있던 판들이다. 오래 전에 부모님께서 사셨던 주제페 디 스테파노의 나폴리 민요집, '검은고양이 네로', 베르디의 '트라비아타'(일본 EMI 음반으로, 데 로스 앙헬레스와 세라핀의 연주다. 아직까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등의 음반을 들었다. 유명한 교향곡들만 모아 놓은 대도레코드에서 나온 LP도 있었다(지금 생각하면 물론 해적판 레코드였다 ^^). 거기서 나는 브루노 발터(Bruno Walter),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피에르 몽퇴(Pierre Monteux), 앙드레 클뤼탕스(André Cluytens) 등의 이름을 처음 알았다. 그런데 그 5장의 LP 속에는 베토벤 교향곡 5,9(카라얀/베를린 필하모닉, DG), 6(발터/콜럼비아 심포니, Sony), 하이든 교향곡 94,101(몽퇴/빈 필하모닉, Decca), 모차르트 교향곡 41(발터/콜럼비아 심포니, Sony),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클뤼탕스/필하모니아, EMI)은 있었지만 베토벤 교향곡 3번이 없었다. 그래서 아직도 화곡동에 있던 시절에 (내가 국교 3학년이 되기 전이다) 한스 슈미트-이세르슈테트/빈 필의 성음 라이선스 판(Decca)으로 아버지를 졸라 구했다. 이 판은 지금은 낡아서 버렸지만, 처음 산 판으로 열심히 들었다. 이 때는 무조건 외울 때까지 들었다. 들을 판도 얼마 없었을 뿐더러, 사실 그 때의 내 실력으로 그 방법 말고는 음악을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다음으로 산 판은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이다. 데이비스/런던 심포니(Philips)였는데, 그 때의 레코드 값이 세금 포함 1800원이었다(^^). 이 판도 닳을 때까지 들었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과 바이올린 협주곡 전부 6곡을 모았고,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브루흐의 스코틀랜드 환상곡이 붙은 캄폴리의 음반(Decca)을 샀다. 이 때는 내 돈으로 LP를 사는 일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만, 딱 한 번.... 잔돈만으로 거의 2000원 가량을 모은 돼지저금통을 털어서 /베를린 필하모닉의 모차르트 40, 41번 교향곡(DG)을 샀다. 401악장이 바로 그 음악이었을 줄이야.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은 모두 박하우스의 피아노, 슈미트-이세르슈테트/빈 필(Decca)의 것이었다. 아직까지도 나는 이 음반을 매우 좋아한다. 물론 낡아서 다시 구입해야 했지만.

   이 때까지는 외출할 때 아버지 어머니를 졸라서 판을 사던 아이적 시절이다. 본격적으로 내가 돈을 모아 사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때부터, 규칙적으로 용돈을 받기 시작하던 무렵이다. 그러니 85년부터인 셈인데, 여기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3월에 생일선물로 받은 이 순열 씨의 '베토벤 평전' 이다. 이 책은 내가 지금 말하자면 결코 좋은 평을 할 수는 없겠지만, 베토벤의 작품이 몇 종류나 되는지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알았다. 자그마치 opus 번호가 140정도까지나 되었고, 작품 번호가 없는 것은 그것보다 더 많았다. 그리고 맨 뒤에는 추천 레코드가 있었는데, 거기 나온 연주가의 이름 중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발터, 박하우스, , 켐프, 카라얀, 슈미트-이세르슈테트 뿐이었다. 그리고 EMI란 레코드 레이블에 이렇게 추천반이 많을 수가... 하지만 우리 나라에선 그 땐 원반이라도 사기 전엔 그림의 떡일 뿐인 레이블이었다.
   
어쨌건 내가 모르는 연주가들을 하나하나 동아 대백과 사전에서 뒤졌다. 파블로 카잘스, 자크 티보, 알프레드 코르토,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오토 클렘페러, 아르투르 슈나벨,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빌렘 멩겔베르크, 에트빈 피셔, 호로비츠, 피에르 푸르니에, 부다페스트 4중주단, 스메타나 4중주단 등 거장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런 유명한 판들이 그 때의 내 금전 사정으로 살 수 있는 라이선스 음반으로는 왜 이렇게 없단 말인지... 하기야 EMI의 음반이 오아시스 라이선스 테이프만으로 등장하던 때였으니 오죽했을까.

   일단 베토벤의 작품부터 철저히 사 모으기로 했다. 그 때의 내 용돈으로는 한 주일에 판 2장을 간신히 살 수 있었다. 그것도 학교에서 내가 극빈 생활(?)을 한다는 가정을 해야 말이다. 구닥다리 오디오로 방에서 파블로 카잘스와 루돌프 제르킨베토벤 첼로 소나타(Sony)를 듣던 기억이 선명하다. 이 판은 아직도 내 애장품 중 하나이다. 라살 4중주단의 베토벤 후기 현악 사중주(DG), 아마데우스 4중주단의 '라주모프스키'(DG) 도 이 때 산 것 중 하나이다. 3중 협주곡을 카라얀의 지휘와 소피-무터, 요요마, 젤처의 독주(DG)로 들으면서 밤이 늦어서 꾸벅꾸벅 졸던 기억이 난다.
   
베토벤은 그런 대로 샀지만, 다른 작곡가들의 곡은 전혀 모르는 셈이었다. 이모 댁에서 고전음악 추천반과 추천곡 5권을 통째로 빌려와서(아직 갖다 드리지 못했다... ... 몇 년 째인지..), 다른 작곡가들의 음반을 서서히 사기 시작했다. 칼 뵘 지휘의 '마술 피리'(DG) 를 사려 2주 동안 저녁에 라면만 먹어야 했다. 그리고 내가 판 사는데 기준 비슷한 역할을 해 준 것은 내가 고 2 때 재발매된 김원구 씨 편역의(원저는 일본에서 나왔다) '명반 2001' 이었다. 지금은 많은 음악 잡지를 참고할 수 있으나 그 때는 드물었으므로, 좋은 참고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책은 음반 소개의 면에서는 많이 낡았고(내 생각으로는 78년 이후의 녹음은 반영되지 않은 것 같다) 일본 LP 중심이라는 치명적 문제가 있으나, 아직도 곡 소개의 측면에서는 참고로 쓸 만하다.
   
어머니께서는 당연히 밥 대신 라면 먹으며 판 사는 것을 좋아하실 리가 없었으니, 나는 밀수 방법을 강구해야 했는데(^^), 우리 고등학교에서 아시안 게임 때 매스 게임에 출연하면서 받은 가방이 레코드를 눈에 안 띄게 해 준다는 것을 알았다(사실 LP의 부피와 무게는 상당하다는 것을 한 번에 50장씩 레코드를 운반해 본 사람은 누구나 잘 아실 것이다). 그 가방 안에 한 두 장씩 숨겨서 레코드를 집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이 시절에 산 판은 아직까지 많이 있다. 부다페스트 4중주단의 베토벤 후기 현악 4중주곡 전집(Sony), 브루노 발터의 베토벤, 슈베르트, 모차르트(link 1,2)(Sony)이 이 판들이다. 돈이 늘 부족했기 때문에, 절판이 잘 안 되는 성음 라이선스보다는 빨리 절판되는 지구레코드(Sony label)나 서울음반(Erato, RCA)의 것을 우선 샀다. 14일에 대학 발표에서 떨어진 것을 알자 오페라 아이다, 피가로의 결혼 등 세 세트를 왕창 사 들고 들어가 어머니가 놀라시던 기억이 선명하다.
   
재수 시절에도 돈 아껴서 물론 판을 우선 샀다. 종로학원에서 신나라의 종로 3가 지점은 가까왔으므로 주말에 자주 들렀다. 이 시기에 산 판은 페리어와 발터의 말러 '대지의 노래(Das Lied von Erde)'(Decca)말고 몇이 있다. 내 취향에 말러는 다소 맞지 않아서 이 판을 들을 기회가 지금 거의 없다는 것은 아깝다.
   
대학에 합격하자 아르바이트를 했으므로 거의 집의 눈치를 안 보고 판을 살 수 있게 되었다. 한 번에 가장 많이 판을 샀을 때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의 겨울이었는데, 라이선스 LP 30장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판 값이 2500원 하던 당시에는 7만원 조금 넘을 정도였다). 아르바이트에서 왕창 떼어서 종로 신나라에서 산 후 앞에 말한 가방에 넣고 집에 메고 들어갔다. 누나가 '미쳤구나~~~' 하던 게 아직 기억난다. 한 번에 LP 30장이라는 이 엉뚱한 기록은 아직 내가 깨지 못하고 있다. 다 듣는데만 3개월 넘게 걸린 것 같다.
   
오디오를 산 것은 대학교 1학년 초여름이었다. 속편하게 CDP까지 딸린 AIWA의 컴포넌트였다(지금은 그 때 이것을 산 것이 좀 후회된다). 12년 동안 주인에게 충실히 봉사한 이 오디오도 지금은 늙어서 갤갤거리고 있다(드디어 얼마 전 데크가 망가져서, 지금은 데크와 앰프를 다 갈아치는 바람에 스피커만 남아 있다). 이 오디오를 사면서 내 방에 집어넣었는데, 우겨야 했지만 절대 후회는 하지 않는다. 자기 방에 일단 오디오가 있어야 음악 들을 기회가 늘어나는 법이다.
   
이 때는 CD가 아직 싸지 않았다. 백화점 같은 곳에서는 어떤 종류건 거의 17000원씩 붙어 있을 때였으니...(이 글을 수정하는 지금은 이것보다 더 비싼 판들도 등장했다. 사실 좀 어이가 없다. 어차피 online shop에서 사므로 15000원보다 더 낼 일은 거의 없긴 하지만... ) 내가 처음 가진 CD는 오디오 사면서 잠실 롯데백화점에서 가져온 것인데, 호로비츠의 스카를라티 소나타집(Sony)이다. 한마디로 기막힌 아름다움을 지닌 연주이다. 비싼 판이라고 욕먹으면서 가져왔다. ^^ 그리고 겨울에 처음 내 돈 주고 CD를 샀는데, 오이스트라흐 연주, 오먼디/필라델피아의 차이코프스키와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Sony; 아직까지 규범으로 꼽힐 만한 훌륭한 연주다). 얼마 후에 아르바이트를 욕심 부려 둘 하면서부터 내가 CD를 사는 빈도가 급격히 늘어났다. 대신 저축은 거의 생각 못했지만.... 그 시기부터 다달이 5만원씩 내어서 1993년에 컴퓨터를 사고 통신 동호회 생활을 시작했으니, 시간만 있다면 아르바이트 많이 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지내다 보니, 지금은 참 판이 많아졌다. 그 중 특히 아끼는 것이라면 에트빈 피셔가 연주한 LP, 헬무트 발햐바흐 오르간곡 전집, 푸르트뱅글러의 녹음 등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아끼는 것은 물론이다. 내가 판을 산 만큼 다른 것을 못했다는 것을 나 자신이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술도 그만큼 못 먹었고, 아마 거의 소나타 한 대 값 정도는 판으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 내가 현재까지 solo라는 것을 최대한 활용(?)했다[이것은 98년 말까지의 이야기다. 결혼 후는 판을 사는 양상이 정말 많이 달라졌다. 아무래도 가정이 우선 아닐까?]. 아마 여자 친구가 생기면 돈이 훨씬 더 깨진다는 것을 경험 있으신 분은 다 아시리라 믿는다. 밥이나 술, 그리고 여러 돈 필요한 좋은 일들과 바꾼 것이나 다름없어서 그런지 더욱 애착이 간다.

   이렇게 음반이 쌓이니까, 음반을 고르는 데는 더욱 신중해졌다. 좋은 것을 고르지 않으면 묻혀버리기 일쑤다. 돈 낭비가 안 되려면 신중하게 판을 골라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자꾸 잘 아는 연주가의 판만 사는 경향이 늘어났다. 일단 실망은 안 할 테니까 말이다. 컴퓨터를 사고 나서는 시간 내서 음반 목록도 만들어 놓았고, 음악동아 별책 부록 식으로 정리해서 알아보기 쉽게 만들었다.
   
지금은 악보도 사거나 복사해 가면서 음악을 듣는다. 곡의 이해에 굉장히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이다. 어려운 곡이면 일단 나는 악보부터 구해 보는 습성이 생겼다. 이래서 전혀 재미 없던 곡도, 악보를 보고 나자 친해진 경우도 꽤 많다. 석사 시절에는 전공 논문을 한 30장 정도 복사하면서 악보는 약 80장 정도 복사해 오는 일이 많았다. 후배 하나가 거기서 날 보고 음대생인지 과 선배인지 의심했다고 나중에 얘기하던 것이 기억난다. 우리 학교 참고 열람실에 악보가 많은 것이 참 다행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하이텔 고전음악동호회의 연주 소모임 RACE에서 같이 연주할 수 있는 동료들을 만난 것이 매우 기뻤으며, 그 때까지 그다지 연주를 자주 하지 않던 나에게는 많은 보탬이 되었다. 이 자리에서 다시 감사를 표하고 싶다.
   
지금 이렇게 음악을 전공 이상으로 좋아하는 데 대해 그리 큰 후회는 없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으실 분들도 아마 음악을 매우 좋아하시기 때문에 여기 들어오셨을 줄로 믿는다. 내가 얼마나 음악을 좋아하는지는 정말 잘 모르겠다. 브루노 발터(Bruno Walter)의 말투를 빌자면, 아무리 같은 곡을 많이 듣더라도 새로운 기대를 거의 항상 갖고 들을 수 있다고 감히 얘기할 수 있다. 다른 분들도 아마 그러시리라 믿는다. 악보의 암시적인 측면이랄까... 그런 점이 얼마나 판을 살 때 내게 기대를 불어넣어주는지, 나를 그런 점에서 이해해 주시는 분은 적지 않을 것이다. 연주자가 바뀔 때마다 얼마나 악보의 새로운 점을 내게 깨닫게 해 주는지 모른다. 물론 실망도 하지만, 가끔 가다가 완전히 새로운 '악보 읽는 방법' 을 나에게 일깨워 주는 연주를 찾을 경우 정말 기쁘다. 그래서 같은 곡이라도 판을 계속 사는 것이리라. 음악과 책이 다른 것이 아마 그래서겠지.

   음악을 정말 좋아하시기를 여러분께 권하고 싶다. 음악감상이 여러분께 꾸준한 즐거움이 되신다면 그 이상 가는 기쁨을 더 이상 찾기 힘드실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음악으로 직업을 삼지 않아도 되는 아마추어 특유의 정열을 여러분께서 갖고 음악을 즐거움으로 대하시기 바란다.

(c) 1994, 2000~ , 이영록 ; 재인용하시려면 우선 제게 메일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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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 ; 3rd Oct.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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