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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연주는 무엇일까

Reconstructed from an article contributed at HiTEL Classical music forum(May 1997)

   고전음악에 관심을 가져서 음반을 모으다 보면, 아무래도 '명연' 또는 '명반'이라는 것에 부딪히죠. 처음 음반을 사는 분께서는 돈이 제한된 만큼, 아무래도 평이 좋은 음반부터 사시려고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 '명반' 이라는 것은 참으로 요상합니다. 일반 음악 잡지에 글을 쓰는 필자들이 말하는 '명반', 과연 그렇게 절대적으로 믿어도 될까요? 음악 잡지를 기준으로만 음반을 사시던 분께서는,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보시기를 바라며 이 글을 올립니다.

화두 1.

   화두 던져놓고 찌그러지기 전에 내가 그럴 자격이 있는가에 의문부터 제기하련다. 나는 지금 어느 음반 전문지(?)의 필자들 중 한 명이기 때문에, 필자 노릇을 하는 한 내 생각을 잣대 삼아 음반의 연주가 잘됐다 못됐다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지금은 완전히 이 분야 기고를 그만뒀습니다. ^^).

화두 2.

   고전음악 음반을 사서 듣는 사람 중 아마 98% 이상은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전공했다 하더라도, 그 넓은 음악의 연주 분야에서 자기 전공 외에는 전문적으로 평할 만큼 알기 힘든 법이다.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사람이 버순 연주기법에 대해 속속들이 알기란 어려울 것이다.

역설; 고전음악 음반을 평하는 '음반 전문가'는 대부분 그 분야의 '음악 전문가'라고는 볼 수 없다.

   결국, 대부분의 음반 평들은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의 연주에 대해서 왈가왈부하고 있는 셈이다.

화두 3.

   모든 고전음악의 연주는 서양 기보체계의 관례에 따른 악보에 의거한다. 잠시만 악보 아무거나 하나 꺼내 들고 보시기 바란다. 템포 지정으로 알레그로가 있건 아다지오가 있건, 강약 기호로 fff가 있건 ppp가 있건 상관없다. (카라얀의 말인데) 여러분이 그 악보를 연주하실 수 있다면, 템포를 정확히 얼마로 잡으실 것이며, fff를 정확히 몇 데시벨(db)의 음량으로 연주하실 것인가? 그리고 여러분이 일단 잡은 템포와 강약과 다르게 다른 사람이 연주하는 것을 들으실 때 그것이 절대적으로 틀렸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다. 작곡가가 템포를 메트로놈 기호로 지정해 놓았다고 하더라도, 그 템포대로 정확히 연주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베토벤 교향곡의 메트로놈 템포를 제대로 지키는 지휘자는 거의 없으며, 내가 음반으로 경험하는 한은 바르토크처럼 지시가 철저한 경우도 연주가들은 그다지 꼼꼼하게 지킨다고는 할 수 없다. 이런 예는 무수히 많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20세기까지의 관례적인 고전음악 기보법은 상대적인 표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예외는 20세기의 Musique concrète 뿐이다).

역설; 악보를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는 일반적으로 악보에 없다.

Bartok String Quartets ; Emerson Quartet(DG 423 657-2, from DG homepage). 현악 4중주곡 제 5번의 Philharmonia Score(licensed by Universal)에 있는 바르토크 자신의 템포 및 연주 시간 지정과 비교할 때, 내가 가진 7종의 음반 중에서는 전체적으로 이 음반이 가장 작곡가의 지정에 가깝다(그런데도 악장 별로 최소 5초 이상 차가 있다). 헝가리(DG), 칠링기리안(Hyperion), 베그(Astrée), 노박(Philips) 등은 차이가 훨씬 크다.

  1악장 2악장 3악장 4악장 5악장 총 시간  
악보 지시 7'04½" 5'19½" 4'36" 4'17½" 6'21½" 27'39" 1934년 작곡
헝가리 sq. 7'44" 6'31" 4'56" 5'00" 7'03" 31'14" 1961, DG
노박 sq. 7'40" 5'33" 5'32" 5'12" 7'41" 31'38" 1965, Philips
베그 sq. 7'10" 6'08" 4'56" 5'04" 7'02" 30'20" 1972, Astrée
알반 베르크 sq. 7'37" 5'31" 4'46" 4'44" 6'45" 29'23" 1983~86, EMI
에머슨 sq. 7'20" 5'52" 4'56" 4'47" 6'12" 29'07" 1988, DG
칠링기리안 sq. 7'24" 5'36" 4'59" 4'47" 6'59" 29'45" 1988, Chandos
뉴 부다페스트 sq. 7'38" 6'22" 5'30" 5'35" 7'10" 32'15" 1992, Hyperion

화두 4.

   악보가 지시하지 않은 부분을 채우는 것은 전적으로 연주자의 몫이며, 그만큼 연주자의 선택의 가능성은 무한히 많다. 그 가능성 중에서 연주자는 자신의 경험과 교육 및 연주장의 상황에 맞추어 한 가지를 골라낸다. 그 이유는 아마 연주자 자신도 명확히 다 설명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즉흥 및 본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의문; 연주하는 사람 자신도 다 모르는데 비평가는 다 설명할 수 있을까.

내 자신이 제기한 의문에 대해 내가 생각해오던 바를 몇 가지 붙인다.

화두 1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로 했으니 일단 젖혀 놓기로 하자. ^^

화두 2에 대해

   연주기법을 잘 몰라도 평을 할 수 있다는 비판이 아마 틀림없이 나올 것이다. 나도 여기에 대해 전면적으로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속속들이 궤뚫고 얘기하는' 수준까지 올라가기에는 어느 정도 연주 기법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 예를 들자. 드뷔시와 라벨의 피아노 작품들이 갖는(내 생각으로는 특히 드뷔시의 경우) 매력은, 피아노 자체의 음향과 특히 페달링에 대단히 많이 의존한다(페달을 피아노의 영혼이라고들 부르는데, 드뷔시의 작품들은 페달링을 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작품의 연주를 페달링에 대해 기초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이 평한다면 말이 되겠는가?

화두 3에 대해

   어차피 악보를 보면서 연주를 듣는다고 하더라도, 지금 들리는 음악의 세부 사항의 대부분은 악보에 없는 것들이다. 따라서 어떤 연주가 잘한다 아니다를 말할 수 있으려면, 비평가 자신이 악보에 없는 것들을 어느 정도 완성하고 말해야 하는 셈이다. 즉 비평가 자신이 악보를 보면서 곡의 전체를 파악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Another Question ;
현재 우리 나라의 '음반 전문가'중 자신이 악보의 빈 곳을 자신있게 채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물론 나도 그럴 능력이 없다. 다만 어느 작품의 음반을 듣고 말할 때, 그 작품의 많은 다른 음반들을 들어온 것을 참조하면서 비교하고 '평(?)'할 뿐인데, 이것은 엄격히 말해서 비평이라고 할 수 없다. 비교(또는 대조)라고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화두 4에 대해

   곡 전체를 구축할 때 연주자가 미리 생각한 설계에 크게 의존하는지 아니면 즉흥 및 본능에 크게 의존하는지는 전적으로 '연주자 맘대로'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청중에게 달려 있고, 어디까지나 청중 개개인의 주관이 작용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예술은 과학만큼 객관성이 강하지 않으니까.

[덧붙임]

   우리 나라에서 음반을 평하는 분들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조금도 없다. 단 음악 잡지의 '음반 평'의 한계를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기에 이런 도전적인 글을 적는다.
   내 생각에 현재 음반 평들은 '초보자를 위한 안내' 이상으로 여기면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크다고 생각한다. A라는 사람에게 x라는 음반이 듣기 좋았다고 B라는 사람에게도 좋아야 한다는 법은 음악의 어디에도 없다. 만약 A가 소위 '음반 비평가'고, B가 처음 고전음악을 듣는 사람이었다고 하자. 그러면 B는 자신의 귀를 탓해야 할 것인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남이 좋았다고 말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싫었던 것을 부정한다면 도대체 음악을 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 자신이 싫은데 좋다고 해가면서 싫은 음반을 계속 들어야 할 것인가? 음악을 고문으로 만드는 일이다.

   내가 제언하고 싶은 것은 다음 몇 가지이다. 이하 '음반 비평가'를 '리뷰어'로, 기사를 '리뷰'로 칭한다.

  1. 현재 우리 나라 음악 잡지에 글을 쓰시는 분들께서 좀 더 리뷰에 정성을 기울여서 객관성을 부여해 주셨으면 한다. 많은 리뷰어들이 아주 성심껏 글을 쓰시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곡의 한 부분이 날아간 음반을 듣고서도 리뷰에 언급 한 마디 없다면 아무래도 문제 아닐까?
    ※ 물론 나 자신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내가 쓴 글이 항상 객관성이 충분하다고 할 수 없을테니 말이다. 모르고 저지른 실수가 있다면, 내가 쓴 리뷰를 보신 분들에게 다시 머리 숙여 사과드리는 바이며, 항상 독자의 제언에 귀를 기울이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드린다(지금은 안 쓰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후유~).
  2. 리뷰어들이 무심코 하는 한 마디에 수십, 수백명의 초보자들이 음반 선택을 바꿀 수도 있음을 리뷰어들께서는 인식하고 계셨으면 한다. 이를 생각하면, 리뷰어의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연주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자신이 열성을 기울여서 녹음한 음반이 (아마 자신보다 연주 측면에서 대부분 아래일) 리뷰어의 한 마디에 경원당한다면 열받지 않을까? 전공자가 귀를 기울이는, 즉 우대받는 리뷰를 쓰기 위해 리뷰어는 노력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리뷰를 읽는 사람이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더라도 리뷰어의 말에 수긍을 할 정도의 논리 및 객관성이 있어야 한다.
  3. 리뷰를 읽고 음반 선택의 기준으로 삼으려는 분들께서는 리뷰의 관점이 어떤지를 보시기를 부탁드린다. 결론만 보고 선택을 했다가 자신의 취향에 반대되는 음반이 걸릴 수 있다. 리뷰에서 관점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 리뷰를 신뢰할 필요가 없을 것이며, 리뷰 읽는 사람이 취향이 결정되어 있지 않은 경우 어느 음반을 사서 듣더라도 상관 없다. 일단 감상자의 취향이 있어야 연주가 거기 맞거나 거슬리거나 할 수 있지, 취향이 없는데 자신이 듣기에 좋고 나쁜 연주가 있을 리가 없다.
  4. 작곡가도 자신의 곡을 보는 시각이 시간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나 궁금하신 분께서는, 한 하이텔 이용자의 질문에 내가 답한 글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음반을 고르시는 분들을 위한 제언 하나 더]

   물론, 보편 타당한 명연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리뷰어의 단 몇 마디 말과 주관 없는 레코드 애호가의 리뷰어에 대한 맹종에서 비롯될 수는 없으며, 앞으로 절대 그런 일이 있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기에는 한 레코드를 만든 성실한 연주가 및 성실한 태도로 그 레코드를 듣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너무나 안타깝다. 중요한 것은 레코드 안에 든 음악 및 그것을 듣는 감상자이지, 레코드에 붙은 이름과 그것이 최고인지 아는 잘못된 리뷰어의 말이 아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좀 이름이 나 있는 레이블에 녹음한 연주자라면 누구라도 연주에서는 일반 감상자보다 대부분 몇 수 위이다. 감상자보다 곡에 대해 수십 배는 더 잘 안다.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감상자는 그대로 연주자를 믿어도 된다. 그 연주가 리뷰어가 좋지 않은 평을 했다고 나빠질 리가 없지 않겠는가?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있을지 몰라도 '객관적으로 틀렸다'는 아주 드물다. 음악이 원래 그렇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리뷰어의 말만 믿고 "에이 이 판 잘못 샀다"고 말하면서 선입관을 갖고 연주를 듣거나, 또 다른 악보 읽는 방법을 제시해 주는 다른 녹음을 배제한다면 이는 감상자의 정신 건강에 하등의 이로울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래도 모자란다면, 저명한 미술사가(美術史家) E.곰브리치가 한 말을 기억하자. "고금 어느 시대든지 간에, 비평가들은 대부분 거짓말장이임이 증명되고 있다.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비난하던 비평가들이, 비난하는 대신에 그 작품을 샀다면 아마 큰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자신의 의견 없이 '이 음반의 명연이 뭐더라~~~'하면서 소위 명연을 수백, 수천 장 모으고 좋아하는 사람보다, 단 한 장의 음반을 닳을 때까지 듣고 그 음악이 어떻다고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음악을 훨씬 잘 즐기는 사람이다.

   고전음악을 듣고 즐거워야 할 사람은 항상 감상자 자신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Mahler ; Das Lied von der Erde(Decca 466 576-2, from Decca homepage). 캐슬린 페리어(Kathleen Ferrier)와 브루노 발터/빈 필의 콤비로, 50년 전부터 명연으로 정평이 나 있다.

(c) 1997, 2000~ , 이영록 ; 링크는 자유지만, 인용하시려면 우선 제게 메일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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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 ; 27th Apr.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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