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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치는 남자

Reconstructed from an article contributed at HiTEL Classical music forum(1994)

   제목을 이렇게 만든 이유는 단지 나 자신이 피아노 연주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실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1976년 겨울부터, 아무리 적게 잡아도 내 여가 시간의 1/3 정도는 피아노 아니면 피아노 음악(레코드로 듣는)이 차지한 것 같다. 그 동안 이 악기에 내가 들인 시간은 지금 내 보잘 것 없는 실력으로 바뀌어졌다. 조금 더 열심히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아쉬움이 남는 것은 과거를 생각할 때 모두들 느끼는 점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피아노를 처음 만난 것은 197612(어쩌면 11월이나, 다음해 1,2월일지도 모르겠다. 글 쓴 시점에서 18년 전 일이니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이다. 동기는 단순했다. 다른 아이들처럼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서 간 것이다. 그리고 첨엔 내 기억으로는 집에 피아노가 없었기 때문에 학원에서 피아노를 칠 수밖에 없었고, 얼마 후에 집에 피아노가 들어와서야 집에서도 칠 수 있었다.
   
그 때는 내가 피아노를 꼭 쳐야겠다는 열의가 있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지루하지는 않았으므로 계속 쳤다. 나보다 조금 먼저 누나도 피아노를 쳤는데(누나는 지금은 그만뒀다), 특별히 내가 더 피아노를 많이 쳤다는 것도 아니었고, 그다지 눈에 띄는 재능 같은 것도 없었다(그거야 지금도 물론 마찬가지지만...). 서울 화곡동에서 그 자그마한 야산 아래 있는 집에서, 근처의 '슈만 피아노집'까지 걸어가는 것도 내가 등교길을 빼면 가장 멀리 나가는 나들이였다. 그 선생님의 인상은 안경을 끼셨다는 것을 빼면 이젠 거의 기억이 없다. 어떻게 배웠는지도 잘 모르겠다.

   19783월 나는 송파구로 이사왔다. 동시에 선생님도 바뀌었다. 그 선생님에게 배운지 한 2년 쯤 되어서 과외 금지조치(80년이니 아마 맞겠지?)가 내려져서 계속 배우기 힘들게 되었다. 그 바람에 잠시 쉬다가 다른 선생님께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그 때 내가 산 악보 중의 하나가 베토벤 교향곡의 피아노 악보였는데, 물론 그 때의 실력으로는 매우 치기 힘든 곡이었다(지금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그런 식으로 이런 저런 선생님께 배웠던 것으로 생각한다.
   
정말 좀 '제대로' 배운 것은 아마 중학교 때의 3년 뿐이었을 것이다. 그 선생님께서는 내 기억엔 아마 서울대 대학원을 다니시고 지금은 아직 외국에 계신지 아니면 귀국하셨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그 선생님께서는 - 지금 생각하니 - 내게 '프레이징(phrasing)' 의 개념을 가르쳐 주려고 애쓰셨다. 그런데 나는 그 때 그것을 완전히 이해할 만한 음악적인 능력이 거의 없어서, 희미하게밖에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 둔한 제자를 만 2년 동안이나 별 말 없이 가르쳐 주셨고, 제자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신 노력이 보통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선생님께서 내게 가르쳐 주신 곡은 베토벤의 소나타 일부, 그리고 쇼팽과 슈베르트였다. 쇼팽은 주로 연습곡을 배웠는데, 4,5,8,9,13,21번이었고, 슈베르트는 즉흥곡 2번이었다. 내가 자주 레슨을 가지 못해서 그렇게 많이 배우지는 못했으나, 이 때의 교육이 지금 내 피아노 실력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 때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정말 선생님은 잘 만났던 것이 분명하다. 단 제자가 재질이 없어서 충분히 교육을 못 받았지만 말이다.

   중학교 3학년 여름을 마지막으로 내 정식 음악 교육은 끝났다. 그 이후는 지금까지 이어지는 기나긴 '제멋대로' 의 시대이다. 고등학교 때는 개념없이 내가 좋아하는 곡이라면 무엇이나 다 치던 때였다(아직도 다소는 그렇지만). 쇼팽 연습곡을 정식으로 배웠던 것 말고 좀 쉬운 곡 몇을 골라 연습하기도 하고, 바흐 평균율을 여러 곡 치기도 했으며, 이 시기부터 듣기 시작한 베토벤의 실내악을 연습하기도 하던 시대였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 '크로이처' 가 악보가 머리 속에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이 때의 덕이다. op.97 '대공'을 연습하던 것도 이 때의 일로, 무의식적으로 실내악에 대한 친근감을 가진 것은 이런 '무지한' 연습 덕도 클 것이다. 이 시기는 사실 비효율적으로 연습을 하긴 했지만 결코 무가치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일단 내 음악 시야를 독주곡 밖으로도 넓혔고, 실내악의 피아노 사용법에 대해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이런 것을 깨달은 것은 물론 한참 뒤이다).
   
대학교 들어와서는 주로 바흐, 베토벤, 슈베르트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었던 것 같다. 조그만 서클 음악회에서 바흐의 곡만 약 20분 연주하기도 하고, 베토벤 후기 소나타도 멋대로 연습할 기회도 있었다. 일단 '널널한' 대학교 학부 생활 덕에 내 손가락은 많이 단련되었다. 이 때는 다소 기교적인 곡들도 연습했는데, 이것은 내 손가락에 부족한 기술적인 훈련을 많이 메꿔 줬다. 쇼팽 연습곡은 좋아질 때 연습했으며, 바흐에서는 다성부의 취급법을 많이 깨달을 수 있었고, 베토벤과 슈베르트는 마음이 쏠리는 대로 손가락으로 내보내는 데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서, 이 작곡가들 외의 다른 사람들의 작품도 점차 연습하기 시작했다. 드뷔시를 접한 것은 4학년 말 때이며,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을 연습하기도 했다(이 곡을 섣불리 여기지 말기를 권해드리고 싶다. 정말 '골때리는' 곡이다). 이 곡을 오래 연습하면서 피아노의 기술적 취급에 대해서 얻은 바가 많았다. 슈만의 '어린이 정경'을 연습한 것은 3학년 때의 일인데, 내 손가락에 잘 맞았지만 지금은 거의 연습하지 않는다. '너무 아름답기 때문' 이다. 도대체 이런 느낌을 갖는 것이 몇번째인지 모르겠다. 모차르트의 대부분의 소나타도 아주 좋아하는 K.331을 빼면, 지금 전혀 거들떠보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나는 아마 평생을 가도 모차르트의 곡에서 기쁨을 느끼면서 속 편하게 피아노를 치긴 어려울 것이다. 드뷔시의 전주곡집이나 '어린이 차지' 에서는 새로운 피아니즘을 알아차렸다. 처음 칠 때는 잘 몰랐으나, 그의 새로운 음악 어법(語法)이나 독특한 피아노의 울림은 아주 매력이 있었다. 프랑크의 곡은 좋아는 했지만 내가 기술이 너무 부족했다. 브람스는 좀 늦게야 아름다움을 깨달은 곡들인데, op.118, 79등의 곡을 좋아한다. 내용이 매우 어려워서 잘 표현할 자신은 전혀 없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즐겨서 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근에야 개척한 것은 하이텔 고전음악동호회의 소모임 RACE에서 친해진 친구들과 연주하면서 기회가 늘어난 실내악곡들이다. 특히 19996브람스 피아노 5중주곡 f단조 op.34의 전곡을 연주한 것은, 힘든 연습 과정이나 실제 경험에서나 나와 같이 연주한 사람들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이렇게 피아노를 멋대로 치는 동안에 기술과 '요령' 이 진보한 것은 사실이다. 내 손가락에 맞는 손가락 번호 쓰기를 어느 정도 터득했고, 아직은 그다지 능숙하지 못하지만 페달 쓰기와 레가토가 거의 무의식적으로 연결이 된다. 사실 이 둘만 해도 얼마나 어려운지 잘 모를 지경이다. 레코드의 자연스러운 레가토는 아직 나에게는 꿈일 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팔과 손가락에서 무리한 긴장을 없애는 것인데, 전에 비하면 많이 줄어들었다. 물론 장시간 쳐도 거의 피로가 없을 정도까지 될려면 아직 멀었지만.

   지금 내가 생각하기로는, 내 피아노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감정 표현과 기술이다. 스케일과 아르페지오 등의 기초 기술을 연습한지가 언젠지 기억이 안 날 정도다. 이런 것들은 피아노 전공자들은 쉽게 다루지만 나는 나올 때마다 연습을 해야 한다. 기초적으로 연습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감정 표현도 문제인데, 내가 느끼는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어리벙하는 경우가 많다. '건조하다' '밋밋하다' 는 말을 자주 듣는 것은 모두 이 때문이다. 피아노 연주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느끼는 바를 표현해야 하겠으나, 내 성격상 잘 그러지 못하는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이다. 음악을 전공하는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그들과 성격이 차이가 많다는 것을 내 스스로 많이 느낀다. 내가 성격이 원래 덤덤해서일까? 의식적으로 오랫동안 나는 매사에 덤덤하고 감정 표현을 많이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는데, 이것이 좋은 점이 많았지만, 피아노를 자유롭게 치는 데는 상당히 방해가 되는 점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기획했던 19943월의 '슈베르트 리사이틀' 에서 전공자 둘의 반주를 직접 맡으면서 깨달은 바가 정말 많았다. 노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는지. 가수들의 노래가 내 피아노 소리처럼 그렇게 덤덤하다면 나 자신도 아마 답답하다고 했을지 모르겠다. 실력 떨어지는 반주자의 반주를 묵묵히 견뎌 준 친구 둘에게 정말로 미안했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피아노와 같이 살아온 24년 동안의 세월을 잠깐 돌이켜 보았다. 전공으로는 피아노와 전연 무관하면서도 끈질기게 여가 시간엔 이 악기에 매달려 같이 지낸 기간이 나에겐 전혀 지겹지 않았다. 앞으로도 아마 큰 사고라도 나지 않는 한 이 편안한 악기와 평생 살아갈 것이다. 왜냐고? 그저 이 악기하고 같이 있는 시간이 나에겐 정말 편안하며 기쁘기 때문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음악이 편안하지 않다면 어떻게 계속 음악과 같이 지낼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내가 아마추어란 것이 이 악기와 계속 지내는 데 크게 도움을 줄 것이다. 일단 이 악기로 밥을 벌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청중은 거의 나 혼자 뿐이니, 최소한 '나만' 만족하면 되는 것이다(그런데 이것조차도 쉽지 않다). 그러니 전공자들의 부담은 오죽하겠는가. 눈을 말똥말똥 뜨고 돈을 내고 온 가학적이기까지 한 청중들을 만족시켜야 하니...

   글을 이 정도로 맺으면서, 심심풀이로 가끔 피아노를 치시는 다른 분들께 말하고 싶다.

'아무리 못 쳐도 좋다. 여러분들이 열심히 피아노를 치셔야 연주회장에서 들을 수 있는 피아노 연주의 수준이 올라간다.'

   피아노 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다른 분들도 피아노 연주를 듣거나 직접 하시는 것이 중요한 기쁨이 되셨으면 한다.

(c) 1994, 2000~, 이영록 ; 링크는 자유지만, 인용하시려면 우선 제게 메일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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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 ; 3rd Oct.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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