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2) ; 이영록의 음악 페이지

English

(답 1) 악보의 불확정성

Reconstructed from an article contributed at HiTEL Classical music forum(8th Feb. 1999)

제 글 중 하나가 다소 이 논점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리뷰에 관한 글이지만, 비슷한 얘기가 많으니 참고하시고요...

지금 고전음악은 작곡가께서 거의 돌아가신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에, 어차피 '얼마나 작곡가의 의도에 충실했느냐'는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단, 작곡 당시의 일반적인 관습이나 작곡가의 작곡 습관 등은 알 수 있는데, 이런 점을 파고드는 학문이 '악보 비평연구'입니다. 이런 것이 궁금하시다면 많이 낡은 책이기는 하지만, 서스튼 다트(Thurston Dart)의 '음악해석론'인가 하는 책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이런 추구 방향은 원전연주로 귀착하게 되어 있죠.
그렇다고 원전연주만이 유일한 해결책일까요? 아닙니다. 원전 연주도 작곡가의 의도를 추적하는 단지 한 방법에 불과합니다. 바흐의 건반악기 음악은 여러 가지 악기를 염두에 두고 작곡했지만 그 중에 피아노는 없죠(있다고 꼭 고집한다면, 아마 '음악에 바침'의 3성 리체르카레나 6성 리체르카레 정도입니다만, 스타일상으로 볼 때 100% 피아노를 위한 음악은 아니므로... 없다고 해야겠죠 ^^). 그렇다고 에트빈 피셔(Edwin Fischer)나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Sviatoslav Richter)의 유명한 WTC 음반이 완전히 갖다 버려야 할 판이겠습니까? 베토벤 선생은 주로 빈식 피아노 - 음량이 약하지만 터치가 가볍고 섬세한 소리를 낼 수 있던 - 를 위해 작곡을 했습니다만, 현대 피아노의 강력한 음량과 다채로운 터치를 듣고 나면 '브라보!'라 외칠지 누가 알겠습니까? 작곡 방법이 악기에 많이 의존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대 악기의 장점을 살리며 옛날 곡들을 연주하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으며, 작곡가가 살아 있더라도 전혀 의외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겠죠.

이야기가 옆길로 새나간 감이 있는데, 저도 들은 얘기라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강 적어 올립니다. 어느 음악학자가 쓴 책이 있는데, 이 책의 의도는 '낭만파 음악이야말로 지금까지 정말 멋대로 왜곡되어 연주되어 왔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랍니다. 이 사람이 한 일은, 교향곡 4곡인가 - 그 중에 브람스 1번과 차이코프스키 '비창'이 있습니다 - 를 프레이징과 강약 따위를 철저히 분석하여, 기존 음반들과 비교하여 어떤 음반이 가장 작곡가의 의도를 충실히 지켰는가를 논증했답니다. 각 곡마다 음반을 최소 10여종 이상 분석했다니 정말 대단하지요? 가장 작곡자의 의도를 지킨 것으로, 브람스 1번에서 토스카니니가 선택된 것은 그리 놀랍지는 않겠죠? 하지만 '비창'에서는 놀랍게도, 푸르트뱅글러가 꼽혔답니다. 푸르트뱅글러의 1938년 비창 녹음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푸르트뱅글러를 꼽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그의 음반 중 손꼽을 정도로 템포의 변동이 압도적인 음반이 선택되었다니, 정말 의외죠). 하지만 이렇게 꼽힌 음반들도 다 '그나마 좀 나은' 수준이고, 절대적으로 보면 형편 없이 악보를 많이 무시했다는 것이 그가 내린 결론입니다. 조금만 덧붙이죠. 그가 정말 모범적으로 악보를 존중한다고 추천한 사람은 베르나르트 하이팅크(Bernard Haitink)입니다. 그런데 하이팅크는 '최고의 명연이다'는 음반이 거의 없는 지휘자 아닙니까? 보통 우리 나라 음악 애호가 중에서는 하이팅크는 '무개성 호연'의 전형적인 케이스로 꼽히는 사람으로, 별로 인기가 없죠. 반면 그가 정말 악보를 무시한다고 깎아내린 사람은 콜린 데이비스(Colin Davis)였다고 합니다. 일반 음반 감상자 중에, 이 두 사람이 그만큼이나 차가 난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물론 저도 모릅니다. 하하 ^^)? 차라리 데이비스가 하이팅크보다 인기는 더한 편 아닐까요? ^^ 그리고, 그 음악학자는 '이렇게 연주해야 작곡가의 의도에 충실한 것이다'고 음반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 But... who cares? Who will choose his records as the best on earth?

이 정도 되었다면.... '작곡가의 의도와 소위 명연이라는 것은 아무 상관도 없다'고 말해도 할 말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을 감히 밝힌다면, 연주는 2차원의 악보에서 3차원의 음악을 재생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악보만 따라가서는 진짜 훌륭한 음악을 만들지 못한다는 점에 해답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졸필로 적어 놓았지만, 일반적으로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가는 악보에 다 나와 있지 않습니다. 푸르트뱅글러의 그 매력적인 템포 변동, 거의 모두 악보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20세기 최고의 지휘자로 꼽히지 않습니까? 알프레드 코르토(Alfred Cortot)의 연주는, 현대 원전 비평의 입장에서 보면 말도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연주가 완전히 레코드 가게에서 다 사라지겠습니까(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습니다. 알프레드 브렌델 왈, '나는 쇼팽에서는 코르토의 개념에 완전히 감금되어 있다. 쇼팽 연주의 유일무이한 방법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고 할 정도니 알 만 하죠)? 즉, 연주에서는 '매력과 개별성'이 필수이므로, 악보에 없는 부분으로 자신의 개별성을 주장할 능력이 있어야 진짜 훌륭한 연주가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제 얘기는 악보를 내놓고 무시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악보를 존중하면서도 개성을 주장할 여지는 많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며, 악보만 따라가는 개성없는 연주에 지쳤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보통 리뷰어들이 어떻게 연주가 좋고 나쁘고 하는 것을 평가하는지는, 제가 앞에서 말한 두 글에 대강 다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리라 믿습니다. 참고로, 제 경우에는 악보에 충실 3 - 제가 그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경우에 한해서요 - 하고, 매력과 개성 7입니다. 외국에는 진짜 전문가가 리뷰어를 하고 있는 예도 상당히 있는데(물론 우리 나라에도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저야 물론 아닙니다!!! ^^), 그런 사람들끼리도 같은 음반을 놓고 의견이 굉장히 엇갈리는 일이 많다고 하니, 학식 갖고도 무엇이 명연인지는 해결이 안 되는가 봅니다. 본질적으로, 자기 취향을 잣대로 판단하다 보니까 그럴 수밖에 없죠.

이제, 감히 제 관점으로 몇 가지 해답을 해 보겠습니다. 제 답이 최종적일 리도 없고 그렇게 제가 주장하고 있지 않음을 고려해 주셔요. ^^ 이 부분은 '걸고 넘어지자'는 얘기가 결코 아니라, '같은 사실을 놓고도 이런 의견도 있을 수 있다' 정도로 받아들여 주시고,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악보를 출판하는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작곡가가 지시한 템포를 무시하고 다른 템포로 바꾸질 않나, 있지도 않는 트릴을 무자비하게 집어넣지를 않나, 페달법을 바꾸질 않나.... 바흐 인벤션의 악보를 보십시오. 원래 악보에 없는 샘여림표가 존재하고 꾸밈음과 트릴이 난무하는 그 악보를 말입니다.

이런 해악은 요즘 많이 줄었습니다. 좋은 악보는 최대한 작곡가의 의지를 반영하려고 노력하니까요. 단, 어느 것이 좋은 악보인지는 연주자가 선택해야 합니다. 바흐 인벤션의 부조니 편집판을 보신 모양인데, 어차피 피아노를 위해서 '편곡된 악보'이니 셈여림표가 있는 점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제 생각으로는, 어느 시점에 출판된 악보는 '가장 쉽게, 그리고 가장 올바르게 오해 없이 연주될 수 있어야' 좋은 악보입니다. 꾸밈음이나 트릴 같은 것은 요즘 출판된 시점에 맞게 표기되어야 하니, 원전의 의도에 적당하기만 하면 원전의 표기를 꼭 고집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바흐의 파사칼리아 c단조는, 배렌라이터 판(Bärenreiter) 원전 악보를 보면 내림표가 2개 뿐입니다. A음에는 계속 임시표가 붙어 있습니다. 저는 아예 전부 조표를 내림표 3개로 적는 데 찬성합니다(물론 원전 표기는 언급해야죠). 오해 없지 않습니까?

쇼스타코비치 교향곡의 최고 지휘자는 누가 뭐라고 해도 '므라빈스키'입니다. 이것은 쇼스타코비치 자신도 인정한 것이니까요. 므라빈스키는 자신이 쇼스타코비치 교향곡을 잘 지휘할 수 있던 까닭을 같은 시대에 같은 소련에서, 같은 사상속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합니다.

적당한 예인지는 모르겠는데, 쇼스타코비치가 나중에 서방에서 출판한 자서전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통설을 뒤집는 얘기가 한둘이 아니랩니다. 이 자서전에 따라 하이팅크가 내놓은 교향곡 전집(Decca)은 음악 애호가들을 깜작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누가....? ^^ 므라빈스키에 대한 쇼스타코비치의 설명은 일면을 밝혀 줄 수는 있지만 전부는 아니라는 점이 제 의견입니다.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은 또 어떻습니까. 협주곡 1번의 대표적 명연이라고 불리워지는 음반들의 템포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리스트의 제자였던 한 피아니스트이자 교수였던 사람(이름이 기억나질 않군요)은 이들 템포보다 한없이 느리게 연주를 했다고 하는데, 이건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그 사람은 에밀 폰 자우어(Emil von Sauer)입니다. 역시 리스트의 제자인 바인가르트너(Felix Weingartner)와 함께 1938년 HMV(EMI)에 리스트 협주곡 2곡을 남겼죠. 지금 Pearl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느린 템포로 이름 높은 음반이죠. 하지만, 리히테르가 콘드라신(Kyril Kondrashin)과 협연한 음반(Philips)을 리스트가 들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지 않습니까? 좋다고 할지 나쁘다고 할지 그건 리스트만이 알 수 있죠. ^^
프로코피에프는 리히테르를 매우 아끼고, 피아노 소나타 7번과 9번은 아예 그에게 헌정했습니다. 리히테르의 7번 녹음(Melodiya)은 명연으로 평가되고 있죠. 그런데, 블라디미르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는 미국에서 이 곡의 악보를 구할 수 있게 되자마자 1945년 RCA에서 녹음한 후 SP 음반을 소련으로 보냈죠. 프로코피에프는 이 연주를 듣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연주 중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를 불러 '그게 아니다'고 할 정도로 깐깐한 사람인데요). 문제는, 리히테르와 호로비츠의 녹음을 지금 들어 보면 그야말로 같은 곡이 이렇게 다르게 들릴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천양지차라는 점입니다. 작곡자도 믿을 수 없다? 프로코피에프는 천하의 변덕장이?


▲ 리히테르 연주의 프로코피에 프 소나타 7번 음반(Melodiya)	▲ 호로비츠의 같은 곡 음반 (RCA)

소위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베토벤, 멘델스존 2번 (1번이라고 해야 하나요?), 브람스, 차이코프스키의 것이 그것들이죠.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이라면 모든 바이올린 협주곡 중에서 제일 뛰어난 4곡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그 잣대는 무엇입니까. 무엇을 기준으로 이런 우스광스러운 짓을 했는지 답답합니다. 그 잣대라는 것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렇다면 후대에 나온 바이올린 협주곡들이 그 곡들보다 뛰어나지 못해서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이 계속 저 4곡으로 존재하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후에 아무리 뛰어난 바이올린 협주곡이 나온다 할지라도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은 저 4곡으로 영원히 불리워질 것입니다. 물론 저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이거야말로, 정말 우스꽝스런 일입니다. 제가 꼽는다면 베토벤, 브람스, 멘델스존과 바르토크의 것을 꼽을 텐데 말입니다. ^^

Let's understand professionals

English

Created ; 7th Apr. 2001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