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다음 글은 하이텔의 고전음악동호회의 게시판에 한 회원께서 쓰셨던 글입니다. 지금 그 분께서도 여기 이 글을 올리는 데 허락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런 의문을 가지시는 분이 많으리라 생각해서 참고 삼아 올려 놓습니다.
음악은 과연 어떤 자세로 접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여러 날을 생각해 보았지만 도저히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과연 지금 우리가 접해 있는 소위 말하는 '올바른 음악 감상법'내지는 '올바른 연주법'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며 그것들이 정당한가 하는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계시는 음악을 저보다 더 오랜 동안 많이 접해오셨던 분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흔히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의
대표적 명반으로 라흐마니노프가 직접
연주한 음반(RCA)을 많이 뽑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라흐마니노프는 그 연주를
별로 탐탁치 않게 여겼습니다. 이유인즉, '음반사에서 지정해
준 시간 안에 곡을 끝마쳐야 했기 때문에
라흐마니노프 자신의 의도보다 빠르게
연주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후대 사람들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의 표준적이며 동시에
최고의 연주로 손꼽고 있는 것은 무슨
조화일까요? 그렇다고 후대의 연주자들이
이 곡을 어물쩡하게 연주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이것은 작곡자가 직접 연주를
했다는 데에서 오는 선입견이 작용해서
그런 것일까요? 라흐마니노프는 이 연주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제가 들어도 이
연주는 정말 멋진 연주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군요. 12종의 연주를 들어보았지만
정말 최고에 속하는 음반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이 마지막 구절에
의문이 가지 않을 수가 없군요. '이 최고에 속하는
음반'이라는 것이 나만의 생각인지 아니면
모두다 공감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얘기 하지요...
이 곡은
누구누구의 연주가 최고라고 말입니다. 그것은 어떻게
판단할까요? 아마도 작곡가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는다면 확실한 대답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과연 곡을
잘 연주하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작곡가를
잘 이해한다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입증할 것입니까? 살아있는
작곡가의 곡이라면 모르지만 이미 죽은
작곡가의 곡은 어쩔 것입니까? 이건
전적으로는 아닐지라도 8~90%이상이 후대
사람들 마음대로가 아닐까요? 작곡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연주를 해도 후대
사람들의 마음에 들면 '명연'이라는 소리를
듣고 그 반대면 '졸연'으로 취급받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물론 100%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악보를 출판하는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작곡가가
지시한 템포를 무시하고 다른 템포로
바꾸질 않나, 있지도 않는 트릴을
무자비하게 집어넣지를 않나, 페달법을
바꾸질 않나.... 쇼팽은 리스트의 연주를
부러워 했지만 리스트가 자신의 곡에 많은
꾸밈음을 넣어서 더 화려하게 연주하는
것은 굉장히 싫어했다고 합니다. 바흐
인벤션의 악보를 보십시오. 원전에 없는
셈여림표가 존재하고 꾸밈음과 트릴이
난무하는 그 악보를 말입니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의 최고 지휘자는 누가 뭐라고 해도 '므라빈스키'입니다. 이것은 쇼스타코비치 자신도 인정한 것이니까요. 므라빈스키는 자신이 쇼스타코비치 교향곡을 잘 지휘할 수 있던 까닭을 같은 시대에 같은 소련에서, 같은 사상속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합니다. 베토벤 교향곡의 최고 지휘자는 보통 푸르트뱅글러와 토스카니니를 꼽습니다. 그들은 베토벤이 죽은지 60년이 지나서야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더군다나 그들의 연주 스타일은 전혀 다릅니다. 이 상반된 두 명의 지휘자를 동급으로 간주하는 것은 또 무엇 때문입니까.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은 또 어떻습니까. 협주곡 1번의 대표적 명연이라고 불리워지는 음반들의 템포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리스트의 제자였던 한 피아니스트이자 교수였던 사람(이름이 기억나질 않군요)은 이들 템포보다 한없이 느리게 연주를 했다고 하는데, 이건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듣는 음악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그 연주들....그것들이 과연 우리의 생각대로 흘러가고 평가되는 것인지, 아니면 작곡가의 의도대로 평가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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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vgeny Mravinsky(photo; DG) | ▲ Arturo Toscanini(photo; Robert Hupka) | ▲ Wilhelm Furtwängler(photo; Kane) |
소위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베토벤, 멘델스존 2번(1번이라고 해야 하나요?), 브람스, 차이코프스키의 것이 그것들이죠.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이라면 모든 바이올린 협주곡 중에서 제일 뛰어난 4곡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그 잣대는 무엇입니까. 무엇을 기준으로 이런 우스꽝스러운 짓을 했는지 답답합니다. 그 잣대라는 것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렇다면 후대에 나온 바이올린 협주곡들이 그 곡들보다 뛰어나지 못해서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이 계속 저 4곡으로 존재하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후에 아무리 뛰어난 바이올린 협주곡이 나온다 할지라도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은 저 4곡으로 영원히 불리워질 것입니다. 물론 저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글을 쓰다보니 완전 잡담같은 글이 되었군요(워낙에 글솜씨가 없어서.). 더 쓸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여러분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아무쪼록 많은 글들을 올려주시어 저의 혼란스러운 머리를 좀 시원하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좋은 음악생활 되세요...
Created ; 7th Apr.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