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알다시피, 리히테르는 프로코피에프의 소나타 6,7,9번을 연주회장에서 초연했으며(8번은 길렐스가 초연), 9번은 헌정받을 정도로 작곡자에게 인정받았다. 이 음반에서 그의 연주는 크게 보아 그의 전형적인 개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강한 집중력과, 1악장의 알레그로와 안단티노의 템포의 충분한 대비(폴리니가 빠른 템포로 일관하는 것과는 다르다), 심각한 느린 악장, 전혀 흔들림 없이 질주하는 끝악장은 누가 들어도 리히테르임을 금방 알 수 있을 정도이다.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폴리니나, 반대편 극점인 호로비츠에 비해 보편적인 해석으로 인정하기에 전혀 거부감이 없다. 녹음 데이터는 1958년이지만, 같은 해의 '전람회의 그림'보다 더 상태가 좋아 60년대 초에 녹음된 것일 수도 있다(Eurodisc의 옛 발매를 보면 1964년으로 되어 있다. 아마 이 편이 맞을 것이다).
   반면 플레트뇨프의 신보를 내가 들을 때마다 느끼는 점으로는, 그의 개성은 서정과 아름다운 음색이지 거장적인 큰 스케일은 아니란 것이다. 그 자신도 이를 잘 아는 듯하며, 얼마 전의 베토벤 변주곡집(DG)보다 더욱 서정에 치우친 연주를 들려 준다. 이 경향의 해석으로는 소름이 오싹 끼치는 호로비츠만큼 흡인력이 있지는 않지만, 철저히 선율을 강조하는 연주로 아주 듣기 수월하면서도 아름답다. 전체적으로 비교한 7개의 음반 중 가장 템포가 느리지만, 3악장에서는 늘어지지 않도록 당겨 표현한 설정도 좋은 편이다. 하지만, 솔직이 이런 해석은 7번보다는 2번이나 8번에 더 어울리며, 곡으로도 플레트뇨프의 개성에 잘 맞는 것 같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며, 호로비츠의 연주를 작곡자가 듣고 격찬한 것을 보면 작곡자 자신은 두 가지 해석 방법을 모두 용인했음을 알 수 있다.
   8번의 온화한 연주는 아마 이 곡을 처음 접근하는 분에게는 리히테르의 강한 1962년 녹음(DG)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다. DG의 4D 녹음은 그의 깨끗한 음향을 잘 살려 주고 있다.

   스크리아빈의 곡에서 리히테르는 그의 경탄할 만한 적응력을 과시하는데, 화려한 음색과 대담한 다이나믹은 그의 높은 연주력을 확인시켜 주며, 호로비츠의 찬란한 낭만적인 연주들과 충분히 겨룰 수 있다. 단 강주(ff)에서 갈라지는 녹음이 불만이며, 미아스코프스키의 곡은 음질이 더 나빠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다. 프로코피에프만으로는 마땅히 9점 이상이나, 다른 곡의 녹음 상태 때문에 점수를 깎인 음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