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2) 작곡가라도 '변덕스러울' 자유는 있다
Reconstructed from an article contributed at HiTEL Classical music forum(8th Feb. 1999)
아래 글과 같은 종류의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작곡가라고 해도 자신의 곡에 대한 개념을 바꾸는 것은 흔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생각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연주자도 마찬가지고요.
발터 기제킹(Walter Gieseking)이 파리에서 드뷔시 전주곡 1집의 10번 '가라앉은 성당(La cathédral engloutie)'을 연주했는데, 어느 평론가가 드뷔시 자신의 레코딩(Welte Mignon)의 템포 변화와 다르다고 그를 비난했다. 그러자 기제킹은 "그 사람은 자신이 틀리고 내가 맞다는 것을 모르는군"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기제킹은 제자들에게 이 부분을 가르칠 때면, "드뷔시도 이 부분을 잘못 연주했다"고 드뷔시의 자작자연에 대해 언급했다고 한다.
참고음반 ; 드뷔시 전주곡집, 기제킹(p)(EMI Références)
Track 10, 'La Cathédral engloutie', 처음 'Doux et fluide' 부분
- 리햐르트 슈트라우스는 푸르트뱅글러, 뵘(Karl Böhm), 카라얀 모두를 잘 알고 지냈으
며, 이 세 사람은 그의 명해석자로 꼽힌다. 세 명 모두 '틸 오일렌시피겔', '돈 환', '죽음과 정화'를 녹음했는데, 최소한 '틸'과 '돈 환'은 세 사람이 3인 3색이다. 그렇게 맛이 다를 수가 없다.
참고음반 ; 푸르트뱅글러/빈 필하모닉(EMI Références)
뵘/베를린 필하모닉(DG)
카라얀/베를린 필하모닉(DG originals)
- 카라얀이 어느 오케스트라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연습한 일이 있었다. 어느 부분에서 오케스트라가 지나치게 빨리 연주해서 "좀 늦춰 주십시오. 16분음표 아닙니까?"하고 말하자, 한 단원이 일어나서 "작곡자 자신이 우리와 이 곡을 연주할 때 그렇게 주문하셨습니다"고 말했다. 카라얀이 슈트라우스에게 그 부분에 대해 직접 물었는데, 역시 "예. 저는 그 때 그 부분이 더 빨리 연주되기를 원했습니다"는 대답을 들었다. 카라얀의 생각은 "그럼 작곡 당시의 작곡가의 생각이 옳은가? 아니면 최근 연주할 때의 작곡가의 생각이 옳은가?".....
- 베토벤이 자기 작품에 메트로놈 번호를 붙이다가 그 악보를 어디 뒀는지 잊어버린 일이 있다. 다른 사본에 다시 할 수밖에 없었는데, 작업 도중에 원래 악보를 찾았다. 베토벤은 두 악보의 숫자를 직접 비교했는데, 같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 사실에 '황당했던' 베토벤은 "제 정신을 가진 사람에게는 이런 숫자 따위는 필요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 베토벤은 신들러가 피아노 소나타 32번이 왜 두 악장밖에 없냐고 질문하자, "시간이 부족했다"고 잘라 말했다고 전해진다. ^^
- 호르헤 볼레(George Bolet)는 "라흐마니노프는 자작곡을 연주할 때도 악보 그대로 연주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인쇄된 악보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스트라빈스키의 그 수많은 자작자연 음반(Sony에 양이 매우 많으며, EMI에도 있다)이 참고로는 될 수 있되 결정판으로 평가되지는 않는다. 20세기 작곡가들은 자작자연 음반이 흔한데, 작곡가 자신의 생각을 절대적이라 본다면 그 해석 외에 다른 것은 존재할 여지가 없어지는 셈이다. 하지만, 연주가들은 그에 그다지 신경쓰는 것 같지는 않다.
- 지금 구할 수 있는 하차투리안 자작 자연의 '스파르타쿠스'의 스튜디오 녹음은 최소 2종이다. 60년대에 빈 필하모닉과 녹음한 것(Decca)과, 70년대에 런던 심포니와 녹음한 것(EMI)이다. 이 두 녹음은 상당히 차가 심하다고 한다. 어느 편이 더 '작곡가의 생각에 가까운가?' ^^
- 푸르트뱅글러의 베토벤 5번 교향곡 연주 중에서 많이 애호되는 것은 1947년 5월의
베를린 복귀 실황(DG/베를린 필)과 스튜디오 녹음(EMI/빈 필, 54년)이다. 이 두 녹음은, 솔직이 'blind test'를 하면 같은 사람이 지휘한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 어느 편이 진짜 푸르트뱅글러의 생각이고, 어느 편이 더 베토벤의 의도에 가까운가?
- 구스타프 말러는 빌렘 멩겔베르크(Willem Mengelberg)가 자신의 교향곡을 연주하는 연주회에 갔다 오고 나서 "나보다 내 작품을 더 잘 연주한 연주회에 다녀왔어"라 말했다.
- 라흐마니노프는 호로비츠가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하는 것을 듣고 "호로비츠가 내 곡을 뼈채로 먹어삼켰구만"하고 말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악보의 불완전성 - 아니 불확정성 때문입니다. 악보에 적힌 내용이 '진짜 음악'을 100%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 덕에 여러 해석을 즐길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즐거운 음악 생활이 되시길....
뒷얘기 하나 ; 말러 교향곡 5번의 '아다지에토'는 영화음악으로 유명해지기도 했는데, 이 곡을 고른 음악 감독이 영화 감독(아니 흥행사일 수도... ^^)과 이 곡을 들은 후 있었던 일을 회상한 일화입니다.
감독 ; 이 곡의 작곡자가 누구죠?
음악 감독 ; 구스타프 말러입니다.
감독 ; 당장 좀 데려와요. 최고 수준의 대우를 보장하겠습니다.
음악 감독 ; #$%^&%&#.....
(c) 1999, 2001~, 이영록 ; 링크는 자유지만, 인용하시려면 우선 제게 메일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Created ; 7th Apr. 2001
Last update ; 9th Jun.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