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프게니 키신 ; 베토벤, 프랑크, 브람스

English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No.14 '월광' op.27-1
프랑크; 전주곡, 코랄과 푸가
브람스; 파가니니 변주곡 op.35
  예프게니 키신(p)
  녹음; 1997
  RCA-BMG CD 9F99(09026-68910-2)

Contributed in Auditorium, not published(for June 1998)
Partly Corrected on May 2001

키신은 어린 나이에 쇼팽 협주곡을 녹음하면서 신동으로 알려졌고, 카라얀과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을 녹음(DG)하는 등 스타로 부상하여, 현재는 RCA에서 쇼팽, 리스트, 라흐마니노프 등 주로 낭만파 레파토리를 녹음하고 있다. 그의 정통 독일 고전파의 독주곡은 처음 보는 것 같다.

   베토벤 '월광'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 첫 악장이 너무 얄팍하게 들리기 때문인데, 음이 깊숙하게 울려나오지 않고 표면을 살짝 긁는 느낌이다. 키신은 베이스와 오른손 선율의 2중주로 이 악장을 처리했는데, 정도가 너무 심해서 오른손의 세잇단음표가 매우 약해졌다. 뤼체른 호수 표면의 파도에 흔들리는 조각배가 아니라, 심하게 과장하면 세숫대야에 띄운 종이배를 보는 느낌인데, 부분적으로 녹음에도 책임이 있는 것 같다. 2,3악장은 이렇게까지 가볍게 들리지는 않는데, 1악장의 맛에서 흔히 언급되는 명연들에 비해 너무 차이가 난다. 울림의 깊이와 안정성에서 으뜸가는 박하우스(Decca)나, 불길한 예감이 두드러지는 A.피셔(EMI), 조각배에서 들려 오는 노래가 마음에 남는 길렐스(DG)와는 격이 다르며, 파도가 조각배를 덮칠 듯한 호로비츠(Sony)와 비교하면 2,3악장의 개성에서 떨어진다.
   프랑크의 '전주곡, 코랄과 푸가'는 음악성으로는 이 앨범 중 첫째겠지만, 일반적인 인기는 떨어지는 편이다. 키신의 연주는 월광 소나타보다는 훨씬 좋아 보인다. 전주곡의 시작은 다소 평면적으로 들리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고조시켜 가며 끝 쪽에서는 템포를 흔들 정도로 적극적으로 감정을 표현했다. 코랄의 음색과 선율의 연결도 좋으며, 푸가에서는 매우 극적으로 약간 과장되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기술도 매우 뛰어나 푸가의 성부 컨트롤에서도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잘 친다는 생각은 드는데, 여운이 길게 남지 못하는 점은 다소 고려해 볼 만 하다. 리히테르의 젊을 때의 녹음(Melodiya 74321 29465 2)이 키신과 다소 비슷한 관점에서 이 곡을 어떻게 드러내 보였는지 참고하시기 바란다.
   브람스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유명한 파가니니의 무반주 카프리스 24번을 주제로 쓴 곡인데, 매우 기교적이고 다양한 변주 형태를 보여준다. 키신의 연주는 기교적으로 매우 깔끔하게 다듬어졌고 음색도 좋지만, 그다지 확고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별 부담 없이 들을 수 있지만, 나는 이 곡을 그렇게 듣고 싶지는 않다. 페트리(APR)의 박력, 카첸(Decca)의 강인한 구축이나, 미켈란젤리의 구반(EMI, 28세 때의 녹음)에서 볼 수 있는 매우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곡의 해석은 없다. 하라셰비츠(Philips)의 파격적으로 감각적인 연주도 들어 볼 만 한데, 키신에게 아직 이런 개성을 기대하기는 다소 이른지 모르겠다.

결론을 내리자. 매우 잘 치기는 하는데, 키신만한 기술이 있다면 나도 이 정도로 연주할 수 있겠다. 감히 키신에게 도전한 셈인데, 독자께서는 이 말을 너무 노여워하지 마시기 바란다. 기술 수준이 키신의 할아버지라고 해도 나는 피셔, 프랑스와, 박하우스, 코르토 같은 사람과 같은 수준으로 연주할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한다. 키신이 그의 놀라운 기교를 바탕으로 좀 더 성장해 주기를 바라며, 아직 맞지 않는 느낌이 많은 베토벤과 브람스에서도 좋은 연주를 들려 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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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ed ; 11th May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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