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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ILELS, Emil(19th Oct. 1916 ~ 14th Oct. 1985)

[ Iron with softness and toughness ]

First appeared at Freechal Classical music forum; 3rd Mar. 2004
Corrected on Mar. 2006

From Emil Gilels discography(linked)

   나는 피아니스트를 평가해야만 하는 (대단히 나쁜) 상황이 되면 다음 기준을 적용한다. 첫째, 자신의 음색이 있는가. 둘째, 해석이 개별성이 있는가. 세째, 그 해석에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가. 말은 쉽지만 이 셋을 다 갖추기는 대단히 어렵다. 악기 연주를 한 번이라도 해 보신 분이라면 족히 이해하고도 남을 것이다. 에밀 길렐스는 의심할 여지 없이 이 셋을 모두 갖춘 거장이었다.

   에밀 그레고리예비치 길렐스(길레리스가 원래 발음이라는 사람도 있다)1916년 현 우크라이나의 흑해 연안인 오데사(Odessa) 태생이다. 그도 밀스타인, 오이스트라흐, 리히테르 등과 함께 그 시대에 이 부근에서 태어난 거장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가정에서 자랐으며, 여동생 엘리자베타(Elisaveta)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드 코간(Leonid Kogan)과 결혼했다. 그리고 딸 엘레나(Elena)는 콘서트 피아니스트가 되었으며, 아버지와 같이 출연한 녹음으로 모차르트의 2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DG) 및 슈베르트의 4손 피아노 작품(DG)도 있다.

   에밀은 처음에 그 지방의 교사 야코프 트카치(Yakov Tkach)에게 배웠는데, 이 사람의 레슨 중에는 손가락의 힘을 강하게 만드는 연습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선지, 그는 후일에 '강철의 피아니스트'라고 불리게 된다. 그는 모스크바로 와서 전설적인 교사 하인리히 노이하우스에게 배우는데, 동문 중에는 젊은 리히테르도 있었다. 노이하우스는 아뭏든 교사로는 복 받은 사람이다 - 그 정도의 제자들을 동시에 거느리기가 쉬운 일인가. 리히테르가 그랬듯이, 길렐스도 1932년 오데사 시절 이미 아르투르 루빈슈타인이 연주 여행 때 길렐스의 베토벤 '열정' 연주를 듣자마자 재능을 인정했다고 하며, "당신은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는데 지금은 우유만 먹고 있다"는 노이하우스의 말처럼 거의 예술가로서 완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길렐스는 노이하우스 밑에서 1935~38년 머물렀다. 1936년 빈 콩쿠르에서 2(1위는 동료인 야코프 플리에르)를 획득했는데, 뉴욕 타임즈에서 "그의 명성은 세계에 우뢰처럼 울려 퍼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1938, 브뤼셀의 엘리자베스 여왕 콩쿠르에서 1등을 획득하여 젊은 세대 중에 재능이 최고급임을 다시 증명해 보였다1).

   그는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와 함께 뉴욕을 1939년 방문했다고 하는데, 2차 대전과 냉전으로 인해 본격적인 서방 연주는 1950년대로 늦춰졌다. 2차 대전 때 에밀은 오이스트라흐처럼 전선을 오가면서 병사들을 위해 연주회를 열었는데, 연주 장면을 담은 필름도 아직 남아 있다.
   유럽에서는 1954년에 연주 여행을 시작했지만, 다시 미국을 방문하는 데는 다음 해까지 기다려야 했다. 역시 오이스트라흐와 같이 갔는데, 두 사람의 연주는 모두 대성공을 거두었다. 유럽 방문도 역시 성공하여 순식간에 그의 이름은 서방 세계 전부에 퍼졌다. 서방에서는 유럽에 오자마자 EMI(당시 영국 Columbia)에 녹음을 개시했고, Columbia의 초기 LP로 발매된 협주곡들로 베토벤 3, 라흐마니노프 3번과 생상스 2(클뤼탕스 지휘) 등의 음반들이 모두 호평을 받았다. 몇 년 늦게 서방에 데뷔한 리히테르와 함께 피아노 듀오 연주회, 매제 코간 및 로스트로포비치와 함께 트리오 연주 등으로 실내악 및 독주 무대에서 소련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그는 명성이 확고했고, 198569세 생일을 맞기 직전에 아쉬운 나이로 모스크바에서 사망할 때까지2) 그의 명성과 실력은 쇠퇴하지 않았다.

   그는 '강철의 피아니스트'란 호칭처럼 서방 데뷔 때는 강력한 힘으로 알려졌다. 사실 강주(ff)에서 그의 터치는 대단히 강력해서, 피아노의 줄을 끊는 일도 자주 있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그는 힘 만으로 음악을 만드는 외골수의 연주가가 결코 아니다. 서방에 나온 지 몇 년 안 됐을 때 녹음한 초기 스테레오인 베토벤 협주곡 4,5(EMI; 루트비히 지휘)을 들어 보면, 결코 힘으로만 밀어붙이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만년의 DG 녹음들은 너무나 섬세해서, 베토벤 후기 작품의 세밀화 같은 감정이 아주 무리 없이 전해온다. 이런데도 '강철 피아니스트'가 전부일까. 오히려 이 별명은 그의 참모습을 아는 데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소리가 있는 피아니스트였는데, 터져 나갈 듯한 ff와 은빛의 아름다운 pp는 그가 19세기 말에 태어난 다른 거장들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음을 잘 알려 준다. 동료 리히테르와는 이 점에서 다르다.

9장으로 묶여 발매된 베토벤 소나타 녹음(DG)

   그의 음반 중 우리 나라에서 가장 평판 높은 것은 베토벤의 소나타 27(DG)이다.  DG와 계약한 1971년부터 1985년 죽기 몇 달 전까지 녹음했는데, 아쉽게도 죽음으로 인해 1,9,22,24,32번이 빠졌다3). 연주는 최고라고 두말 없이 권하고 싶다. 잘 들어 보면, 맨 처음 녹음한 21,23번에서는 강력한 힘이 돋보이는데 거의 끝 쪽에 녹음한 30,31번은 섬세한 아름다움에서도 거의 선두를 달린다. 이렇게 아름다운 연주도 듣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음반 다음으로는 아마데우스 4중주단 멤버와 같이 연주한 브람스의 피아노 4중주곡 1(DG)을 추천하고 싶다. 아마데우스의 탄탄하고 힘 있는 앙상블과 어울려 치밀하며 스케일이 큰 멋진 음악을 들려 주는데, 이 녹음은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연주 30 안에 들어가며, '완전함'이라는 말이 아쉽지 않다. DG의 다른 연주로는 역시 아마데우스 멤버들과 어울린 슈베르트 '송어', 그리그 서정 모음곡집 발췌, 요훔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과 협연한 브람스 협주곡 2이 있는데, 특히 브람스 1번이 정평이 나 있다. 과 협연한 모차르트 협주곡 27번과 딸 엘레나와 같이 연주한 2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도 독특하며, 엘레나와는 4손을 위한 피아노 음반도 있다. 쇼팽 소나타 3은 약간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듯하다. 모차르트로는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19701월에 녹음한 실황도 있는데 최근에야 CD로 나왔다(DG).
   서방 초기의 EMI 녹음들로는 위에서 언급한 클뤼탕스와 연주한 협주곡 3곡 및 루드비히 협연의 베토벤 4,5번이 있는데, Testament 발매로 라흐마니노프/생상 및 베토벤 4,5번이 나왔다가 요즘에 Great Recordings 시리즈로 다시 EMI 본사 발매로 되돌아갔다. 모두 평이 좋으며 특히 베토벤 4,5번은 평가가 매우 높다. 미국 Columbia의 기술진이 녹음한 조지 셀/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협연의 베토벤 협주곡 전곡(EMI)은 피아노의 열연에는 이의가 없지만 오케스트라와 궁합에서는 조금 점수를 못 받는 듯하다. 1970년대 초 마젤/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전곡이 EMI에서 녹음한 마지막 음반이다. 그 외에 1950~60년대에 가진 미국 연주 여행 때 짬짬이 RCAColumbia에도 녹음했다. 라이너 지휘 브람스 2번과 차이코프스키 1번 협주곡이, 독주곡으로는 바흐 프랑스 모음곡 5번 및 피아노 소나타로는 리스트, 쇼스타코비치, 슈베르트 16,17번 소나타 등이 있다. 협주곡과 리스트/슈베르트 17번 소나타는 리빙 스테레오 시리즈로 발매되었지만, 요즘은 특히 독주곡을 보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이 외에 소련 Melodiya 녹음으로 BMG에서 발매한, 실황 녹음의 5장 세트가 재미있다. 쇼팽 협주곡 1, 풀랑의 '전원 협주곡', 베토벤 소나타 3곡과 쇼스타코비치 소나타 등이 있는데, 아쉽게도 지금 폐반된 것 같다. 1969년의 '카네기 홀의 길렐스'LP 시대에는 EMI에서 나오기도 했는데, 지금은 드문 일본 VictorMusic & Arts 음반으로만 볼 수 있다. 실황에서도 완벽한 모습을 보여 주는 그를 만날 수 있다. 소련에서 녹음한 실내악들로 코간, 로스트로포비치와 베토벤 '대공', 차이코프스키 트리오 등의 녹음도 있는데 CD로는 나온 일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테크닉으로 당대 일류였지만, 그의 실황 녹음에서는 의외로 '삐걱'하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다. DG의 브람스 2번 협주곡 2악장이나, BMG의 멜로디야 실황 세트에서 슈베르트 즉흥곡 D.935-1, 베토벤 '함머클라비어' 등에서 이런 모습이 나타난다. 그런데, 나는 들으면서 오히려 짜증보다는 미소가 나는데, 아마 범인(凡人)'천재도 저럴 수 있구나' 하는, '너도 실수하지'란 (물론 쓸데없는) 동료 의식이랄까....

Links

  1. Emil Gilels discography ; 캐나다에 거주하는 Dr. Ates Tanin이 만든 페이지. Doremi 레코드사 페이지 밑에 들어 있다. Dr. Tanin은 리히테르와 길렐스의 열렬한 팬으로, 거의 모든 음원을 다 구해 본 모양이다. 지금까지는 인터넷 상에서 가장 훌륭한 길렐스 페이지다.

각주 ]

  1. 당시 경쟁자에는 플리에르(3위), 베네데티 미켈란젤리(7위)가 있었으며, 심사위원 중에는 카자드쥐, 루빈슈타인, 에밀 폰 자우어(Emil von Sauer), 기제킹 등이 있었다고 전한다. 한 해 전인 1937년에는 다비드 오이스트라흐가 1위를 획득했었다.
  2. 리히테르에 따르면, 길렐스가 병원에서 세상을 뜬 데는 의사의 실수가 큰 원인이었다고 한다. 대단히 아쉬운 일이다.
  3. 이 녹음들이 1998년 부근에 에로이카 변주곡과 선제후 소나타 2곡을 합쳐 CD 9장의 버짓 세트로 나왔을 때 꽤 많은 베토벤 애호가들이 비명을 질렀다. 전에는 TOP 가격에다가 낱장 전부를 다 구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도 LP 3장과 CD 한 장이 전집과 겹치는 바람에 CD를 알던 사람에게 준 쓰라린 과거가.....

(c) 2004~ , 이영록 ; 링크는 자유지만, 인용하시려면 우선 제게 메일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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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ed ; 9th Apr. 2006
(first written; 3rd Mar. 2004)
Last update ; 10th Apr.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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