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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에 녹음된 음악

Previously contributed material at Classical Music Forum in HiTEL

   레코드, 인간의 발명품 중에 가장 신기한 것 중 하나이다. 이렇게 말하면 우습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우리가 이것을 통해 음악을 들을 때는 몇 가지 유의할 사항이 있다. 이것을 알고 레코드를 들으면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레코드는 어디까지나 기계적인 음악 재생 소프트웨어이다. 그러나 이것을 '음악 통조림'으로만 이해할 수는 결코 없다. 어디까지나 한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을 성실히 기계에 의존해 담아 낸 예술품이다. 단 레코드라는 특유의 매체에 의존하기 때문에, 실황 연주(나로서는 어떻게 만들어 낸 좋은 레코드라도, 같은 수준의 연주를 직접 연주회장에서 듣는 것에 비하면 감동이 훨씬 덜하다고 생각한다... 같은 수준이라면 말이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리라고 믿는다)와는 레코드 발명 후 100년 된 지금에는 달라진 부분이 많다. 이 달라진 부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잘 알려진 비유겠지만, 연주회는 연극, 레코드는 영화에 비유할 수 있다. 영화가 연극과는 다른 표현 방법을 추구하며 독특한 예술성을 발전시켜 온 것처럼, 레코드도 연주회에서 볼 수 없는 특성을 추구하며 레코드 독자적인 표현의 영역을 넓히면서 완성의 길을 걸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황이 1회성인데 비해 레코드는 연주의 반복 재생을 가능하게 했다. 연주회와 레코드가 연극과 영화에 비교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푸르트뱅글러의 말은 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 "연극의 수준을 높이려면 영화를 키워 줘야 한다." 감상자는 완성된 레코드만을 듣지, 레코딩 중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는 전혀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편집이 중요하다.
   연주회에서는 어느 악기의 소리가 묻혀서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레코드는 멀티-마이크 기술로, 모든 악기의 음량 균형을 조절한다. 일부 레코드 회사는 마이크를 꼭 필요한 두어 개만 쓰지만, 일반적인 경향은 전부 다 들리게 해 주는 쪽이다. 이것부터 연주회와는 다르다.
   연주회에서는 한 번 잘못하면 그것으로 그냥 끝이다. 잘못을 수정할 수 없다. 그러나 레코드에서는 그렇지 않다. SP시대에서도 원칙적으로 실제 연주시간보다 많이 녹음해서 골랐고(그러나 편집이 근본적으로 불편했기 때문에, 요즘처럼 편집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LP시대 이후에는 Tape 편집이 일반화했다. 가수가 어느 고음에서 실수하면 그 음이 잘 될 때까지 몇 번이고 불러서 가장 잘 된 것을 그 부분에만 끼워넣는다. 이 기법은 2차 대전 중 독일에서 Magnetic Tape 녹음이 개발되고, 대전 후 LP가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마스터 테이프를 돌리는 릴 테이프 재생기는 초당 37cm로 테이프가 움직인다. 더군다나 요즘의 디지탈 녹음은 1/1000초 단위까지 편집이 가능하다. 이러니 편집은 쉬울 수 밖에 없다.
   예를 들면, EMI의 명 프로듀서 월터 레그(Walter Legge)가 녹음 과정을 총지휘한, 명음반으로 이름 높은 푸치니의 '토스카' 칼라스의 구녹음(1953, 라 스칼라, 데 사바타 지휘)에서, 1막의 'Mario!' 를 세 번 외치는 토스카의 등장 장면에서는 세 번의 목소리가 모두 따로 부르고 이것을 편집했다고 한다. 역시 레그가 프로듀서였던 푸르트뱅글러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녹음(EMI)에서는, 이졸데 역을 맡은 플라그슈타트가 나이 들어 고음을 내기가 힘들자, 고음 부분만 슈바르츠코프를 대역으로 썼다는 얘기도 있다(이론도 있지만). 이런 편집은 실황 녹음도 예외가 아니다. 박수가 빠진 경우가 많고, 리허설까지 같이 녹음한 후에 편집을 하기 때문에, 지휘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의 바이로이트 실황 녹음(DG)의 녹음날짜를 보면 그냥 '1966년 바이로이트 축제' 라고만 되어 있다. 지금은 같은 실황 녹음이라고 해도 푸르트뱅글러의 바이로이트 실황 녹음의 베토벤 9(EMI)과 같이 단 한 번에 녹음하여 그대로 레코드로 만드는 일은 거의 없다(잘 들어 보면 이 연주에서는 실수를 몇 군데 찾을 수 있다)1).
   이런 편집에서는 단점과 장점이 있다. 장점이라면 실수가 적은 완벽한 연주를 레코드에서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레코드에서 들으면 너무나 완벽하게 다듬어져 있는 연주가의 연주라도, 실제 연주회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단점도 있으니, 실황의 열기와 생생한 즉흥성이 레코드에서는 많이 없어진다. 연주가에도 레코드파와 실황파가 있다. 글렌 굴드는 연주회에 서기를 완전히 포기한 사람이다. 굴드의 레코드가 그렇게 완벽하게 다듬어진 것도 무리는 아니다. 바흐의 한 모음곡을 연주하더라도, 개개의 곡에 알맞는 다른 피아노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에겐 연주회가 답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반면에 크나퍼츠부시는 청중이 없는 스튜디오를 답답해한 사람이다. 그 덕분에 그가 남긴 녹음에는 실황의 열기가 그대로 잡힌 것들이 많다.
   이 편집 과정은 레코드에서 프로듀서의 역할을 크게 증대시켰으며, 레코드의 특성인 '완벽성' 을 더 채워 준 것은 물론이다. 편집을 통해서 레코드는 우리가 현재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더 '레코드적으로' 된 것이다.

   편집에서 어떤 녹음 부분을 택할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프로듀서(Artistic Director, Producer)의 몫이다. 레코드의 연주 시간이 30분이라면, 대체로 레코딩 세션(Session)은 세 배가 넘는 90분 이상이다. 이만큼 많은 양을 녹음해 놓고, 프로듀서는 이것들을 주의깊게 들은 다음 어느 부분에 어느 것을 넣을 것인지 결정한다. 다시 말하면, 레코드에서 음악이 어떻게 들릴지 결정하는 사람은 일차적으로는 물론 연주가지만, 최종적으로는 프로듀서에게 책임이 있다. 따라서 프로듀서들은 웬만한 연주가 정도의 기량은 거의 가지고 있고, 음악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EMI의 옛 프로듀서인 로렌스 콜링우드(Lawrence Collingwood)는 새들러즈 웰즈 오페라의 지휘자였으며2), 월터 레그는 카라얀이나 슈바르츠코프, 크리스타 루드비히 같은 대가들도 그의 의견을 존중했을 정도로 음악에 대해 전문가였다. 존 컬쇼(John Culshaw)는 자신의 세션에서 카를 슈리히트(Carl Schuricht)가 템포를 결정하지 못하여 같은 부분을 여러 번 지휘했을 때 모두 템포가 달랐기 때문에 녹음이 불가능했다고 그의 유명한 책 'Ring resounding'에서 회고했다. 이런 정도의 능력이 없으면 프로듀서를 할 수 없다.
   시대에 따라서 프로듀서의 역할은 서서히 바뀌어 왔다. 레코드 역사의 초기 30년 이상, SP시대의 프로듀서의 대명사나 다름없던 프레드 가이스버그(Fred Gaisberg)는 레코드의 기능을 기록으로서만 한정했다. 그 때는 레코드 녹음된 음악의 숫자가 지금보다는 훨씬 적었다. 레코드를 연주가들이나 청중이나 그리 중요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가이스버그는 HMV(His Master's Voice, 지금의 EMI의 전신)에서 녹음할 때 일단 레파토리를 확충하는 데 많이 노력했다. EMI에 역사적인 녹음이 많은 것은 모두 그의 덕택이다. 유일한 카스트라토의 소리라든지, 바흐의 평균율 전곡(에트빈 피셔),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메뉴힌), 무반주 첼로 모음곡(카잘스)이나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집(슈나벨)과 교향곡 전집(바인가르트너) 등을 최초로 완성한 것이 EMI인 것은 가이스버그의 정책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이 시기의 레코드는 기록으로서의 값어치가 우선되었기 때문에, 현재처럼 레코드가 꼼꼼하게 신경 써서 제작되지는 않았다. 코르토나 피셔 등의 SP복각 레코드를 잘 들어 보면 실수가 많은데, 오늘날이라면 아마 이렇게 레코드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시기는 영화가 연극을 모방하던 시기와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렇기 때문에 이 때는 레코드가 실황에 비해 좋지 않은 면이 잘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사실 5분마다 한 번씩 뒤집어야 하는 귀찮음, 장수가 많아서 오는 불편함은 CD를 듣는 요즘은 상상하기 어렵다.
   다음의 위대한 프로듀서는 역시 EMI월터 레그(Walter Legge, 1906~1979). 레그는 청년 시기이던 SP 시대에 볼프의 가곡을 녹음할 때 예약 판매라는 기발한 개념을 도입하여 성공한 바가 있다. 그는 주로 1943년 정도부터 EMI의 레코딩 담당부장을 맡았는데, 정말 그는 EMI의 레코딩 사업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나 다름이 없다. 그가 제작한 수많은 음반은 지금까지 팔리는 음반이 대부분이고, 명실상부한 EMI의 전성기를 확립했다. 그는 당시의 유명한 음악가 대부분을 EMI로 데려온 것 뿐만이 아니고, 신인 발굴에도 적극적이었다. 마리아 칼라스(아직까지 EMI의 돈벌이 품목 중 하나다), 디누 리파티, 서방에 그 때 막 등장한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등은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그는 좋은 레코드를 만들기로 업을 삼은 사람이다. 테이프 편집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 뿐 아니라, '가장 좋은 연주회장의 가장 좋은 자리에서 듣는 음악' 이 레코드에서 들리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그가 만든 레코드는 몇 실패작을 빼고는 거의 균형이 잘 잡힌 음향을 들려 준다. 그리고 그는 유명한 음악가들과 친분을 맺는 방법으로(슈바르츠코프와는 결혼까지 했다) 그들을 EMI로 데려왔으며, 음악적으로도 레코딩 작업을 통해 이 거장들에게 만족을 주었다. 크리스타 루드비히가 은퇴하면서 이 시기의 레코딩이 자신에게 매우 만족스럽다고 현재의 레코딩 작업을 비난한 일이 있다3).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1945년 런던에서 필하모니아 관현악단을 창설한 데에서도 잘 알 수 있다. EMI에서 그가 차지한 비중은, 그가 1964년 퇴직하자 EMI의 호화 진용이 거의 DG, Decca, Philips 등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Decca존 컬쇼(John Culshaw, 1926~1982)를 빼놓을 수 없다. 컬쇼는 주로 Decca의 호화로운 오페라 녹음으로 기억되고 있다. 여기서 컬쇼를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레코딩이 연주회장의 영향에서 결정적으로 벗어난 데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컬쇼가 이 생각을 의식적으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 전곡을 솔티의 지휘로 1958~65년 녹음하면서 이런 공을 세웠다. 그의 말을 일부 인용한다.

(전략) 지난 수십년 동안 '라인의 황금' 의 성공적인 무대 구성이 몇 번 있었으나, 대부분이 문제점에 정면으로 도전하기보다는 회피한 것 같다. 오늘날, 노래도 하고 수영도 하는 라인 처녀들을 상상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그들은 하나는 할 수 있지만 둘은 못한다.... (중략) 녹음을 맡은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시각적 고려를 걱정말 만한 이유는 없었다. 운좋게도 우리는 매체가 좋았으므로 기교상의 난점을 피할 수 있었다...(후략)

'라인의 황금' 해설지에서

(전략) 이렇게 바그너의 오페라가 극장에서는 상징적인 수법으로 공연되는 데 비해(참고; 컬쇼는 빌란트 바그너의 상징적인 바그너 연출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위에 언급한 그의 책에서는 말미 부근에서 이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레코드의 녹음에서는 오히려 원작에 충실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중략) 이 녹음의 목적은 청각적인 수단만을 사용하여 음악과 드라마를 전하는 것이며, 무대에서의 공연에서 떠나 상상의 세계를 통해, 가능한 한 바그너가 지시한 바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신들의 황혼' 해설지에서

   다소 인용이 길지만, 레코드는 연주회장과 같지 않으며, 오히려 더 실제처럼(정말 영화와 유사하다!) 만들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을 알 수 있다.

   '반지' 의 전집은 스테레오이다. 이 효과를 잘 이용해서 실제 극장에서도 나타내기 어려운 효과 음향, 공간 감각 등을 기막히게 살렸다. 특히 '라인의 황금' '신들의 황혼' 에서 절묘한데, 전자에서 강한 효과를 준 천둥 소리, 보물 쌓는 장면 등이라든지, 후자에서는 테너 지크프리트의 목소리가 군터의 바리톤으로 바뀌는 등 레코드 특유의 표현을 만끽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이 레코드는 스테레오의 가능성을 - 실제보다 더 실제같은 - 처음 드러낸, 레코드 역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명품이다.
   현재의 프로듀서는 유명 연주자와 가진 친분이 매우 중요시되며, 일찍부터 DG에서 취해 온 정책처럼 Production(녹음 기획), Artistic Director(녹음 총책임자)의 둘로 기능이 나뉘었다. 가이스버그와 레그는 둘을 같이 했으나, 현재는 대부분 나누어 맡는 추세이다. 프로듀서가 가는 방향이 미래에 어떻게 될지 흥미있는 일이다.

   현재는 레코드가 완전히 CD로 정착되었다. 레코드가 SP, LP, 스테레오, 디지탈(CD)로 변해 온 과정도 자세히 얘기하면 무척 흥미롭겠지만, 이것은 일반 잡지 등에서 많이 다뤄 왔으므로 생략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가장 간단한 것만 얘기해서, 최초의 본격적인 교향곡 녹음은 아르투르 니키쉬(Arthur Nikisch, 1855~1922)의 베토벤 5번이고(베를린 필하모닉, 1913; 일본 DG에서 발매), 협주곡 녹음은 빌헬름 박하우스가 한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이다(1916, HMV). 최초의 LP음반은 나탄 밀스타인(Nathan Milstein, 1904~1993)브루노 발터의 지휘로 뉴욕 필하모닉과 녹음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1948, Columbia)이며4), 최초의 정식 스테레오 녹음은 아르투르 루빈슈타인(Arthur Rubinstein, 1887~1982)이 프리츠 라이너와 녹음한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라는 말이 있는데(1954, RCA), 스테레오 기술의 실험은 전부터 많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어느 것이 최초라고 명확하게 단언하기는 좀 어렵다5). 디지탈 녹음은 일본의 Denon에서 1971년경 시작했고(PCM; Pulse Code Modulation)6), 최초의 CD가 발매된 것은 클라우디오 아라우가 녹음한 쇼팽의 왈츠로, 1981(이것은 언제인지 자신이 별로 없다) Philips에서 나왔다.

   이제는 SP복각에 대해 얘기해야 할 것이다. 사실 에밀 베를리너(Emil Berliner)가 평면형 레코드로 특허를 받고 1897DG레코드사를 세운 후, 1948년까지의 모든 녹음은 78회전의 SP로 발매되었다. , 레코드 100년사의 절반은 SP만이 존재했던 것이다. 현대의 좋은 녹음의 혜택을 받지 못한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SP로만 자신들의 존재를 주장할 수가 있는데, 요즘은 CD로 그들의 유산을 구할 수가 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해 준 것이 바로 SP복각 기술이다.
   현대의 컴퓨터 덕분에 더욱 세련되기는 했지만, 본질적으로 SP복각 과정은 복각 담당 기술자의 귀에 의존하는 작업이다. SP복각 음반의 자원이 가장 많은 것은 물론 역사가 길고 명연주가들과 계약을 많이 했던 EMI이므로, EMI의 복각 기술을 언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EMI에는 SP복각을 전담하는 기술자들이 있다. 초창기의 키스 하드위크 (Keith Hardwick), 앤터니 그리피스(Anthony Griffith)나 요즘의 찰스 레빈(Charles Levin), 폴 베일리(Paul Baily), 앤드류 월터(Andrew Walter)등이 그들이다. 특히 하드위크는 '복각의 마술사' 수준으로, 발터가 빈 필하모닉을 지휘한 말러의 교향곡 9번은 복각이 워낙 잘 되어서 상을 타기도 한 음반이다. 그는 LP 시대에 피셔의 바흐 평균율, 카잘스의 무반주 첼로 조곡 등 수많은 역사적인 명연주의 복각을 맡았다.
   SP복각의 과정을 간단히 요약한다. 먼저, SP원반의 틀(press)이 남아 있나 본사 창고에서 찾아본다. SP판은 셸락(shellac)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재료의 특성상 잡음이 많다. SP반은 지금의 음반보다 훨씬 두껍고 딱딱하며 무겁다. 이런 것이 흠이 잘 나고 깨지는 원인이 됐을 것이다. 틀을 찾았다면, 이것으로 PVC를 이용해 레코드를 찍는다. PVC는 현재의 LP재료인데, 이것은 재료의 특성상 셸락보다 훨씬 잡음이 적다. 틀을 못 찾았다면 원반을 그대로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아뭏든 이 SP를 바늘로 재생하여, 신호를 디지탈 테이프에 담는다. 디지탈화되면서부터, SP복각은 훨씬 진보했다. SP의 배경 잡음(소위 '비 오는 소리')을 줄이려면, 음악이 나오기 전의 잡음의 평균 수준만큼을 빼주기만 하면 된다. 이 잡음 제거 공정을 거친 디지탈 테이프를 가지고 CD를 만든다.
   Philips사가 사용하는 NoNoise 기술에서는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는데, SP의 표면 잡음(surface noise), 히스 잡음(~ 하는 테이프의 잡음; hiss noise), 클릭과 팝(clicks & pops; 튀는 것)을 제거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인 소닉 솔루션(sonic solution)을 사용한다. 이 프로그램은 EMI에서도 사용한다. 이 프로그램은 잡음이 있는 부분을 재구성하여 원래에 가깝게 되돌려 놓는 것이 목적이다. 표면 잡음과 히스 잡음은 위에 말한 방법대로 제거하고, 클릭과 팝을 제거하려면 컴퓨터로 그 부분의 신호를 초당 2000번 정도로 신호를 잡아(sampling), 잡음 앞뒤의 부분에서 그 부분의 신호를 추정한다. 물론 악보를 참조하면서 행한다. 1초 동안의 부분을 수정하기 위해 5300만 번 정도 계산을 한다. 그러나 이런 정밀한 복각 기술도 레코딩 레벨 전체가 변하는 실수는 어쩔 수가 없다. 이런 것은 사람이 직접 듣고 수정한다. 엘가의 자작 자연들이 발매된 것은 이런 복각 기술에 많이 힘입었다. 물론 Philips 뿐 아니라, BMG, Sony, DG 등도 각각의 독특한 노하우가 다 있다.
   SP복각에 정밀 기술이 동원되자, 반면에 복각 비용도 늘어나서 SP복각 CD 한 장을 만드는 데 약 1000만원 이상이 든다고 한다. 따라서 SP 복각 음반의 발매도 그렇게 쉽게 할 수는 없다. EMI가 좋은 SP 시대의 녹음을 굉장히 많이 갖고 있는데 비해, 복각 속도가 답답하달만치(?) 느린 것이 이 때문이다. 따라서 이 음반들이 녹음된 지 오래므로 아무나 원반을 찾아 복각하더라도 저작권법에 걸리지 않는 것을 이용해서, Pearl이나 Biddulph, 오스트리아의 성악 전문 복각사 Lebendige Vergangenheit, Music & Arts, APR, 요즘은 Naxos 등이 많은 음반을 EMI 본사에 앞서 복각해 발매했다(이에 대한 저작권 규정이나, 이탈리아의 '복각 음반 회사'들에 대해서는 내 홈페이지 '레코드 오류' 섹션의 '수치의 전당'을 참고하기 바란다). 각각 회사마다 특성이 있지만, Pearl은 음질이 자연스럽지만 배경 잡음이 좀 심한 것이 안타깝다(이것은 원래 소리를 훼손하지 않으려는 Pearl의 철학 때문이니 우리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내 개인적으로는 Pearl의 소리가 EMI까지 포함한 여러 복각 레이블의 것 중 그래도 실제에 가장 가깝다고 보지만, 일반적으로는 될 수 있는 대로 EMI 본사 복각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현명하리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EMI의 방대한 자료 양으로 볼 때, 도대체 언제 그 자료가 다 복각되어 나오겠는가 의심스럽다. EMI1956~57년 이전의 녹음을 발매하는 Références 시리즈는 기껏해야 1년에 10여 종 정도밖에 발매되지 못한다. 이것도 EMI의 신보 중에서 볼 때 상당히 비중이 높은 것이다. 그리고 이 시리즈가 전부 다 SP복각인 것도 아니고 일부는 모노랄 시대의 녹음이다. 따라서 EMI는 옛 연주가를 찾는 대중의 기호에 맞추기 위해, Testament라는 회사에 자신의 스튜디오와 기술진을 빌려주어 EMI 자신이 상업적인 이유로 직접 발매하지 못하는 구 녹음들을 발매하도록 했다. Testament의 재발매는 SP 시대에서 스테레오 시대까지를 망라하는데, 이 시리즈는 음질도 좋고(EMI 자체의 기술진이니 당연하다), 본사에서 나오기 이전에 EMI의 수많은 명연주들을 구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획이다. 카잘스, 푸르트뱅글러, 아돌프 부쉬, 카페 4중주단, 코르토, 피셔 등의 예술은 SP복각 덕에 상당 부분이 전하는 것이다. 이 명연주자들의 예술을 음질이 현대의 음반에 비해 떨어진다는 이유 때문에 거부한다면 좀 안타까운 일이다. 사실 현대의 연주가들에 비해 연주 자체로는 훨씬 더 매력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도 말이다.

   전에 하이텔에 이 글을 올렸을 때는 어디서 레코드를 사야 할 것인가에 대한 안내로 이 글을 마쳤으나, 현재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언급으로 이 글을 맺겠다.
   IMF는 우리 나라 고전음악 음반의 판매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내가 압구정동 신나라 레코드(객관적으로 말해서, 의심할 여지 없이 아직도 우리 나라 고전음악 매장 중 가장 크고 다양한 음반을 구할 수 있다는 데는 의견이 없을 것이다)를 지켜본 바로는 그 전에 비해 갖춘 품목이 최소한 1/3 정도로 줄어든 것 같다. 게다가 음반 직배사들도 수입을 줄이거나 고가 정책으로 돌아서서, 요즘은 정말 '구할 수 없거나 값이 매우 비싼 품목이 너무 많다'. 근래 환율이 달러당 1300원 수준으로 위기 때의 정점이던 2200원에 비해 거의 절반으로 떨어졌는데, 상황이 좀 나아질지 두고 볼 일이다.
   어쨌건 IMF 전처럼 달러당 850원 수준으로 음반을 구하기는 물 건너갔고, 상당 기간 '품목의 기근' 상황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개중 좀 다행스러운 일이 중고 음반점의 활성화다. IMF 덕에 희귀 LPCD를 처분한 사람이 크게 늘어, 얼마 동안은 중고 음반점에서 좋은 CD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경기가 좀 나아지면서 그런 재미가 좀 덜해졌다 ^^. 하지만 이 덕에 많은 음반 애호가들이 중고 시장에 눈을 돌린 일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니까. 개인적으로 집에 이미 쌓인 음반 수도 상당한 만큼, 전에는 거의 대부분 신품을 구입했으나, 지금은 중고 쪽으로 거의 완전히 방향을 전환했다. 취향이 좀 옛 연주가들에 쏠려 있고 '정격 연주'에 크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중고에서 웬만큼 수요를 거의 충당할 수 있어서 유리한 편이다. IMF의 공으로 중고 음반 시장의 성장을 들지 않을 수가 없다. 물자 절약이라는 측면에서도 좋지 않은가? 몇 유명한 중고 가게의 연락처는 유명한 인터넷 동호회의 게시판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참고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online shop들이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근래는 완전히 자리잡았다. 적극 권할 만하다.

각주

  1. 얼마 전 Orfeo에서 발매한 바이에른 방송국의 테이프 소스는 EMI 발매와는 다르다. 레그가 이것도 리허설과 합쳐 편집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2. 실제로 피셔와 녹음한 모차르트 협주곡 24번은 명연으로 이름이 높다.
  3. 루트비히의 말인즉, "그 전에는 프로듀서가 자신이 노래하면 잘잘못을 지적했었는데 요즘은 세션이 끝나면 오히려 잘 되었냐고 자신에게 물어본다"고 했다.
  4. 미국 Columbia ML 4001로 발매. 현재는 Sony의 발터 에디션 중 하나 또는 Naxos 발매로 구할 수 있다.
  5. 실제로는 RCA나 EMI 등에서 실험적인 스테레오 녹음이 전에도 있었다. '리빙 스테레오의 역사' 리뷰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이 외에, 2차 대전 중 독일에서 스테레오 실험이 있었다. 1944년 기제킹 연주 로터 지휘의 베토벤 '황제'가 스테레오 녹음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가정용 스테레오 장비가 보급되기 시작한 시점은 웨스트렉스 사에서 LP의 45-45 커팅 방식을 내놓은 1958년 부근이다.
  6. Denon label은 1970년대 초부터 체코 Supraphon과 공동작업으로 디지탈 녹음을 활발히 제작했다. 내가 아는 가장 이른 상업용 디지탈 녹음은 스메타나 4중주단의 일본 투어 때(1972년 4월 24~26일) 도쿄 아오야마 타워 홀에서 녹음한 모차르트의 현악 4중주곡 15,17번이다.

Photos

  1. Wilhelm Furtwängler ; EMI CHS 7 64496 2(Roger Hauert)
  2. Willem Mengelberg seeing his record of Beethoven Symphony by microscope on 5th Jun. 1934, in Netherland ; liner note of Matthäus-Passion, Philips 416 206-2(Japanese version)
  3. Jimmy Lock(Decca engineer) constructing the microphone tree ; Decca Legend series liner note
  4. Felix Weingartner's Beethoven Complete Symphonies ; Toshiba-EMI TOCE 9285~89
  5. Walter Legge ; EMI
  6. John Culshaw's team in Die Walküre session, 1965, Sofiensaal, Wien ; (left to right) Hans Hotter, Culshaw, and Georg Solti(Elfriede Hanak-Broneder)
  7. The thunder machine, used in Das Rheingold ; Hans Wild(Decca)
  8. The off-stage steerhorn, used in Götterdammerung ; Hans Wild(Decca)
  9. Arthur Nikisch ; EMI
  10. Bruno Walter conducts Mahler's Symphony No.9 with Vienna Philharmonic ; EMI CDH 7 63029 2, transferred from 78's by Keith Hardwick
  11. Schubert's Improptus & Wanderer-Fantasie by Edwin Fischer(1938 & 1933) ; transferred & issued by Pearl, GEMM CD 9216
  12. Brahms' Violin Sonatas ; Gioconda de Vito(vn.) & Edwin Fischer(No.1 & 3), Tito Aprea(No.2), issued by Testament CD SBT 1024

(c) 1994~ , 이영록 ; 재인용하시려면 우선 제게 메일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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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ed ; 5th Apr. 2000
Last Update ; 16th Mar.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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