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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LSTEIN, Nathan(31st Dec. 1904 ~ 21st Dec. 1992)

[ Fire and Ice ]

Nathan Milstein(from the jacket of Angel S 35686)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린계의 거장을 꼽으라면 한국 사람들은 보통 야샤 하이페츠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중 하나를 들 것이다. 하지만 20세기 초~중반에는 사방에 훌륭한 바이얼리니스트가 넘쳐나고 있었는데, 오이스트라흐, 이다 핸델, 그리고 지네트 느뵈가 한 콩쿠르에 출연하여 겨루었다는 일화만 보더라도 당시 상황을 짐작할 만 하다. 물론, 이 중에 하이페츠 및 오이스트라흐와 겨룰 만한 사람도 있었다. 프리츠 크라이슬러가 세상을 뜨기 얼마 전에 "현재 가장 완벽한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말하고, 남을 좀체 칭찬하지 않았다던 하이페츠가 자신의 제자들에게 "그의 연주회에 꼭 가 보라"고 권했던 사람이자, 남긴 녹음의 질로도 그렇다고 인정할 만한 사람 중에는 나탄 밀스타인이 아마 가장 많이 거론되지 않을까 싶다.

   그는 현 우크라이나의 흑해 연안 오데사(Odessa)에서 태어났다. 오데사는 이 시기 연주가의 일대 산지였다. 오이스트라흐 페이지에서 말했듯이 오이스트라흐 부자(父子), 밀스타인, 길렐스 외에 부근 지토미르(Zhitomir)에서는 1915리히테르가 태어났으니 정말 대단하다.
   
그는 처음에는 그 지방의 명교사 스톨리아르스키에게 1914년까지 배웠고, 이 때 같은 스승에게 갓 입문했던 어린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와 같은 연주회에 출연한 일도 있다고 한다. 다음에 페테르부르크(옛 레닌그라드)로 가 레오폴트 아우어에게 배웠다. 이 때 쯤 글라주노프의 지휘로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 적이 있는 모양인데, 밀스타인이 "이 곡은 나에게 특히 의미가 있다. 아이로서 처음 공개 연주회에 출연했을 때 글라주노프 자신이 지휘했다"고 말한 것처럼 후에 스튜디오 녹음을 세 번이나 하는 등 그가 가장 사랑하는 레파토리의 하나가 되었다.
   
그는 거의 동년배 호로비츠와 러시아에 있을 때부터 연주하다가, 호로비츠 및 피아티고르스키와 함께 1925년 유럽 연주 여행을 떠난 후 러시아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으며 연주회 목적으로도 전혀 가지 않았다. 1926년 그는 브뤼셀에 가 전설적 바이올리니스트 외제느 이자이와 토론했다고 하는데, 이자이는 그의 연주를 듣고 "당신은 내게는 더 배울 것이 없습니다"라 말했다고 전한다. 결국, 호로비츠, 피아티고르스키와 밀스타인은 모두 미국에 정착했다. 호로비츠는 비첨이 지휘한 1928년의 전설적인 뉴욕 필 데뷔로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1번을 연주하며 '야성이 울부짖는 소리'나 '대초원에서 온 회오리바람' 등으로 불리면서 바로 스타덤에 올랐지만, 그에게는 이런 떠들썩한 에피소드는 전혀 없다. 1929년 스토코프스키의 지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연주로 글라주노프의 협주곡으로 미국에 데뷔한 이래 꾸준히 명성을 쌓아, 결국 약 십 년 일찍 정착했던 하이페츠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었다. 이 동안 그는 녹음 분야에서 세계 기록 하나에 이름을 올렸는데, 그가 브루노 발터와 뉴욕 필과 함께 1945년 녹음한 멘델스존 협주곡(Columbia)이 바로 세계 최초의 LP 발매다(ML 4001).
   뭔가 더 쓰고 싶어도, 이 키 작은 거장의 사생활은 그가 명성을 쌓은 과정만큼이나 특기할 만한 것이 없다. 커티스 음악원이나 유럽의 여러 곳에서 마스터 클라스를 가졌는데, 그의 섬세한 성격만큼이나 학생들에게도 좋은 교사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1987년 자동차 사고로 팔을 다치지만 않았더라도 더 활동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도 그리 쇠퇴하지 않았다. 그는 이 사고 후 런던에서 지내다가, 88세 생일의 불과 10일 전에 세상을 떠났다.

   내가 아는 바이올린 연주자들은 60대 전에는 연주력이 훌륭하더라도 70대가 돼서도 '명연주'를 남기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일반적으로 현악기 연주자들이 건반악기 연주자들보다 테크닉이 빨리 쇠퇴한다는데,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밀스타인은 그렇지 않다. 그가 만 69~70세 때 녹음한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는 이 레파토리의 '필청 음반'으로 꼽히며, 71세 때 녹음인 리사이틀집에서도 기술에 거의 아무런 하자가 없기 때문이다. 80대에도 사고로 중단하기 전에는 계속 리사이틀을 열었다고 하는데, 이해가 간다.
   
연주 경향으론, 밀스타인은 당시의 바이올리니스트 중 단연코 지성파에 속한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 정서 위주 경향을 맨 왼편에, 엄격한 구성과 단정함을 맨 오른편에 놓는다면, 당시의 유명 인사들인 티보, 크라이슬러, 하이페츠, 오이스트라흐, 셰링, 프랑세스카티, 데 비토, 느뵈, 그뤼미오 등과 비교할 때 밀스타인을 '좌파'로 분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가 가끔 좀 무뚝뚝하다는 말은 나오지만, 무엇보다도 철저한 곡 해석, 정평 있는 기술과 '은색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음색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으며, 특히 전문가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1992년 그의 서거 기념으로 발매된 '밀스타인의 예술'

   이 정도 되는 거장이면 녹음이 많을 법도 한데, 밀스타인은 그렇지 않으며 '전집 녹음'은 바흐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빼면 아예 없다. 또 같은 레파토리의 재녹음이 많아서 곡 수도 별로 많지 않다. 의외로 소품이 많은데, 이 때문인지 협주곡이나 소나타 등 대곡(大曲)이 많지 않다. 게다가 요즘 상당수의 Capitol 녹음들은 거의 폐반 상태라 구하기도 쉽지 않다.
   이렇게 녹음한 곡들이 비교적 적은 이유는 그가 루돌프 제르킨이나 클리포드 커즌처럼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신경을 많이 쓰는 섬세하고 까다로운 성격이었기 때문인데, 자신은 이렇게 말했다.

"... 실제 무대에서는 나는 물을 만난 고기와 같다. 녹음장에서는 나는 완벽해야 하기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다... 나는 녹음에서 '외과 수술'을 싫어하며, 이번 (DG) 녹음들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내가 뭔가 잘못해서 다시 녹음해야 했을 때, (내가 등장하는 곳의) 앞 부분부터 오케스트라가 다시 연주해 주고 내가 들어갔다... "

   이렇게 전체의 흐름을 중요시하는 경향은 아르투르 루빈슈타인, 리히테르 등 이전 세대의 연주가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확실히 현대의 레코딩에 잘 맞는 습관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또 아쉬운 점이, Capitol이나 DG는 그의 실황을 좋은 음질로 녹음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앙드레 클뤼탕스 등도 포함해서, 그의 말에서 미루어볼 때 그도 실황과 레코드의 차이가 꽤 컸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그가 무뚝뚝하다는 - 심지어 얼음 같다는 - 소리를 들은 것은 안타깝다. 이렇게 된 이유는, 밀스타인이 근본적으로 자신의 실황을 레코드로 발매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협주곡부터 보자. 베토벤과 브람스 협주곡은 Capitol 시절에 모노랄과 스테레오로 2회씩, DG에서는 브람스만을 녹음했다. 베토벤은 잘 알려진 오이스트라흐의 EMI 녹음보다 표면적인 부드러움이 덜해서인지, 우리 나라에서는 이 녹음을 최고로 꼽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더 견고하고 기백이 있으므로, 오이스트라흐가 '너무 유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하이페츠가 너무 차갑다고 느낀다면) 밀스타인이 좋은 선택이다. 브람스는 DG 녹음보다는 Capitol2종이 좀 나은데, 시원스러운 밀스타인의 매력이 잘 나타나 있는 좋은 연주다. 4종을(음반 회사가 모두 다르다) CD로 구할 수 있는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은 - 나는 1940년의 슈토크 지휘 음반만 들어 보지 못했다 - 쉽게 우리 나라에서 볼 수 있는 스테레오 Capitol 녹음과 DG 녹음 중 어느 편을 골라도 좋지만, '절절한 러시아 정서'를 찾는 분께는 솔직이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 생상스 3번과 쇼송의 '시곡'은 너무나 단정해서, 아무래도 그뤼미오나 프랑세스카티처럼 요염한 매력을 지닌 음반에 더 끌린다. 바흐나 비발디의 협주곡들이 CD로 나온 일이 전혀 없어 아쉽지만4), 시대 악기 연주들이 우선인 요즘 분위기로 보아 이해할 수는 있다. 모차르트 협주곡 4,5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다5). Testament에서 랄로와 골드마크의 협주곡을 재발매했고, 1957년의 초기 스테레오 녹음으로 차이코프스키와 붙어 있는, 그와 인연이 긴 글라주노프의 협주곡도 좋다.

   밀스타인의 바흐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는 오래 전부터 정평이 나 있었다. 그가 남긴 유일한 '전집' 녹음인데, Capitol에 모노랄로, 그리고 잘 알려진 DGoriginals 발매 스테레오 녹음이 있다. 나는 후자만 들어 볼 수 있었는데, 어느 유명한 평론가 왈 '설계도가 단연 독보적'이다. 그의 연주 중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별로 소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실내악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얘기지만, 그가 실내악에 관심이 많았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 러시아에서 떠나 유럽을 연주 여행하던 시절에는 호로비츠 및 피아티고르스키와 트리오로 꽤 활동한 모양이지만, 현재 남은 3중주곡 녹음은 전혀 없다.
   
레코드에서 그의 듀오 파트너로는 당시 미국에서 활발하게 반주 활동을 펼친 레온 포머즈(Leon Pommers)가 돋보이는데, 이 콤비의 비중을 프랑세스카티/카자드쥐, 오이스트라흐/오보린(나중에는 리히테르)이나 셰링/루빈슈타인 팀들처럼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비중이 동등한 콤비들과 같이 놓을 수는 없지 않을까. 길이 15분 이하의 작품들을 '소품'이라고 간주한다면, 그의 발매된 실내악 녹음은 모차르트 소나타 3(포머즈), 베토벤 소나타 8,9(피아노는 발삼), 5(피르쿠스니), 드뷔시 소나타(피르쿠스니), 프로코피에프 2(발삼), 브람스 3(RCA 녹음, 호로비츠)이 전부인데다 스테레오는 피르쿠스니와 녹음한 2곡 뿐이다. Capitol 발매들이 거의 폐반되는 통에 좀 무리해서 다 들어 보기는 했지만, 솔직히 '두 명수가 대등하게 결합하는' 재미는 내가 위에서 든 다른 쟁쟁한 콤비들에 비해 덜하다. 그런 측면을 찾는다면 다른 좋은 음반이 많다. 이 중에서는 모차르트 3이 특히 좋은데, 그뤼미오처럼 감미롭지는 않지만 깨끗하고 싹싹하게 연주한, 그야말로 밀스타인의 장점을 아주 잘 들을 수 있는 연주다. 지금 구하려면 아주 비싼 가격이 문제지만.
  
하지만 소품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소품에서는 반주자는 독주자의 해석을 잘 뒷받침하는 편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티보나 그뤼미오처럼 상대적으로 감미로운 스타일의 연주야 물론 아니지만, 작은 규모의 곡들도 견실하고 잘 구성하는 데 밀스타인의 특성이 발휘된다. 모노랄 시대부터 'Miniatures''Vignettes'의 두 LP는 유명했는데, CD로는 하나로 붙여서 발매되었고 운 좋게도 라이선스 2for1으로 쉽게 구해 볼 수 있다. 1956~57년의 이 녹음은 소품에서 밀스타인의 해석 경향을 대표하는 음반으로 추천할 만 하다. 스테레오 시대에서는 'Encores'가 피아노 반주의 대표적인 소품집인데, 아쉽게도 현재 CD를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LP도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인기가 높아 정말 비싸다). 하지만 '이탈리아 소나타집'은 다행히 앞에 말한 라이선스로 구할 수 있으며, 밀스타인의 깨끗하고 군더더기 없는 연주가 '악마의 트릴' 등의 이탈리아 레파토리에 독특한 매력을 준다. 구하기 쉬운 면에서 따진다면, 근래 originals 시리즈로 나왔고 아마 스튜디오에서는 최후의 녹음일 DG'바이올린 리사이틀'도 좋다. 71세라는 나이를 무색하게 만든다.
  
피아노 반주 외에 오케스트라 반주의 소품도 LP 2장이 있다. 'Music of old Russia'1992년 발매 CD '밀스타인의 예술'에 전부 들어 있는 외에 최근에 DVD와 붙어 나온 '나탄 밀스타인의 전설'에도 두어 곡 들어가서 좀 접하기 쉬운 데 반해, 'Masterpieces'CD로 발매된 곡도 거의 없을 뿐더러 LP로도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양쪽 모두 잘 정제된, 극히 밀스타인다운 솜씨를 들을 수 있다.

   보통 그렇게들 생각은 안 하지만, 밀스타인은 진짜 천재형이었던 모양이다. "바이올린의 테크닉은 사실 그리 어렵지 않아요. 저는 일곱 살 때 그것을 모조리 마스터해 버렸답니다.... 그 때는 사실 바이올린에 별 뜻이 없었는데, 어머니의 간곡한 권고로 이 길에 들어섰습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이 길을 다시 택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
   
이런 인터뷰를 보고 있자면, 범인(凡人)으로서 대단히 부럽다는 생각이 안 들 수 없다. 하지만 능력을 타고 나더라도 성인이 된 후까지도 갈채를 받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데, 이 점에서도 밀스타인은 가장 성공한 사람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Sources, Links, and Notes

  1. Nathan Milstein  ; 훌륭한 개인 홈페이지. 주인장께서 고맙게도 디스코그라피 원본 사용을 허락해 주셨다.
  2. Nathan Milstein, the great master of the violin ; episode에 읽어 볼 만 한 것이 많다.
  3. Nathan Milstein page ; 바이올린을 좋아하는 일본인의 페이지. Menuhin의 페이지와 같이 붙어 있다.
  4. 비발디 협주곡은 최근에 발매된 Introuvables 시리즈로 7곡이 나왔다. Capitol에 남긴 전체 수가 10곡이라 세 곡은 빠졌지만...
  5. 개인적으로는 밀스타인은 1급의 모차르티안이다. 왜 그렇게 녹음을 안 했냐가 참 아쉽지만.

(c) 2006~ , 이영록 ; 링크는 자유지만, 인용하시려면 우선 제게 메일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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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ed ; 1st Feb. 2006
Last update ; 30th Sep.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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