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레이 페라이어 25주년 기념집 ; 이영록의 음악 페이지

English

머레이 페라이어 ; 소니 25주년 기념 세트
Sony SX4K 63380(4CD set)

Contributed to Audio & Records, p.266, Feb. 1998
Partly Corrected on May 2001

머레이 페라이어가 Sony에서 함께 한 25년을 기념하는, 1976∼96년의 녹음 중 4장으로 압축한 편집 음반이다. D.스카를라티에서 티페트에 이르기까지 근래 많이 넓어진 레파토리 중에서 발췌했는데, 단순히 잘 팔릴 것만 짜깁기한 것은 결코 아니고, CD로 처음 발매되거나 최초로 공개되는 녹음도 있다. 1,2장은 독주곡, 3장은 실내악과 가곡 반주, 4장은 협주곡으로 구성되었다.

   내지에 의하면, 페라이어가 쇼팽 및 라흐마니노프 등까지 레파토리를 넓히게 된 것은 호로비츠와 가진 친교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첫 곡인 D.스카를라티의 소나타 2곡에서는 쳄발로의 효과를 고려한 다양한 음색의 구사에서 이를 분명히 엿볼 수 있으며, 그의 가장 매력적인 측면을 들을 수 있다. 나는 아직 그의 헨델과 스카를라티 음반(Sony SK 62785)을 듣지는 못했으나, 이 정도의 수준이라면 호평을 받아 마땅하리라 생각한다. 비교적 초기인 1976년의 녹음인 슈만의 '나비'에서도 이런 효과는 돋보이는데, 분명히 슈만의 다양한 표정을 음색의 변화로 살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에 비해 힘있는 추진력이 줄어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약점이다. 슈베르트의 즉흥곡집(Sony SK 37291)은 사실 모차르트의 협주곡집과 함께 그의 출세작이나 다름없으며, 이번 발매에 수록된 A♭장조 D.899-4도 같은 세대의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아름다운 연주이다.
   베토벤의 피아노 5중주곡은 명백히 모차르트의 K.452를 본딴 작품으로 유희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피아노와 관의 음색이 잘 포착된 녹음도 마음에 들고, 모두가 협력해서 앙상블을 만드는 분위기도 잘 드러난 좋은 연주이다. 브람스의 피아노 4중주 1번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어느 모로 보나 실내악 중 대단한 명곡인데, 페라이어와 아마데우스 4중주단 멤버의 1986년 연주는 솔직이 다소 실망스럽다. 특히 1악장의 템포에서 필자를 의아하게 하는데, 필자가 들은 어떤 연주보다도 느리다. 선율을 강조하려는 의도인 것 같은데, 긴장감으로 가득한 이 악장에는 어울리지 않으며, 느린 템포로 인해 현과 피아노 사이의 호흡이 깨지는 일도 종종 있다. 전반적으로 현의 솜씨도 같은 멤버들이 1970년 길렐스와 녹음한 음반(DG originals 447 407-2)보다 못하며, 피아노도 현에 끌려가는 듯하며 힘과 무게가 부족한 느낌이다.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은 앞의 DG 음반이 너무 훌륭해서인지 모르겠다.
   모차르트로는 1990년에 녹음된 자신이 피아노와 독주를 겸한 협주곡 27번 및 처음 발매된 6개의 독일 춤곡(관현악곡이 원곡임)과 아다지오 K.540이 수록되어 있는데, 자신 있는 터치로 변화를 주는 솔직한 연주가 신뢰감을 준다. 모차르트 연주에서는 아름다운 음색이 큰 매력이 되는데, 특히 협주곡에서 표정이 풍부하며, 지휘 솜씨로도 별 하자가 없다. 나는 이 곡의 연주로는 고전미와 품위, 안정감의 박하우스/뵘 (Decca 433 898-2), 다소 낭만적이고 표정이 짙은 바렌보임(EMI CZS 7 67878 2), 즉흥성이 빛나고 아름다운 브렌델/매리너(Philips Duo 442 571-2)를 즐겨 듣는데, 이 녹음을 이 '3B'의 수준과 대등하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무리겠지만, 그런대로 전혀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다.
   쇼팽은 1994년 녹음된 발라드 전곡(Sony SK 64399)에서 발췌한 1번과 1989년 실황인 협주곡 2번이 수록되었다. 협주곡은 피아노에 너무 초점이 맞춰져서 그런지 관현악의 음량이 약하게 들리는데, 아무리 원래 수준이 반주에 머무르는 관현악 파트라고 해도 균형에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페라이어의 아름다운 터치와 생기있는 해석은 여전히 빛나는 것은 사실이다. 발라드 1번은 명확히 호로비츠의 1965년 카네기 홀 복귀 실황(Sony S3K 53461)과 1968년 TV 콘서트(Sony)를 연상시키는데, 시대가 다른 만큼 전자만큼 자유롭지는 못하더라도 그가 호로비츠에게 무엇을 배웠나를 암시하는, 들어 볼 만한 연주이다. 리스트의 연습곡 '난장이의 춤'이나, 라흐마니노프의 연습곡에서는 그의 변화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외에 비교적 젊은 시기인 1976, 80년의 바르토크 독집 녹음들, 80년대 중반에 녹음한 베르크와 티페트의 피아노 소나타는 페라이어의 레파토리가 단순히 바로크에서 낭만까지로 한정되지 않음을 보여 준다.

한 예술가의 초상으로는 매우 좋은 기획이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연주면에서는 그의 본령이 협주곡이나 힘이 필요한 실내악의 대곡보다는 독주곡에 있음을 보여 준다는 것과, 피어즈를 반주한 슈만 가곡 op.40의 가사가 내지에 실려 있지 않은 점이다.

Music Home

Good performances

Review lists

English

Created ; 10th May 2001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