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바체비치의 베토벤 소나타 8~11번 ; 이영록의 음악 페이지

English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op.13, 9번 E장조 op.14-1
  10번 G장조 op.14-2, 11번 B♭장조 op.22
  스티븐 코바세비치(p)
  녹음; 1997년 5월, 에어 스튜디오, 런던
  EMI CDC 5 56586 2

Contributed in Auditorium, p.137, Oct. 1998
Partly Corrected on Apr. 2001

   코바세비치가 최근 주력하는 녹음 레파토리는 베토벤, 브람스, 슈베르트이다. 이 중 슈베르트는 D.960의 녹음이 매우 호평을 받는 등 벌써 정평이 나 있고, 베토벤도 몇 안 되는 정통적인 연주가로 주목받고 있다.
   나는 전에 그의 베토벤 소나타 12, 19, 20, 30번 음반을 리뷰한 일이 있다. 그 때 코바세비치의 연주를 리히테르, 박하우스, 피셔 및 길렐스와 비교했는데, 리히테르의 기막힌 카멜레온 같은 유연성이나 길렐스의 따스한 정감에는 그가 아직 미치지 못했다. op.109가 마치 중기 작품처럼 들렸던 것이 약점이었는데, 결론만 먼저 말한다면 2년 후의 이 녹음에서는 아직 크게 변화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op.14의 두 작품은 베토벤치고는 규모가 작으면서 매우 온화한 곡이다. 9번 E장조의 아담한 첫 악장부터, 코바세비치의 연주에는 부드러움이나 친근함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2, 3악장 모두 내가 받은 느낌이 마찬가지이다. 10번 G장조도 크게 다른 점은 없다. 2악장 안단테는 좀 심하게 말하자면, 너무 긴장이 넘쳐서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지' 의심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역시 규모가 작은 소나타인 op.49에서는 이런 해석이 그다지 큰 위화감을 주지는 않았는데, op.14에서는 어색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켐프(DG)의 기막힌 친근감이나, G장조만 녹음한 길렐스(DG)의 느긋한 여유 있는 아름다움과는 비교할 수 없으며, 이 둘보다 해석 방향이 코바세비치에 가까운 리히테르의 60년대 초의 녹음(Philips)보다도 심각함과 듣는 사람에게 남기는 인상에서 뒤떨어진다(op.14-1의 2악장에서, 리히테르의 느린 템포가 주는 인상은 매우 강렬하다). op.14의 두 작품에서는 내 취향과 코바세비치의 연주는 거의 정반대이다.
   반면에 8번과 11번에서는 별 위화감이 없다. 다소 너무 고지식하게 악보대로 연주하는 면이 없지 않지만, 전통적인 해석으로 끝까지 추진력과 힘을 앞세운 연주며, 2악장도 충분히 노래하고 있다. 11번도 비슷한 해석으로 별 거부감이 없이 들을 수 있다. 단, 이런 방향의 해석으로는 이미 선례가 많다는 점이 문제될 수 있겠다. '비창'만 해도, 이미 내가 지난 6월호에서 리뷰한 리히테르의 48년 녹음(Melodiya)의 박력은 압도적이다. 다른 음반을 일일이 열거할 필요까지 없으리라 생각한다.
   총평을 하자면, 코바세비치의 이번 베토벤은 나에게 아주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이는 그의 이번 녹음이 서울 독주회에서 들을 수 있었던 아름다운 음향을 못 보여 준 것과, 그의 베토벤이 다른 거장들의 녹음처럼 심각한 충격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다음 녹음에서는 좀 더 개성적인, 그러면서도 충격적인 면을 보여 주기를 기대한다.

Music Home

Good performances

Review lists

English

Created ; 2nd May 2001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