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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dolf Kempe(14th Jun. 1910 ~ 12th May 1976)

[ The genuine craftsman ]

(First appeared at Classical Forum of Freechal)

Rudolf Kempe [ from Testament SBT 1276 ]

   우리 나라에서는, 앙드레 클뤼탕스 페이지에서 말했듯이, 프랑스계 예술가들은 좀 '찬밥'이지만 독일계는 상대적으로 더 유명한 편이다. 하지만, 실력에 비해 조명을 덜 받은 사람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 사람 중에 루돌프 켐페(Rudolf Kempe)가 있음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유감이다.

   켐페는 드레스덴 근교 니더포이리츠(Niederpoyritz) 출신이다. 어릴 때는 피아노, 바이올린, 오보에 등을 교육받았는데, 그는 피아노도 명수 수준이었다고 하지만(1970년대에야 가끔 피아니스트로 출연한다. 1970,72년 바흐의 3, 4대를 위한 건반악기 협주곡에 출연한 녹음이 남아 있다) 프로 연주가의 첫 경력은 지휘자 중에서 흔치 않은 경우인 오보에였다. 그의 재능은 워낙 뛰어나서, 18세 때 도르트문트(Dortmund)의 오케스트라 수석을 거친 후 불과 4개월 후에 전통 있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경쟁자는 자그마치 44명이었다고 한다. 이 오케스트라는 당시 푸르트뱅글러가 상임이었으며, 다음 해에는 브루노 발터가 상임을 맡았고, 객원 지휘자로는 리햐르트 슈트라우스, 클레멘스 크라우스, 오토 클렘페러, 카를 슈트라우베(Karl Straube), 귄터 라민(Günther Ramin) 등 쟁쟁한 거장들이 즐비하다. 젊은 켐페는 여기서 거장들의 리허설을 지켜 보면서 지휘 방법을 익혔음이 분명하다.
   그의 오보에 선생은 켐페가 지휘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1934년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서 지휘를 맡았을 때 지켜보고 있던 라이프치히 오페라의 감독이 앞으로 지휘를 맡으라고 강력히 권했다. 켐페는 "단지 어떻게 하는지만 알고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1935년 그는 로르칭(Lortzing)'Der Wildschütz'를 지휘하여 데뷔했다. 카라얀이 그랬듯이, 지방 소도시의 오페라들은 물론 불충분한 조건에서 공연되지만 지휘자의 능력 단련이라는 점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토양도 별로 없는 듯하다. 켐페도 마찬가지 조건에서 일했는데, 4주 동안에 미카도, 나비 부인, 카르멘, 코지 판 투테, 토스카, 리골레토, 미뇽, 황제와 목수, 리엔치, 예프게니 오네긴, 바그다드의 이발사, 운디네, 파르지팔, 내가 왕이었다면(Si j'étais roi)14개 오페라를 공연했다는 말은 정말 믿기지 않는 실화다. 토마스 비첨 추모 콘서트에서 거의 리허설 없이 바로 딜리어스의 작품을 지휘했다는 일화처럼, 초견으로 곡을 파악하는 능력이 대단히 뛰어났던 것 같다.
   그에게는 나치 시비가 따라다니지 않는다. 'Heil Hitler!' 선언도 거부했으며, 그가 지휘하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서 유태인 단원을 해고하라고 압력이 들어오자 자리를 그만뒀다. 1942그는 군에 입대했는데, 심각한 음악가 부족으로 자주 불려나가는 바람에 병사 생활만 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전쟁이 끝난 후, 헴니츠(Chemnitz)1)의 오페라 지휘자로 음악계에 복귀한 켐페는 1948년 바이마르 국립 오페라로 옮겼다가 다음 해에 작센 국립 오페라로 옮겨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를 지휘했다. 1952년부터는 서독으로 가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에 1954년까지 있었는데, 1953년 데뷔한 코벤트 가든에서 1954년과 1956'반지'를 공연했다. 이 때 유명한 바그너 평론가 에른스트 뉴먼(Ernest Newman)은 그의 지휘를 격찬했다. 빈 필하모닉과도 50년대부터 오페라 지휘로 관계가 길었다. 영국 HMV와 맺은 계약도 이 부근에 시작하는데, 19538월 매니저가 HMV의 레코딩 담당자 데이비드 빅넬(David Bicknell)에게2) "그는 곧 국제적인 경력을 시작할 예정이지만, 아직 정식 레코드 계약을 맺지 않았다"고 편지를 보낸 데서 시작한다3). 독점 계약은 1963년까지 약 10년 갔는데, 켐페는 좀 더 자유를 원했기 때문에 HMV에서 내린 계약 연장의 포기 결정에 대해 적극적으로 수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의 메트로폴리탄, 바이로이트 등의 출연은 켐페의 명성을 국제적으로 바꿔 놓았다.
   1963년 뒤부터는 EMI 외에 Eurodisc, RCA, Decca 등 몇 군데에 자유로이 녹음했는데, 특기할 만한 음반은 로열 필을 지휘하여 리더스 다이제스트 LP로 발매된 몇 RCA 녹음, 정경화를 받쳐 준 브루흐 녹음(Decca), 겔버가 독주자인 브람스 2(EMI), 그리고 EMI가 의뢰한 두 가지 큰 기획인 뮌헨 필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를 지휘한 R.슈트라우스 관현악곡 전집 및 오페라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
   그 동안 비첨 자신의 주선으로 1960년부터 로열 필하모닉을 지휘하다가 다음 해 비첨이 죽은 후 상임이 되었으며, 1975년까지 이 자리를 유지했다. 그 외에 뮌헨 필하모닉과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상임으로 있었으며, 1975BBC 심포니의 상임으로 옮겼으나 불과 몇 개월 후 큰 수술 뒤에 취리히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그의 음악은 독일의 전통적인 지휘자답게 (독일 정통의 레파토리에서는) 웅장하고 견고한데, 그 반면에 상당히 명석하고 눈에 띄는 과장을 찾기 힘들다. 푸르트뱅글러 같은 19세기 낭만주의에서는 거리가 아주 멀다. 내게는 다소 비슷한 성향의 프랑스 지휘자 클뤼탕스를 연상시키는데, 클뤼탕스가 독일 음악을 많이 남겼지만, 켐페는 프랑스 음악 녹음이 거의 안 남아 있는 점에서 다르다(실제 지휘는 했다. 레코드로 거의 남지 않았을 뿐이다). 실연이나 레코드에서 켐페가 가장 환호받은 레파토리가 바그너와 R.슈트라우스였음은 이 지휘자의 음악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EMI의 고참 프로듀서 피터 앤드리(Peter Andry)"가벼움과 투명함이 그의 장기였습니다"루돌프 제르킨"모든 음악이 그에게서 실내악처럼 흘러나온다"라는 말에서 그가 얼마나 명석하게 곡을 다루었나를 알 수는 있지만, 이것 뿐이라면 특히 바그너와 R.슈트라우스에서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는 레파토리가 결코 좁지 않았다. 그의 디스코그라피가 물론 카라얀이나 푸르트뱅글러처럼 방대하지는 않지만, 그의 레코딩 레파토리에는 '그가 이런 곡도 지휘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작곡가가 들어 있다. 비첨 추모 콘서트의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빠른 초견 실력 뿐 아니라 그것도 아주 잘 연주했다는 일화는 - 그와 같이 연주했던 오케스트라 단원은 "비첨을 제외하면 그야말로 최고의 딜리어스 지휘자다"라 말했다 - 그가 얼마나 만능 지휘자 겸 장인이었나를 반영한다. 독일 지휘자다운 두터움과, 필요할 때는 가벼움과 투명함을 조절할 수 있는 균형 감각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다양한 레파토리에서 호평을 받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 빈 필하모닉 등을 지휘한 음반 중에는 베토벤 등에 비하면 정말 '경음악'으로 취급될 만한 작품이 많다. J.슈트라우스 부자 외에 퐁키엘리 '시간의 춤', 마스카니나 슈미트, 구노 등의 오페라 발췌, 오펜바흐의 '지옥의 오르페우스' 서곡 등을 베토벤이나 바그너만큼이나 여유 있게 지휘하는 솜씨는 평범한 지휘자가 할 수 없는 일이다. 카라얀이 DG로 이적한 이후 EMI에서 이런 레파토리를 지휘할 만한 이름난 사람이 없었는데, 아마 그 덕에 켐페에게 의뢰가 갔을 것이고, 그는 아마 흔쾌히 수락했을 게 분명하다. 그가 이런 레파토리에 완전히 익숙해 있었음은 EMI 녹음 한참 뒤에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도 Eterna에서 J.슈트라우스 부자의 작품을 녹음했던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아마 그의 음반 중 우리 나라에서 가장 유명하고 오래 애호받은 것은 단연 정경화 협연의 브루흐 협주곡 1번과 스코틀랜드 환상곡(Decca)일 것이다. 성음 LP 초기부터 애호받은 음반인데, 개인적으로 하이페츠의 강인하고도 씩씩하며 거침없는 연주(RCA)에 너무 익숙해 있다 보니 이 음반에는 손이 잘 안 가는 흠이 있지만(특히 독주 때문에), 지휘에는 전혀 그런 감이 없다. 독주보다 오히려 나는 오케스트라 쪽을 좋아한다.
   뭐니뭐니해도 우리 나라라는 특수성을 떠나서 가장 평이 좋은 음반은 바그너 '로엥그린'(EMI) 이다. 강력한 캐스트와, 그에 걸맞는 당당한 음악은 다니엘 바렌보임마저 경탄하게 만들었다. 다른 바그너 녹음은 1956년 베를린에서 녹음한 '마이스터징어'(EMI). 역시 칭찬이 자자하다. 구해 보고 싶긴 한데, 지금 폐반되는 바람에 도저히 구하기가 어렵다. 1960년 바이로이트 실황의 '반지'도 구하기 쉽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최근에 로열 오페라 실황의 '반지'Testament에서 낸 이외에, Testament의 베를린 필과 빈 필 지휘 전주곡과 서곡 등, 베를린 국립 오페라의 '라인의 황금' 발췌(EMI, Eterna) 등을 찾아볼 수 있다. 내가 바그너에 아직은 큰 흥미가 없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이것 다음으로는 1970~76년의 R.슈트라우스 관현악곡 전집(EMI)이 손꼽힌다. CD로 처음에 3장짜리 세 세트로 나누어 발매되었는데, 2for1 및 낱장으로도 나눠 나왔다. 나는 2for1 프랑스 발매에 들어간 대표적인 곡들만 들어 보았는데,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중량감 있는 음색과 그의 진지한 접근이 잘 맞아떨어진 연주다. 이상스럽게도 EMIDecca1970년대 초에서 중반의 녹음들이 해상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제법 있는데, 이 녹음들은 그렇지 않으며, R.슈트라우스의 약간 과도하기까지 한 찬란한 관현악의 음향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켐페의 R.슈트라우스는 오래 전부터 정평이 나 있었는데, 그가 카라얀, 푸르트뱅글러, 클레멘스 크라우스, 조지 셀, 칼 뵘처럼 작곡가 자신과 생전에 알고 지내지는 않았지만 게반트하우스에 있을 때 (오보 주자로서) 작곡가의 지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 경험이 반영되었을지도 모른다.
   베토벤 연주는 만년에 뮌헨 필과 녹음한 교향곡 전집(EMI)이 남아 있는데, 박스 세트로 저렴한데다가 소박함과 당당함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CD로 라이선스 발매한 Disky社의 리매스터링 음질이 좋은 편이라고는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추천하기에는 다소 아쉽다4). 이것 말고 1959년의 3(베를린 필, EMI. 아래에서 말할 Testament 낱장 및 박스 세트에 포함), 1970년대 초반의 5(톤할레 오케스트라, Ex Libris)등 몇 단독 녹음도 있다. 3번의 베를린 필 단독 녹음에 비해 뒤의 뮌헨 필 녹음이 템포가 꽤 빨라진 점이 흥미롭다5). 브람스로는 교향곡 전집으로 1956~60년의 베를린 필 전집(EMI, 현재 Testament 발매)1974~75년의 뮌헨 필 전집(Ex Libris, CD로는 AcantaScribendum 등에서 발매)이 있는데, 이상할 정도로 세평에 잘 오르내리지 않는다. 내 귀에는 전자가 좀 끌리는데, 베를린 필을 더 좋아하는 선입견 때문일까. 당시의 Electrola 녹음이 모노랄이라도 아주 선명하기는 하지만, 이 세트는 2,4번과 하이든 주제 변주곡이 모노랄이라는 아쉬움은 있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점은, 1번은 비슷한 시기에 뵘이 같은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음반(DG)이 더 소박하고 더 강렬하다는 것이다.

   일본을 제외하고는 CD로 발매되지 않았던, HMV 초기의 녹음들을 쉽게 구해 볼 수 있게 만든 Testament의 발매들을 소개 안 할 수는 절대로 없다. 이 회사의 스튜어트 브라운 사장은 분명히 켐페의 팬인가 보다. 이 레코드 회사에서 켐페 이상 아이템을 많이 발매한 지휘자가 또 있을까 궁금할 지경이다. 레코드 번호로 SBT 1035, 1036, 1092, 1100, 1127, 1249(ASD 시리즈의 180g LP로도 재발매), 1267, 1269~80, 3054(3 CDs)까지 자그마치 20 타이틀이나 내놓았으며, 이 중에는 그간 LP로도 구경하기 어려웠던 품목들도 제법 있다6).  1269~80번은 개별 낱장 외에 12장짜리 박스 세트로도 나왔는데, 이 값비싼 세트는 켐페의 다양한 재능을 가장 손쉽게 맛볼 수 있는 표본 같은 존재다. 스메타나, 드보르작 같은 체코 작곡가, 림스키 코르사코프 '세헤랴자데', 다양한 작곡가의 소품집, 바흐 관현악 모음곡 3번 등까지 별별 다양한 곡들이 들어가 있다. 여기 수록된 곡 중 코다이 '하리 야노시' 모음곡과 스메타나 '팔린 신부' 발췌가 특히 흥미를 끄는데, 후자는 그가 특히 좋아하던 곡으로, 1959년 빈 필과 서곡, 1961년 로열 필과 서곡을 포함한 4곡 발췌를 녹음한 데 이어(둘 다 이 12장 세트에 포함) 1962~63년 밤베르크 심포니와 로렝가르, 분덜리히 등의 가수를 동원하여 전곡까지 녹음했다(EMI 본사에서 CD로 발매함). 켐페는 딸에게 "음악을 시작할 때쯤, 프리츠 부시 지휘 '마술 피리' 서곡의 E flat 장조 화음을 들으면서 전율을 느꼈다"고 말했을 정도로 모차르트도 좋아했는데, 의외로 녹음이 적다. 이 세트 중에는 모차르트나 하이든의 작품도 있어서 귀중하다. 드보르작 '신세계' 교향곡도 그가 상당히 좋아하던 레파토리인데, 이 세트에는 1957년 베를린 필과 한 녹음이 들어가 있다. 당연히 민족색보다는 견고한 구성과 규모가 앞서간다.
   이 세트 외의 낱장 발매들에는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6번이 있다. 나는 아직 5번은 들어 보지 못했지만, 6번은 고스란히 켐페 스타일이다. 므라빈스키의 일관된 인 템포보다는 좀 자유롭지만, 푸르트뱅글러처럼 심하게 정서를 앞세우고 엄청나게 템포를 바꿔 가며 압박해 들어오지는 않는다. 두 사람보다 좀 심심하다는 불평도 있을 만 하지만, 두 사람의 중도적인 연주다. R.슈트라우스 '돈 키호테''전집'에 포함된 드레스덴 연주까지 합쳐서 폴 토르틀리에와 세 번의 녹음이 남아 있는데, Testament에서 LP(ASD 326)CD 양쪽으로 발매한 1958년의 첫 녹음(HMV)은 이 곡의 첫 스테레오 녹음이자, 푸르니에/셀의 1960년 녹음(Columbia)과 함께 스테레오 초기의 음반들을 대표한다.

   그는 순수 관현악곡이나 교향곡 녹음은 꽤 되는 데 비해, 협주곡 반주나 성악곡 지휘는 의외로 많지 않다. 협주곡 녹음으로는 1957년의 베를린 필 세션에서 피아니스트 야콥 김펠(Jakob Gimpel)과 베토벤 '황제'와 브람스 1, 브람스 협주곡을 예후디 메뉴힌과 연주했고(EMI), 넬슨 프레이레와 슈만과 그리그 협주곡, 리스트 '죽음의 춤'(Columbia)등이 있다. 1973년 겔버 협연의 브람스 협주곡 2(EMI)도 잘 알려져 있다. 아쉽게도 이들은 지금 CD로 구하기는 쉽지 않다. 성악곡으로는 1955년의 모노랄로 모차르트와 브람스의 레퀴엠, 피셔-디스카우와 협연한 말러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가 있는데(EMI) 모두 이름이 높다. 그 외에는 교향곡으로 브루크너의 4,5,8(Ex Libris ), 말러 1,2(BBC), 슈베르트 9(Columbia)등을 볼 수 있다. 좀 특이한 레파토리는 얼마 전 Decca의 레전드 시리즈로 나온 야나체크 '글라골루 미사'가 있다코른골트의 교향곡(RCA), 브리튼 '진혼 교향곡'과 스트라빈스키 '불새'(Eterna) 등이 이채로우며, 그가 18,19세기 작품만 지휘하지는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가 세상을 뜬 나이인 66세는 활발히 활동한 지휘자 치고는 다들 이르다고 생각할 정도다. 만년에는 뮌헨 필과 취리히 톤할레, 그리고 BBC의 상임을 맡아 더 의욕적으로 활동을 하려고 했는데 뜻밖으로 일찍 서거하고 말았다. 카라얀만큼만 살았어도 실력에 걸맞는 인기를 지금까지 누릴 수 있고, 디지탈 시대까지 더 녹음을 했다면 얼마나 원숙한 음악을 만들었을지 앞길을 기대할 만한, 몇 안 되는 정통적인 독일의 장인이었기 때문에 더욱 아쉬운 일이다.

각주

  1. 뒤의 카를 마르크스 시(Karl-Marx Stadt). 요즘은 통독 이후 또 이름이 바뀌었을지 모른다.
  2. 유명한 여류 바이얼리니스트 지오콘다 데 비토와 결혼했다.
  3. 사실 HMV와 계약하기 전에도 녹음은 있었는데, 금전적으로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을 뿐더러 켐페의 동의 없이 미국에서 판매될 정도로 불리한 계약이었다고 한다.
  4. Disky사는 EMI의 master를 갖다가 CD로 찍기만 했을 뿐이므로, 초창기 EMI의 리매스터링 수준이 별로 좋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솔직이 LP까지 사서 비교해 보고 싶은 마음은 별로 나지 않으므로 (그리고 구하기도 쉽지 않다) 판단하기 어렵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이 뮌헨 필의 Disky 박스 발매 중의 '영웅'보다 Testament 발매 1959년 '영웅' 녹음이 소리가 훨씬 선명하고 깔끔하게 들릴 정도다.
  5. 연주가들은 보통 나이가 들수록 템포가 느려지는 경향이 있다.
  6. HMV 초기의 스테레오 발매인 ASD 시리즈의 LP가 audiophile로 소리가 좋기로 유명하기 때문에 무척 비싼 편이다. 해외 LP 전문 사이트에서는 기본적으로 70~100$ 이상이고, 우리 나라에서는 대략 20~30만원 이상으로 거래된다. 위에 올린 Don Quixote 베를린 필 연주 LP(ASD 326)도 우리 나라에서는 물론 20만원 이상이다.

The Resources

  • Testament CDs ; liner notes
  • EMI 'Lohengrin' record ; EMI CMS 5 67415 2(3 set)
  • Record images ; Amazon(English, French and US regional division), Japanese HMV, LPlove.com(Don quixote LP)

(c) 2004~, 이영록 ; 링크는 자유지만, 인용시에는 미리 메일을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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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ed ; 3rd Oct.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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