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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o Klemperer(14th May 1885~3rd Jun. 1973)

[ Never mediocre, with iron-will ]

Based on the contributed material at SPO magazine, Dec. 2009 1]
Corrected on Jun. 2010

Otto Klemperer(photo; EMI, ca. 1960)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브루노 발터 등과 같은 수준으로 음악 애호가들에게 존경받고 영향력이 있으면서도, 스테레오의 좋은 녹음을 가장 많이 남긴 지휘자라면 단연코 클렘페러를 꼽아야 할 것이다. 그는 두 가지 의미에서 거인이었는데, 지휘대가 필요 없을 정도로 큰 키(188cm) 때문만이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비첨과 함께 아직까지 런던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며, 온갖 생활의 역경을 이겨 낸 의지력으로도 특필할 만 하다.

 클렘페러는 독일 브레슬라우2] 태생이다. 아버지는 아마추어 가수였으며, 어머니는 매우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다. 1889년 가족은 함부르크로 이주했고, 여기서 오토의 음악적 재능이 두드러져서 1901년 프랑크푸르트 음악원에 입학했다. 바로 다음 해 스승을 따라 베를린으로 갔으며, 여기서 처음에는 뛰어난 피아노 솜씨로 알려졌다. 반주자 및 합창 지휘 등으로 경력을 쌓다가 1906년 명연출가 막스 라인하르트(Max Rheinhardt)가 연출한 ‘지옥의 오르페우스’에서 스승 오스카르 프리트(Oskar Fried)의 대역을 맡으며 본격적인 오케스트라 지휘를 시작했다. 역시 프리트의 말러 교향곡 3번 연주에서 무대 뒤쪽에 배치된 연주자들의 지휘를 맡았는데, 이 연주 때 말러는 참석했으며 좋은 인상을 받았다. 다음 해에 말러 앞에서 교향곡 2번을 암기하여 피아노로 연주해 보이자, 감명을 받은 말러가 추천장을 써 주었으며3] 프라하의 독일 오페라에서 지휘 자리를 얻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그 후 함부르크, 스트라스부르, 쾰른, 비스바덴 등에서 오페라 경력을 쌓다가 1927~31년 베를린의 크롤 오페라(Kroll opera)를 맡았는데, 그는 여기서 신작을 적극적으로 상연하여 전위 음악의 르네상스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크롤 오페라는 적자를 내어 문을 닫고, 그는 베를린 국립 오페라로 옮겨 여전히 신작에 중심을 두고 공연했다. 1933년 독일 문화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힌덴부르크 대통령에게 괴테 메달을 받았는데, 바로 그 해 나치가 집권하고 유태인인 그는 미국으로 바로 이주해야 했다.

Klemperer & Walter Legge(Photo; EMI/G.MacDomnic, 1961)

 미국에서 바로 LA 필하모닉을 맡은 것까지는 좋았으나, 이 때부터 그에게 불운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그는 조울증에 시달리기 시작했으며, 1939년에는 뇌종양으로 오진받고 수술을 겪으며 한쪽 얼굴이 일그러져 병원에 들어가기도 했다. 조증 시기의 이상한 행동 때문에 그는 미국 내에서 기피 인물이 되었고, 2차 대전 후 유럽으로 와 1947~50년 부다페스트 오페라를 맡았고 그 후 객연 지휘자로 지냈으나 여전히 형편은 좋지 않았다. 1954년 그는 동구권 경력 때문에 미국에서 해외 여행까지도 제한받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월터 레그가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그를 기용한 것은 매우 행운이었다고밖에 할 수 없다.4] 그가 현재 누리는 높은 명성은 당연히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한 녹음 덕으로 돌려야 하니 말이다.
 미국을 떠난 뒤 최종적으로 정착한 런던에서, 그와 카라얀의 손 아래에서 당대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던 필하모니아5]와 함께 그의 명성은 전설적 수준까지 올라섰다. 레그가 EMI에서 1964년 퇴직하며 필하모니아를 해산하자, 그는 독자적 단체가 된 뉴 필하모니아의 지휘를 계속 맡는 방식으로 오케스트라를 지원했다. 영국에서 생활이 비로소 안정되었지만, 악운은 그를 떠나지 않았다. 비행기 계단에서 구르는 바람에 한동안 앉아서 지휘해야 했고 언제 일어설 수 있을지도 기약이 없던 것6], 집에서 파이프를 물고 자다가 침대 시트에 불이 붙어서 불을 끄려 얼결에 부은 것이 위스키여서 거의 죽을 만치 화상을 입은 것, 뇌일혈로 쓰러져 지휘대에 복귀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던 상황 등을 모두 불사조처럼 극복하고 86세까지 지휘를 계속했다. 그의 마지막 연주는 1971년 모차르트 세레나데 K.375, 애비 로드의 스튜디오 녹음이다. 1971년 은퇴 후는 스위스에서 딸 로테와 지내다가 88세로 영면했다.

◀ 바흐 '마태 수난곡'LP 초반(영국 Columbia SAX 2446~50 box issue)

 클렘페러가 현재까지 거장으로 불리는 이유는 당연히 바흐에서 브루크너와 말러까지 18~19세기 독일 음악들의 연주다. 그의 연주에서 우선 생각하기 쉬운 것이 만년 EMI 스테레오 녹음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상당히 느린 템포인데, 이 점에서는 사실 그는 다른 지휘자들이나 연주가들의 일반적인 경향인 ‘나이 먹을수록 느려지는 템포’에서 크게 다르지 않고 바흐나 베토벤 등 일부 작곡가에서만 두드러진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느린 템포 자체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로 생각할 수는 없다.7] 이를 입증하는 데엔 굳이 그의 오래된 Vox 음반들까지 찾아 가며 들을 필요도 별로 없다. EMI 녹음 중에서 그의 1950년대 중반 브람스 연주를 보면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 음역에서 들려 주는 꽉 들어찬 밀도 높은 음향과 독특한 현악기의 소리 - 가끔 나는 ‘이 부분의 현악기 소리가 이렇게도 들리나’란 생각을 할 때도 있다 - 및 강렬한 금관악기의 처리다. 당시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는 다른 지휘자가 지휘할 때에는 소리가 이렇지 않기 때문에, 이는 완전히 클렘페러 자신의 소리인 셈이다. 이런 방식은 음악 전체가 진행할 때 독특한 묵직한 느낌, 큰 운동량과 스케일, 주요한 성부가 잘 들리는 효과를 주고 있다. 베토벤 교향곡 5번을 들어 보면, 특히 4악장에서 이런 느낌을 잘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바이올린을 양편에 둔 옛날식 현악기 배치를 빼놓을 수 없다. 이 배치가 소위 ‘클렘페러 사운드’와 완전히 무관할 것 같지는 않다.

 바흐와 핸델에서는 대규모 종교 작품 연주들이 유명하다. 바흐의 b단조 미사와 마태 수난곡이 가장 유명할 텐데, 전자 뿐 아니라 후자도 리히터 등의 표준적인 현대 악기 연주보다 템포가 ‘끔직하게 느린’ 것은 합창에서 분명히 알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수난곡 1부의 개시와 끝 합창에서는 정말 초저속으로, 이것이 기호의 분기점이다. 개인적으로는 현재(2010)의 시각으로는, 마태 수난곡보다는 b단조 미사 편이 좀 더 보편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메시아 전곡은 분위기가 너무 어둡고 육중하며, 별로 좋지 않은 녹음 또한 문제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에서 조지 셀이나 데이비스 등이 보여 주는 좀 더 깨끗하고 투명한 스타일과 비교하는 것은 취향 문제로 본다. 나는 셀을 가장 좋아하고, 데이비스와 클렘페러는 비슷한 정도다. 이 레파토리에서 그는 늘 그렇듯이 두툼한 음향과 전체적인 중량감에서는 좋지만 유머나 위트는 약간 부족한 표현을 들려 주는데, 같은 세대의 녹음에서는 비첨이 아무래도 낫다. 두 작곡가를 비교하면 하이든 쪽이 전반적으로 좀 더 호감이 간다. 모차르트는 교향곡과 오페라 등을 상당히 많이 남겼는데, 교향곡보다는 오페라가 더 좋으며 ‘마술 피리’와 ‘돈 조반니’가 캐스트 면에서 최상급이다. 이 중 하나를 고른다면, Drama Giocoso’에서 giocoso의 측면이 너무 적은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후자가 낫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전자도 좋아하긴 하지만, 대사가 없는 마술 피리는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 베토벤 '피델리오'의 LP 초반(영국 Columbia SAX 2451~53 box issue)

 그의 베토벤은 오래 전부터 정평이 있었는데, 교향곡 전집과 피아노 협주곡 전집(바렌보임의 독주)을 한번에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교향곡 9곡은 4년에 걸쳐 녹음했지만, 전집으로 평가할 때 분명히 강점일 ‘일관된 주장’에서는 아날로그 시대의 녹음들 중 최상급으로 볼 수 있다.8] 나는 3,5번처럼 다소 둔하더라도 그의 큰 스케일이 장점으로 작용하는 곡을 좋아하는데, 6번처럼 분위기 성격이 두드러지는 경우 다소 경직된 느낌이 걸린다. 7번은 이 곡의 리듬을 살리는 활기가 덜하게 들리지만, 반대로 8번은 오히려 솔직한 연주가 호감을 주는 것이 재미있다. ‘피델리오’는 당시 EMI에서 모을 수 있던 최상의 캐스트와 그의 굳건한 구축이 매우 잘 어울린 연주다. 협주곡집은 바렌보임의 솔로가 너무 로맨틱해서 배경과 들뜨는 인상이 흠이다. 장엄 미사는 솔로들의 수준보다는 오케스트라와 합창의 장려함 때문에 인기가 높고, 서곡 모음집도 좋다.

 클렘페러의 진정한 위력은, 베토벤보다는 오히려 19세기 중~후반의 작곡가들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인상적인 작곡가는 브루크너인데, 그는 1930년대부터 여러 평론가들에게 ‘브루크너 연주에서 비할 바 없다’는 찬사를 들어 왔다. 그는 EMI4~9번의 스튜디오 녹음을 남겨 놓았다. 내가 이 작곡가에 대해 좀 과문일뿐더러 지금 4,6번만 빼고 모조리 폐반된 때문에 섣불리 말하기는 어렵지만, 강력한 금관과 일관된 기백은 다른 전통적인 명연 사이에서도 두드러진다. 브람스는 거의 폐반된 일 없이 꾸준히 팔려 왔으며, 교향곡 전 4곡은 EMI 스테레오 녹음의 가장 초창기에 녹음되어 약간 음향이 딱딱하게 들리긴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베토벤보다 4곡 전체에 걸쳐 더 공감할 수 있다. 드물게도 프랑스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녹음으로 바이올린 협주곡이 있는데,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의 힘차고 아름다운 연주는 아직 성가가 높다. 대학 축전 서곡은 발터의 아주 세련되고 밝은 연주에 비하면 좀 분위기가 어두워서 추천은 다소 주저하게 되는데, 짐작할 수 있듯이 비극적 서곡이 클렘페러의 성향에 훨씬 잘 맞는다. 그 외에는 루트비히가 노래한 ‘알토 랩소디’ 및 슈바르츠코프와 피셔-디스카우가 출연한 '독일 레퀴엠'이 유명하며, 후자의 견고하고 웅장한 배경은 진짜로 훌륭하다. 슈베르트 교향곡은 5,8,9번이 남아 있는데, 내가 들어 본 5,8번은 상식적인 연주지만 '미완성'의 분위기 연출에서는 아무래도 좀 부족하다. 멘델스존 ‘한여름밤의 꿈’이 매우 훌륭한 것은 상당히 의외인데, 약간 중후한 오케스트라 음향 위에 꿈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수놓은 연주다. 교향곡 3,4번도 오래 추천되던 연주인데 아쉽게도 지금 폐반되었다. 슈만 교향곡 전집에서는 1번이 튼튼하고 힘있는 느낌으로 가장 훌륭하며, 3번도 좋다. 이상하게도 오히려 나중에 녹음된 2,3번이 음향이 좋지 못한 점이 아쉽다. 물론 그의 스승이었던 말러의 연주를 빼놓을 수는 없는데, ‘대지의 노래’와 2, 4, 7, 9번 교향곡이 남아 있다. ‘대지의 노래’는 루트비히와 분덜리히라는 강력한 독창진으로 유명한데, 발터의 Decca 녹음에 비하면 정서적인 측면은 약간 덜 와 닿긴 하지만 가창의 수준이 이 정도 되는 음반은 앞으로도 만나보기 어려울 것 같다. 다음으로는 9번의 장대하고 광대한 느낌을 꼽고 싶다. 낭만파의 오페라로는 ‘방황하는 네덜란드인’만 볼 수 있는데, 2장 세트로 합쳐져 나온 바그너 관현악곡집도 괜찮은 선택으로, 밀도 높은 음향의 ‘뉘른베르크’ 1막 전주곡과 너무 느리지 않으면서 기백 있는 ‘리엔치’ 서곡이 그 중에 좋다. 푸르트뱅글러가 모노랄이라 아쉽다면, 클렘페러도 충분히 추천할 만 하다.
 독일계 외에는 그다지 녹음이 많지 않다. 환상 교향곡과 프랑크 교향곡이 보이는데, 둘 중에는 후자가 더 좋다고 생각하며 프랑크의 심각한 곡상에 그의 연주는 위화감이 거의 없다. 신세계 교향곡도 예상 외로 좋은 편이며 상식적이다. 반면에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6번도 남아 있는데, 지금은 LP 외엔 구할 길이 없다. ‘비창’만 들어 볼 수 있었는데, 듣다 보면 - 아쉽게도 연주에 감명받아서가 아니라 - 3악장의 엄청난 고집에 상당히 비창해진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할까 한다.

 클렘페러는 리허설에서 상당히 말이 많은 편이었던 모양이다. 뉴욕 필하모닉에서 베토벤을 연주할 때 리허설에서 베토벤의 역사적 위치나 곡에 대해서 강의를 늘어놓자 단원 중 한 명이 "클렘프, 너 너무 말이 많아!"라 일갈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랬으니 리허설 시간이 짧고 간단했을 리가 없다. 하도 리허설에만 몰두하길래 시간 가는 데는 관심이 없어서 콘서트마스터가 시계를 디밀고 "이 시계 가고는 있습니까"고 물었다는 얘기가 있다.
 그의 음악 성향에 대해서는, 거의 반대편에 있었을 조지 셀이 흘린 말이 재미있다. 스위스에서 필하모니아를 지휘하게 된 셀이 그 바로 전에 클렘페러가 지휘한 필하모니아의 연주회 때 객석에 앉아 있었는데, 내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연주회를 듣고 나서 무대 뒤로 가 콘서트마스터에게 이렇게 말했다; "푹 쉬게. 내일은 힘든 하루가 될 것이네."

 그의 개인적인 취향에서 어두운 측면은 조울증 외에 음란증이다. 그는 못 말리는 바람둥이로, 이 분야 뒷얘기 측면에서 '악명 높은' 노먼 레브레흐트(Norman Lebrecht)쓴 글을 보면 장난이 아니다. 이런 행각이 아내 요한나(Johanna) 및 자식들을 괴롭힌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자식들은 모두 정상적인(어찌 보면 정상보다 훨씬 뛰어난) 길을 밟았다. 아들 베르너(Werner)는 배우 겸 프로 바이얼리니스트이자 피아니스트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기도 했으며, 일반인에게는 미국 드라마 ‘호간의 영웅들’의 독일 장교 클링크(Klink)로 친숙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 같은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딸 로테(Lotte)9]가 훨씬 더 중요하다. 오토가 위에서 말한 온갖 고난을 겪고 있을 때 일일이 뒷바라지를 해 줬으며, 유럽 시대에는 비서 겸 매니저, 오토 사후에는 아버지의 유산을 지키는 데 자신의 모든 시간을 투자했다. 2003년 그녀가 타계했을 때, 이 가족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오토의 만년 ‘거인’의 지위는 사실상 로테 덕이었다고 찬사를 보냈다. 오토가 그 힘든 일생에서 가장 복받은 것이라면 말러를 만난 것이 아니라, 딸을 잘 두었기 때문 아닐까.

각주

  1. 공개에 동의해 주신 SPO Magazine에 감사드린다.
  2. 현재 폴란드의 브로츠와프. 푸르트뱅글러는 음악 공적 경력을 여기서 시작했다.
  3. 클렘페러는 이것을 평생 소중히 간직했다.
  4. 레그 자신의 회상에 따르면, 이것은 카라얀이 DGG와 계약할 낌새가 보였기 때문에 영국 Columbia 레이블에서 스탠다드 레파토리를 스테레오 시대에 녹음할 사람으로 클렘페러가 적당하다고 보아 내린 결정이었다고 한다. 사실 레그는 카라얀과 계약할 때 금전적 조건을 상당히 '박하게' 제시했다고 한다.
  5. 당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기술 및 연주 수준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다. 이런 연주가들을 모은 레그의 능력은 정말 감탄할 만 하다. 대표적으로 호른의 데니스 브레인과 앨런 시빌(Alan Civil), 콘서트마스터에 마누그 파리키안(Manoug Parikian)과 뒤의 휴 빈(Hugh Bean) 등 화려한 멤버들이 쟁쟁하다. 필하모니아의 클라리넷 수석으로 재직했던 버나드 윌튼(Bernard Wilton)에게 배운 Testament의 사장 스튜어트 브라운(Stuart Brown)의 칭찬은 그렇다 치더라도, 필하모니아의 데뷔 연주회를 지휘한 후 "이 근사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데 보수는 시거 한 통이면 충분하다"던 토마스 비첨, 칭찬에 인색하기로 유명했던 토스카니니, "이런 좋은 오케스트라를 놔 두고 왜 빈에서 녹음을 합니까?"라 물었던 푸르트뱅글러 등 거장들이 이구동성으로 찬사를 보냈다.
  6. 모차르트 '돈 조반니'의 방송 연주 때 앉아서 지휘하다, 연주 도중 일어서서 주변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7. 푸르트뱅글러의 연주도 이 점은 마찬가지다.
  8. 푸르트뱅글러의 경우 잡다한 실황들까지 끌어 모아야 했기 때문에, 그의 ‘전집’의 최대 약점이라면 바로 일관성이다.
  9. 함부르크 오페라 재직 시절에 같이 일했던 소프라노 로테 레만(Lotte Lehmann)의 이름을 따서, 로테가 태어나기도 전에 지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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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2009 & 2010~, 이영록 & SPO; 링크는 자유지만, 인용시에는 미리 메일을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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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ly contributed for SPO Magazine; Nov. 2009
Created ; 26th Jun.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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