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히테르의 한국 첫째(마지막) 독주회의 인상 Contributed
in Hitel Classical Music Forum 내가 고전음악을 본격적으로 판을 사 듣기 시작할 무렵 - 고등학교 1학년 정도 - 에는 서울에서 S.리히테르(Sviatoslav Richter)의 연주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철의 장막이 건재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대단한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연주나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에서 그의 실력을 알 수 있었지만, 실연은 정말 꿈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서울에 앉아서 그의 실제 연주를 들을 수 있게 되었으니, 세상 많이 좋아졌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1994년 4월 20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나는 팸플릿을 보고 비로소 연주될 곡목을 알 수 있었다. 프로코피에프 소나타 2번 d단조, 스크리아빈 소나타 7번, 라벨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와 '거울'의 순서였다. 다소 걱정이 되었다. 일단 중간 휴식 전의 두 곡은 내가 전혀 모르는 곡이었고, 후반에서도 다소 리히테르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이런 긴장을 가지고 시작 시간 2분 전에 3층으로 올라가서 기다리고 있었다(원래 5분 전에 올라가지만, 두 사람 - **과 그의 친구라고 말하지 않겠다 - 이 늦었기 때문이다). 정각에서 10분이 지나서야 서서히 불이 어두워졌다. 좀 후에 노인 하나가 서서히 걸어나왔다. 박수가 연주회장을 메웠다.
자세히 보니, 그 할배는 참으로 당당한 체구였다. 키가 최소한 180cm는 되어 보였고, 그에 어울리는 당당한 몸집을 지녔다. 그의 힘있는 연주로 보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는 했지만 손도 크다고 하는데, 둘째와 다섯째 손가락으로 넉넉히 옥타브를 칠 수 있다고 들었다(뒤에 알았지만, 그는 오른손으로 F - A flat - B - D - A flat의 5음 코드를 아르페지오로 처리하지 않고 단번에 칠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의 손이 맞나?). 그의 체구로 보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코피에프의
첫 음향이 들려왔다. Allegro ma
non troppo가 시작되자, 그의
음이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사실 레코드와
큰 차는 없었다. 엄격히
말해서, 리히테르의
음색은 옛날의 많은 명피아니스트보다
그리 매력 있지는 않다. 그러나
리히테르가 연주하고 있는 Steinway
& Sons 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는 그
피아노 본래의 음향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아마 같은
피아노로도 우리 나라의 피아니스트들이
많이 연주를 했을 텐데, 나는
거기서 그런 충실한 음향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얼마
전에 들었던 프랑스의 현역 명 피아니스트
콜라르(Jean-Philip Collard)의
소리와도 차가 컸다. 우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피아노 소리에는 빛나는 광채는 없었으나, 대신 속이 꽉 여물은 것
같은 단단함과 약간 어두운 색채가 있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그 기본적인 리히테르의 음은 결코
불안정한 감을 주지 않았다.
1악장을 다 들을 때쯤 되어서야 그의
음색이 이 곡의 약간 어두운 감과 잘
일치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강한 인상을
준 것은, 그가 지금
자그마치 79세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피아노를 그의 몸의
일부처럼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청년시대에는 어땠는지 알
수 없지만 기교가 음반보다 못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손과
팔의 움직임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한 마디로 피아노를 아주
편하게 다루고 있었다. 휴식
시간 후에 라벨의 곡이 시작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리히테르의 라벨은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고정관념을 다
무너뜨리는 놀라운 연주였다.
내가 지금까지는 라벨의 피아노
독주곡을 발터
기제킹과 로베르
카자드쥐의 절제된 '프랑스풍' 스타일로만 알고 있었다. 어제 들은 리히테르의
피아노 연주는, 내가
가진 이런 생각을 다시 돌이켜 보게
만들었다. 관중들은 박수 세례를 보내 그의 훌륭한 연주에 답했다. 리히테르는 최소한 5번 이상은 다시 나왔다. 자신의 연주에 대체로 만족했는지, 앙코르는 없었다(리히테르는 자신이 만족하지 못하면 앙코르를 한다고 한다). 2만원이 아니라, 4만원을 내고 보았더라도 아깝지 않은 연주회였다. 혹시 실황녹음을 했다면 주저없이 사야겠다. 그런데... 그런데... 그는 16세 때 리스트의 곡을 어렵지 않게 연주했다고 하는데(더군다나 거의 독학으로), 난 24세인 지금 뭐하고 있나?
(c) 1994~ , 이영록 ; 링크는 자유지만, 인용하시려면 우선 제게 메일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Created ; 16th Jun. 2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