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트뱅글러의 인간성; 이영록의 음악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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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트뱅글러의 인간성

20세기 초반의 다른 거장들과 비교할 때 푸르트뱅글러의 인간성은 그다지 좋은 쪽으로만 인상적이진 않다. 거의 완벽하게 선의가 넘쳐 보이는 브루노 발터나, 좋은 아버지/남편/교사이자 인격자였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처럼 존경할 만한, 아니 적어도 원만한 성품은 아니었음이 거의 틀림없다. 푸르트뱅글러는 어떤 면에서는 거의 어린아이 같기도 하며, 어떤 면에서는 집요함과 시기, 질투, 모난 감정을 보여준다. 그는 분명히 소탈하고 꾸밈 없기는 했으나, 다소 이기적이고 특히 질투심이 두드러진다.
내 생각으로는, 이 밑에 흐르는 감정은 '자기 맘대로'인 듯하다. 학교에 다니지 않고 가정교사들에게 배웠으며, 10대 때 아버지를 여읜 영향인지 몰라도 그는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될지 잘 모르고 좀 자기 중심적인 사람으로 성장했다. 그는 작곡가 벨라 바르토크와 비슷하게, 순진[naive]하면서 약간 시골뜨기 같은 면이 있었다. 어디서 나온 얘긴지는 모르겠는데, 자신은 어떻게 그렇게 빨리 음악계의 정상에 오를 수 있었냐는 질문에 대해 - 36세에 베를린 필의 상임이 된 기록은 아바도와 래틀까지 넣더라도 아직 아무도 능가하지 못했다 -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제가 시골 촌놈같아 보여서 아무도 경계를 하지 않았는데, 그 덕에 그들이 제 존재를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던 겁니다." 자신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보였을까.

◀ 왼편부터 발터, 토스카니니, 에리히 클라이버, 클렘페러, 푸르트뱅글러. 왼편 셋의 얼굴은 웃는 데 비해, 클렘페러는 카메라를 응시하지 않았으며, 푸르트뱅글러의 얼굴은 웃지 않고 있다. ^^ 1929년 이탈리아 대사관의 리셉션에서 촬영.

그가 동료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모순된 측면이 보인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자기 맘에 들지 않는) 지휘자들은 잠재적인 경쟁자로 보고, 지휘자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도와 주려 노력했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겠다(자기 경쟁자가 아니기 때문일까 ^^). 토스카니니에 대한 질투나, 카라얀의 앞길을 가로막은 점 등은 모두 이런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고 아무 지휘자에게나 다 이러지는 않았다. 베를린에 막 등장한 오이겐 요훔이나, 게반트하우스에서 콘서트마스터로 있었던 샤를르 뮌시, 전후 첼리비다케 등에게는 그는 이런 식으로 대하지는 않았다. 토스카니니나 카라얀처럼¹⁾ 처음에 그의 신경을 본의 아니게 건드린 사람에게만 그런 모양이다. 웹진 고클의 리뷰어 중 한 분인 곽규호님이 고클 게시판에 쓰신 글을 인용해 보자. 인용의 상당 부분은 사무엘 초트치노프(Samuel Chotzinoff; 야샤 하이페츠가 카네기 홀에 데뷔할 때 반주자였고, 나중에 하이페츠의 누이동생 파울라인과 결혼한다)의 '토스카니니 회상(이덕희 씨의 번역본을 구할 수 있다)'에서 뽑았다.

푸르트뱅글러의 인간성에 대해 많은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LP나 CD 자켓의 온화한 표정을 보고 그를 원만한 인격의 소유자로 생각하시는 경우가 의외로 많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과는 다릅니다. 푸르트뱅글러와 발터, 토스카니니 등의 거장들이 유럽에서 활동했던 1930년대의 빈 필하모니 단원 중 한 명의 회고록에 의하면 "푸르트뱅글러의 성격은 우유부단하면서도 시기심과 질투심이 대단하였다. 그는 자기보다 실력이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매우 관대한 태도로 대하였으나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우수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나이나 국적에 관계없이 시기심을 나타내는 것을 참지 못하였다"라 하였습니다.
바그너의 아들 지그프리트 바그너의 부인은²⁾ 그에 대해 "푸르트뱅글러는 놀랄 정도로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으며 성격은 우유부단하고 어떤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지나칠 정도로 시간을 많이 소요했으며 어떨때는 그러면서도 전혀 결론을 내리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는 많은 면에서 질투심으로 뭉쳐진 사람이었으며 다른 지휘자들에 대한 칭찬을 자기 앞에서 하는 것을 매우 불편해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1920년대부터 30여년간 비인필 단원이자 의장(chairman)을 역임했던 후고 부르크하우저의 회고록에서 푸르트뱅글러에 대해 말했던 이야기를 몇 가지 인용하자면:

1927년에 푸르트뱅글러가 뉴욕에서 데뷔했을 때 예상 외로 뉴욕 시민들의 반응이 시큰둥했는데, 이것은 1926년에 미국으로 망명하여³⁾ 뉴욕에서 첫 연주회를 가졌던 토스카니니가 너무나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상대적으로 푸르트뱅글러의 연주에 사람들이 흥미를 덜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푸르트뱅글러는 "이번 연주회가 인기를 끌지 못한것은 분명히 토스카니니가 뒤에서 나에 관한 험담을 하고 다녔으며 악독한 방해공작을 했기 때문이다"라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실제 토스카니니는 푸르트뱅글러에 대해 "남이 가지지 못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인물"이라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을 하였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푸르트뱅글러의 이와같은 억측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때부터 푸르트뱅글러는 토스카니니에 대해 불편한 라이벌 의식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전해지는군요. 토스카니니가 무려 20여년이상 연상의 선배인데도 이러한 질투심을 보였다는 것은 우리네 정서로서는 이해가 잘 안되죠...


토스카니니가 이탈리아에서 1902년에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공연하는 것을 본 지그프리트 바그너 (바그너의 아들) 가 너무나 감동해서 그를 바이로이트에 초청하려고 하였으나 당시 바그너 집안의 폐쇄적인 분위기 (독일인 이외의 지휘자를 바이로이트에 초대할 수 없다) 가 너무 강해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930년에 가서야 비로소 실현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이 당시에도 토스카니니의 바이로이트 입성에 대한 독일 지휘자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사람이 칼 무크(Karl Muck)와 푸르트뱅글러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전까지 "반지" 시리즈는 무크가 주로 담당해왔었고, 40대의 푸르트뱅글러는 바이로이트에서의 주연급 지휘자로 성공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그프리트 바그너의 뜻이 너무도 완강해서 결국 토스카니니는 바이로이트에 입성할 수 있었고, '트리스탄과 이졸데',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파르지팔' 등을 1930년, 1931년에 걸쳐 지휘했으며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독일의 각 신문과 음악가들은(바인가르트너나 에리히 클라이버, 클렘페러 같은 사람들) 이 공연에 대해 "기적과 같은 연주..." "이전에 결코 들어볼 수 없었던 신비로운 아름다움..." 등의 극찬을 하였고 푸르트뱅글러는 이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었습니다.⁴⁾
    1932년은 바이로이트가 쉬는 해였고 1933년 사이클에서는 당연히 토스카니니를 초빙해야 한다는 것이 바이로이트의 분위기였으나 푸르트뱅글러와 칼 무크 등의 사전 공작으로 공연측과 미묘한 긴장 관계가 형성된 데다, 결정적으로 그해에는 히틀러가 집권하게 되어 평소 무솔리니와 히틀러에 대해 지독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⁵⁾ 토스카니니는 결국 바이로이트 출연을 영원히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게 되었으며, 그해 이후부터는 푸르트뱅글러가 바이로이트의 수면 위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⁶⁾


잘츠부르크 모짜르트 페스티발은 본래 지금처럼 국제적인 주목을 받는 행사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나찌 독일에 반대하는 음악가들이 하나 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모이기 시작하면서 점차 정치적인 관심의 집중이 되기 시작했는데다, 결정적으로 1936년에 이 페스티벌에 토스카니니가 참가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일약 전유럽의 주목을 받는 국제적 행사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토스카니니가 유럽과 미국에서 예술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존경받는 가장 위대한 마에스트로로 추앙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푸르트뱅글러의 태도입니다. 그는 본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었고 몇번의 초대를 받아도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해왔었는데, 토스카니니의 참가 이후부터 국제적인 행사로서 언론의 집중을 받게 되자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아주 적극적으로 참석을 희망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부르크하우저의 분석은 "첫째는 토스카니니가 가져온 국제적인 조명의 후광을 노렸기 때문이었고, 둘째는 토스나니니에 대한 과도한 경쟁심 때문이었으며, 세째는 친 나치적인 성향의 음악가로 낙인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정치적인 의도였다" 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1938년 이후 토스카니니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도 참석하지 못하게 되자 푸르트뱅글러도 그 이후 몇 년 정도 더 참석하다가 그만두었다고 합니다.⁷⁾
    당시 독일의 한 음악가는 그에 대해 평가하기를 "모든 행동의 동기가 타인에 대한 질투심과 시기심으로 유발되는 인물이며 과도할 정도로 명예에 집착하는 사람이었다" 고 평가하였습니다.

이외에도 몇 가지 에피소드가 더 있는데, 이 정도에서 인용을 마치기로 하고, 이상의 글들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푸르트뱅글러가 재능있는 지휘자들에 대해 심할 정도로 질투와 시기심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며, 카라얀에 대한 이해 못할 정도의 편협했던 행동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카라얀의 음악이 독일 정통이 아니라는 등의 비판은 모두 푸르트뱅글러의 질투심에서 비롯된 악담이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사실에 가까운 해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⁸⁾. 그가 자기보다 훨씬 연배가 높았던 토스카니니에 대해 보였던 강한 질투심으로 미루어 보건대, 자기보다 연하의 재능있는 후배 지휘자인 카라얀이 높은 명성을 쌓아가는 점이 아마도 그로서는 참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가 많은 음악가들을 발굴했다고는 하지만 그가 발굴한 지휘자는 없었던 것도 그러한 이유로 해석할 수 있다고 봅니다.

내가 달아 놓은 주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인용은 다소 푸르트뱅글러를 좋지 않게 보는 시각만 들추어낸 감이 없지 않다. 아마 원저자가 토스카니니의 숭배자였기 때문에 그럴지 모르겠다. 하지만 중립적인 관찰자들도 이런 점에서는 푸르트뱅글러에게 결코 호의적인 평을 해주지는 않는다. 월터 레그야 원래 카라얀 편이었고 푸르트뱅글러와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 젖혀 놓는다고 해도, 냉철한 카라얀 전기의 저자인 로베르트 바흐만(Robert Bachmann)은 이렇게 말한다. "푸르트뱅글러는 도처에서 책략도 서슴지 않았으며, 카라얀을 애타게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사람들은 거장의 비위를 상하지 않으려고 악의에 찬 그 (카라얀을 적대하는) 행동에 따랐다" "(푸르트뱅글러의 1947년 복귀 후) 베를린 필은 이 자존심 센 지휘자에게 지휘 횟수를 늘려달라고 사정해야 했는데, 이것이 베를린 필로서는 체면이 깎이는 일이었다. (중략) 푸르트뱅글러가 베를린 필에게 한 짓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⁹⁾

푸르트뱅글러는 다른 측면으로는 좋은 일도 많이 했다. 지휘자들에게는 그리 호의적이지만은 않았을 지 몰라도, 빈과 베를린 필의 유태인 단원을 구하기 위해 노력한 점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그리고 일반 연주자들에게는 정말로 소탈한 태도로 대했다고 한다. 피셔-디스카우의 회상은 널리 알려져 있다. 1950년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참가했을 때, "무대 뒤에 있을 때 갑자기 한 사람이 나타나더니 곧바로 악수를 청하며 '푸르트뱅글러요. 훌륭하군요.'라고 말했습니다. 옆에 있던 관악기 주자는 저를 아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죠."¹⁰⁾ 무엇보다도, 개인적인 시기심 때문에 다소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고 해도 그는 절대로 철면피는 아니었으며, 다른 연주자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갖기를 싫어하지 않았다¹¹⁾.
어쨌건 그는 사적이건 공적이건 위선자는 아니었고 그의 순진한 성격상 그럴 수도 없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했다는 점을 보아도 말이다. 그의 시기와 질투가 심했다는 점은 그의 인간 자체에 그리 큰 손상을 주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 단, 그가 원만한 인격자는 아니었음도 확실하다.

옮긴이 주 ]

카라얀이 아헨의 지휘자로 있던 시절 처음 베를린에 등장할 때, 푸르트뱅글러를 싫어하던 한 나치 유력자가 꽤 이름난 음악 평론가 에트빈 반 데어 뉠(Edwin van der Nüll)에게 저 유명한 'Das wunder Karajan(천재 카라얀)' 기사를 쓰도록 부추겼다고 한다(카라얀이 베를린에서 단기간에 얻은 인기는 이 기사가 시발점임은 이미 공지의 사실이다). 당시 한 자유 기고가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사실상 괴벨스의 후원 아래 있던 푸르트뱅글러의 힘을 꺾으려는 헤르만 괴링 일파의 공작이었다고 한다. 푸르트뱅글러가 이 사실까지 알고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어쨌건 당시 카라얀은 나치당의 등에 업혀 푸르트뱅글러의 경쟁자로 부각되고 있었고, 시기심이 원래 많던 그가 카라얀을 싫어한 것도 족히 이해할 만 하다.

위니프레드(비니프레트) 바그너; 영국 태생으로 바그너의 며느리. 1930년 지그프리트가 죽은 후, 시누이들과 벌어진 경쟁에서 승리하여 바이로이트의 대권을 장악했다. 자신이 직접 연출을 하지는 않았지만(베를린에서 활동하던 하인츠 티티엔 Heinz Titjen 을 불러들였다. 그는 1930~40년대의 바이로이트를 대표하는 연출가이다), 적극적인 나치 협력자로서 바이로이트를 운영했다. 전후에 연합국은 나치의 주요 협력자 중 하나로서 바이로이트 축제에서 일체 활동을 금한다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에, 두 아들인 빌란트와 볼프강이 축제의 운영권을 상속하기 전에는 음악제 재개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바그너=나치'라는 말이 지금처럼 널리 퍼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바그너의 음악에 상당히 치명적인 손해를 준 인물이다. 더 한심한 것은, 아들 빌란트가 죽은 훨씬 뒤까지 생존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까지 골수 나치 옹호에다 유태인 차별주의의 입장을 버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토스카니니가 '망명'하지는 않았다고 보인다. 왜냐하면, 뉴욕 필하모닉의 지휘자를 그만둔 후 1937년 니콜라이 사르노프(Nicolai Sarnoff)의 청을 받아들여 미국으로 다시 이주하여 NBC 심퍼니를 지휘하기 전에 그는 이탈리아에 은둔해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무솔리니가 싫어서 망명했다면 다시 이탈리아로 되돌아갔을 리가 있겠는가.

인용의 원본인 사무엘 초트치노프의 '토스카니니 회상'에 의하면, 바이로이트에서 푸르트뱅글러와 토스카니니는 지휘자 대기실 등에서 동석한 일도 꽤 있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토스카니니 앞에서는 푸르트뱅글러가 직접 그에게 험담을 했다는 언급이 이 책에 없다는 점이다. 아무리 푸르트뱅글러라도, 나이가 거의 20세나 많은 선배 앞에서 대놓고 험담을 하기는 다소 어렵지 않았을까.

토스카니니도 처음부터 무솔리니를 반대하지는 않았다. 무솔리니가 득세하기 시작할 때는 공개적으로 지지했다고 하는데, 파시스트들이 콘서트를 시작할 때 파시즘 찬가 '죠비네차(Giovinezza)'를 연주하도록 - 토스카니니의 생각으로는 음악적으로 돼먹지 못한 - 강요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파시즘을 싫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푸르트뱅글러가 30년대 후반 이후 바이로이트의 주요 지휘자로 활약한 점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토스카니니가 출연을 거부하여 생긴 반사 이익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내가 알기로는, 푸르트뱅글러는 나치가 정권을 잡기 이전인 1931년 이미 바이로이트 총감독이 되었다가 바그너 집안(즉, 위니프레드)과 충돌하여 이 직책을 사임했기 때문이다. 30년대 후반에 푸르트뱅글러가 바이로이트의 주요 지휘자가 된 큰 이유는 많은 지휘자가 나치에 반대하거나 추방되어 명망 있는 지휘자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대전 전과 중에는 이랬는지 내게 정보가 없지만, 그가 복귀한 1947년 5월 이후까지 넣는다면 이는 확실히 사실과 다르다. 그 해 여름부터 죽던 해까지, 52년만 빼고 매해 잘츠부르크 음악제 실황녹음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47년 이후 잘츠부르크 음악제는 푸르트뱅글러의 주요 무대 중 하나였다. 얼마나 그가 잘츠부르크에 참가하고 싶었는지는, 카라얀의 참가를 금지시키는 무리한 조건으로 지휘자로서 참가한 데서 엿볼 수 있다(같은 시기에 열리는 바이로이트 음악제에서 푸르트뱅글러가 개막 공연인 베토벤 9번만을 연주한 이유는, 바이로이트 극장의 독특한 구조를 그가 싫어했을 뿐 아니라, 만년의 청력 악화 때문에 이 구조가 그의 청력 상태에 매우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실제 이 시기에 카라얀은 잘츠부르크에 출연하지 않았으며, 푸르트뱅글러의 모차르트 오페라 녹음들이 잘츠부르크 실황으로 많이 남은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월터 레그가 이 시기에 스튜디오에서 빈 필을 기용한 모차르트 오페라 녹음 시리즈(피가로, 코지 판 투테, 마술 피리가 있다)에 자기가 아니라 카라얀을 기용한 데 상당히 기분이 상했다고 전한다.

확실한 근거는 없다. 하지만 카라얀과는 상당히 지저분하게 싸운 이상, 푸르트뱅글러가 이랬을 가능성도 없진 않다.

그가 베를린 필 상임으로 복귀한 후에도, "상황은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았다." 이는 그가 좀 더 자유롭게 객원(특히 빈 필)하고, 작곡할 시간을 갖겠다는 의도 때문이었다고 한다. 푸르트뱅글러가 베를린 필의 콘서트를 그리 많이 지휘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빈 자리를 메운 사람이 첼리비다케인데(물론 푸르트뱅글러가 후원하고 있었다), 그와 베를린 필 단원들의 사이는 결코 좋지 못했다. 바흐만에 의하면 "둘의 관계가 길어질수록 차기 상임으로서는 문제 밖이었다". 우선 그는 지나치게 많은 연습을 요구했을 뿐 아니라, 단원들의 반발을 적절히 다루지도 못했다. 한 마디로 이 때의 젊은 첼리비다케는 아직 리더의 권위와 기술이 별로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바로 푸르트뱅글러가 죽던 날(1954년 11월 30일) 이 둘의 삐걱대던 관계는 끝나는데, 그 전날 첼리비다케가 베를린 필 행정 책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만약 나를 초빙하고 싶다고 말한다면, 나는 우선 최고참의 쓸모없는 단원을 퇴단시키겠습니다. 그리고 리허설 때 후안무치한 태도를 취하는 단원을 쫓아낼 권리를 요구합니다. ...나를 초빙한다면 결국 단원들의 '목을 쳐야' 합니다..." 세상에 어느 오케스트라가 이런 말을 듣고 가만 있겠는가.

푸르트뱅글러가 피셔-디스카우를 소개받은 것은 엔리코 마이나르디의 추천 덕이었다고 하나, 어쨌건 이 만남 이후 말러를 거의 연주하지 않았던 그가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를 피셔-디스카우와 공연한 후 스튜디오 녹음까지 했다. "당신 덕에 말러의 음악을 알았다"고 그는 피셔-디스카우에게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그가 비슷한 시기에 런던에서 있었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스튜디오 녹음에 쿠르베날 역으로 피셔-디스카우를 초청한 점을 보아도, 당시 피셔-디스카우를 높이 평가했음을 알 수 있다.

카라얀이 나치 문제에 대해 얼마나 철면피였는지는 이래저래 증명된 사실이다. 그리고 카라얀이 발굴한 연주자들도 있지만, 같이 일해 본 사람들은 카라얀이 얼마나 사람들을 공식적으로만 대했는지 생생하게 말해 준다. 비르기트 닐손이나 르네 콜로, 그리고 루돌프 빙(메트로폴리탄의 총지배인)도 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다.

Beethoven at Bayreuth

English

Created ; 19th Jan. 2002
Last Update ; 3rd Jul.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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