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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전에 하이텔 고전음악동호회 게시판에 현대 피아니스트들의 개성 상실의 경향을 우려하는 글을 썼던 일이 있습니다. 1994년 4월호 레코드 리뷰를 보니, 비슷한 내용의 글이 실려 있어서 부분을 전재합니다. 이런 내용의 글은 몇 해 전에 음악동아에서 명 평론가인 해롤드 숀버그(Harold Schonberg)의 글을 읽은 것이 기억이 나네요.

마지못해 내린 결론 ; 오래된 78회전 음반을 좋아하는 이유

글/데이비드 넬슨

   (전략) 그런데 왜 나는 음악이 잡음없이 재생되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40, 50, 60년 전에 녹음되어 음질과 녹음 기술이 형편없는 연주들을 듣고자 불편을 감수하는 것일까? 이유는 많다.

   첫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피아노 음악, 피아니스트, 피아노 연주의 여러 스타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78회전 음반은 LP또는 CD가 제공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부한 지식을 제공해 준다. 몇몇 이름난 피아니스트(라흐마니노프, 코르토 Alfred Cortot)의 경우에, 그들의 연주 음반이 대개 다 LP로 재발매되었고, 이제 라흐마니노프의 연주들은 CD로도 재발매되는 것이 사실이지만1),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위대한 피아니스트들도 마찬가지로)의 숱한 녹음이 LP로 재발매되어 보지 못했고, 상업적인 이유로 해서 아마 영영 CD로 재발매되지 못하는 채로 묻혀 있게 될 것이다2). 예를 들어 위대한 마이러 헤스(Myra Hess)의 슈만 피아노 협주곡 연주나 그 유명한 카르나발의 연주는 어느 것도 재발매된 바가 없다3). 그 연주들을 듣고 싶다면 78회전 음반을 찾는 수밖에 없다. 에곤 페트리(Egon Petri)는 여러 개의 명연으로 78회전 음반 카탈로그에 올라 있는 연주자다. 브람스의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나, 베토벤의 소나타 32번의 명연주, 리스트 협주곡 2A장조의 명연(내가 들어본 연주 중에 최고이다) 등이 거기 올라 있다. 그러나 그 어느 연주도 LP로 재발매된 바 없으며 CD로는 더 말할 것도 없다4). 내가 들어본 생상 협주곡 제 2g단조의 최고 명연은 바실 캐모론이 이끈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베노 모이세이비치(Benno Moiseivich)의 연주인데, 이것 역시 LP로 나온 바 없다5). 비상한 피아니스트 미샤 레비츠키(Mischa Levitzky)의 연주도 마찬가지이다6). 피아니스트 중에 그 누구보다도 많은 분량의 음반이 LP로 재발매된 코르토의 경우, 베버의 소나타 2번 같은 작품의 연주는 지금 그 어느 그릇에 담긴 것으로도 구하기 힘들다7). 그가 남긴 명연인 리스트의 전설 2'물 위를 걷는 성 프랜시스' 같은 것도 HMV78회전 음반으로 말고는 들을 수 없다8).
   
게다가 78회전 음반 시대에서 LP음반 시대에 걸쳐 활동했으나 78회전 음반에 담긴 초기 연주가 LP에 담긴 훗날의 연주보다 여러모로 훨씬 설득력 있는 피아니스트는 또 얼마나 많은가. 코르토가 바로 그러한 피아니스트이고, 헤스나 모이세이비치, 페트리 등도 다 그런 축에 든다.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음악가인 루이스 켄트너(Louis Kentner)LP시대에 왕성하게 녹음을 했지만 그 어느 것도 삼십 년대와 사십 년대 초에 그가 78회전 음반으로 남긴 베토벤 소나타 29번이나 리스트 b단조 발라드 등의 연주가 지닌 확고함과 음악성에는 못 미친다.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을 LP시대에 두 번이나 더 녹음한 아르투르 루빈슈타인(Artur Rubinstein)의 경우에도 그 LP들은 바비롤리(John Barbirolli)와의 연주가 담긴 30년대의 78회전 음반에 못 미친다.
   
두 번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내가 지니고 있는 78회전 음반의 피아노 음악들 중에 상당수는 사실은 나중에 나온 음반들보다 소리가 낫다. 소리가 낫다는 것은 피아노라는 악기의 소리가 좋은 홀의 좋은 좌석에 앉았을 때에 들을 수 있는 좋은 피아노 소리와 흡사함을 말한다. '좋은 소리'라는 것은 제각기 다른 피아니스트의 터치와 음색의 특색을 판별하여 감상할 수 있게 해주는 소리를 말한다. 코르토는 자기 특유의 음색을 가졌고, 켐프(Wilhelm Kempff), 피셔(Edwin Fischer), 헤스, 모이세이비치, 그 밖에 78회전 음반에 활발하게 녹음을 했던 다른 여러 피아니스트들도 그렇다. 좋은 재생 장비만 갖추었다면 - 레코드 재생 장비의 발전 수준은 1930년대에 상상할 수 있었던 수준을 훨씬 초월했다 - 해묵은 78회전 음반 중에 적어도 피아노 음악이 담긴 음반들은 바늘 긁는 소리와 음반 표면의 잡음들에도 불구하고 놀랄 만큼 자연스럽고 트이고 만족스런 소리를 간직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시몬 바레레(Simon Barere), 고도프스키(Leopold Godowski), 모이세이비치, 그 밖의 연주자들의 78회전 음반을 재발매해온 영국 음반 회사 APR(Appian Publications and Recordings)같은 데야말로 훌륭한 사회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나는 간주하고 싶다.
   
물론 내 구닥다리 판들은 오늘날과는 다른 한 시절을 반영한다. 연주 관행의 면에서뿐만 아니라 그 외의 다른 모든 우리 사회의 국면에서 볼때에도 그건 지나가 버린 시절이다. 비즈니스나 정부를 이끄는 방식, 변호사나 의사나 치과 의사의 영업 방법, 그밖에 모든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 이젠 30~50년대와는 전혀 다르다. 음악가들도 피아노, 바이올린을 연주할 경우나 오페라에서 노래를 부르건 간에 그 옛 시절의 방법과는 다르게 연주한다. 이야말로 사회의 자연적인 진화임에 틀림없으니 유감스러워 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도 내 낡은 78회전 음반에 귀기울이고 있노라면 나는 우리가 무언가 굉장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느낌에 시달린다. 그 음반들 속의 연주는 저마다가 독자성을 가지고 자기 고유의 음성으로 이야기하기가 지금보다 수월했던 시절을 상징한다고 느낀다. 78회전 음반들에 담긴 연주들의 색채는 후기의 LP음반이나 오늘날의 CD음반보다 훨씬 더 다양하다. 블라디미르 드 파흐만(Vladimir de Pachmann)의 자기 도취에서부터 라흐마니노프의 엄격함과 빠른 속도감에 이르기까지, 헤스의 매력에서 이그나츠 프리드만(Ignaz Friedmann)의 완연히 또다른 매력까지, 페트리의 박력과, 기교에서 이따금 고심의 흔적이 완연한 파데레프스키의 연주까지, 또 그 밖의 어떤 연주를 담은 음반이라도 아직까지 인상적인 그 무엇의 광휘를 간직한다. 이 오랜 음반들에 감상자들의 귀와 마음을 끌어당길 힘을 부여하여 감상자들로 하여금 옛적부터 듣던 연주를 즐겨 되풀이해 듣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 독자적인 경지이다.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 누군가가 1920~40년대의 피아니스트들의 연주가 담긴 78회전 음반을 자기에게 들려준다면 듣는 즉시 연주가가 누구인지 알아맞출 수가 있지만, 새로운 연주자들의 연주는 하나같이 똑같이 들린다고 말한 바 있다. 그 말의 의미를 나는 알겠다. 최신의 피아노 음악을 담은 최신 음반, 특히 CD음반들은 말끔하고 차분하면서도 음량이 풍부하지만, 연주자 고유의 소리 즉 다시 말해 좋은 홀의 좋은 좌석에서 듣는 좋은 피아노 소리와 같은 소리를 포착하지는 못한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종종 나는 내가 지금 음량이 막강한 풀 사이즈의 콘서트용 그랜드 피아노를 거실에 들여놓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그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사실 요새 새로 녹음되어 나오는 피아노 음반들에 귀 기울이는 일은 내게는 적잖이 피곤한 일이다.

   그러나 호로비츠가 말하고자 한 바는 아마도 피아노 연주에 개성이 부족한 점일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피아니스트가 자신의 개성을 펼치도록 허용하는 폭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개성 부족의 문제는 비단 피아노 연주나 음악 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어디에서나 드러나는 문제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대학에 들어가려면 학습 능력 적성 시험을 치러야 한다. 회사에서는 오로지 경영 최고 책임자 한 사람만이 고유 인격체로서 존재한다. 교단에서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인물은 곧잘 곤경에 처한다. 사람들을 저마다 개별 인격체로서 다루기보다 이력서라는 종이쪽 한장을 근거로 다루는 편의적인 방법을 선호하게 된 것이 현대식이라는 것이다. 이 이력서라는 것은 모든 부류의 사람들을 특정한 책무나 직책에 대한 고려에서 손쉽게 배제시켜 주는 요긴한 정보이다.
   
피아노 경연 대회에도 이런 상황은 물론 똑같이 적용된다. 무명의 젊은 신인이 매니저들의 눈에 들기 위해서는 그 대회 중에 하나에서 입상하는 수밖에는 없다. 그 많은 비평가들은 남다른 연주, 평범하지 않은 연주, 개성이 부각된 연주를 즉결로, 그리고도 잔인하게 격퇴하고자 대기하고 있다. 이런 오늘날의 기류에서 내가 옛 시절부터 아끼는 피아니스트 중에 과연 몇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코르토? 프리드만? 파데레프스키, 또는 호프만이라면? 그들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유명한 어느 경연 대회의 1라운드에서 머물고 말았거나 연주자로서 제대로 시작도 못해보고 말았을 것이다. 중도에서 연주가의 길을 포기해 버렸거나 아니면 누구나와 똑같은 방식으로 피아노를 두드리게 되었을 것이다.
   음악은 빅 비즈니스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음악회며, 오케스트라며, 음반이니 하는 것들이 지천으로 깔렸는데도 불구하고, 위대한 피아니스트는 드물어졌다. 고도로 숙련된 유능한 피아니스트들만 수두룩하다. 피아노 리사이틀이란 지난 시절의 유물이 되어버릴 거라고 믿는 사람도 많다.

   글쎄, 그럴 수도 있다. 만일 그리 된다면, 그것은 지난날에는 그토록 보편적이던 개인화된 음악 작업의 쇠락에 원인이 있다. 지난날에 우리는 단지 쇼팽을 들으러 간 게 아니라 코르토가 연주하는 쇼팽을 들으러 갔었고, 노바예스(Guiovar Novaes)의 예술에 귀기울이러 가고자 할 때 그녀가 무얼 연주하든 상관없었다. 페트리나 모이세이비치나 레비츠키의 연주회에 갈 적에는 그들이 무엇을 연주하거나 간에 그 음악이 마음을 사로잡고 영혼을 매만져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난날의 연주에서는 이런 종류의 피아니즘, 예술성이 오늘날의 연주보다 매우 큰 비중을 차지했었다.
   
그리하여 나는 앞으로도 당분간은 내 오랜 78회전 음반들을 듣게 될 듯하다. 소리가 예술성만큼 대단해진 시대라면, 그것도 의미있는 행동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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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 음반의 피아노 음질에 대한 것부터 피아니스트들의 개성에 대한 것까지, 100% 동감합니다(이 글을 처음 쓴 이후 모이세이비치, 레비츠키, 헤스 등의 녹음을 들었는데, 개성적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아마 코르토, 피셔, 슈나벨 등의 피아니스트가 현대의 콩쿠르에 나온다면 1등은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사람들은 기교로 유명한 것이 아닙니다. 코르토의 미스터치는 유명하며, 협주곡을 연주하다가 까먹어서 악보를 가져다 놓고 다시 연주한 적도 비일비재합니다. 피셔의 평균율을 들으면 미스터치 투성이입니다. 슈나벨..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녹음의 맨 처음에서 틀린 음이 많음을 지적받자 "다시 녹음하면 완벽은 하겠지만, 그리 더 좋지는 않을 걸세."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굴드의 경우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아마 예선에서 단박에 떨어지겠지요.
   획일적인 관문을 통과해 나오면 다소 획일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도 그렇지나 않은지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 합니다.
사실 획일적인 것을 요구하는 청중이야말로, 음악 연주의 발전을 가장 심각하게 저해하기 때문입니다.

[ 대필자 주 ]

  1. RCA/BMG에서 라흐마니노프의 대전집을 발매했다.
  2. 아마 지금부터 30년 후라면 현재의 그 많은 신보들도 아마 좋은 것 약 20%정도만 살아남을 것이다. 내가 약간 오래된 녹음을 좋아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3. 헤스의 슈만 협주곡 연주(Walter Goehr 지휘)는 Pearl에서 재발매했으며, 여기에는 '카르나발'도 들어 있다('카르나발'은 Philips의 피아니스트 시리즈의 헤스 편에도 들어 있다). 최근의 Naxos 발매에도 들어 있다.
  4. 현재 페트리의 연주는 APR CD 7024의 2장 세트로 베토벤 소나타 32번을 포함해 4곡, 브람스의 헨델과 파가니니 변주곡 등을 구할 수 있다.
  5. Naxos에서 얼마 전에 발매되었다.
  6. 레비츠키의 연주도 APR에서, 최근에는 Naxos에서 발매되었다.
  7. 우리 나라에서 이 연주는 Toshiba-EMI TOCE 7891~97의 7장 CD set 속에 끼어 발매되었는데, 지금 국내에서는 구하지 못한다. Music & Arts CD-662에도 들어 있는데, 수입된 적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8. Pearl CD GEMM 9396에서 'Cortot plays Liszt'라는 제목으로 발매되었고, Music & Arts CD-615에도 들어 있다.

(c) 1994~ , 이영록 ; 링크는 자유지만, 인용하시려면 우선 제게 메일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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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ed ; 15th Mar. 2000
Last update ; 12th Jan.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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