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벨릭 자신이 전집을 이렇게 구상했으며, 1970년 바이에른 라디오와 7번을 이미 녹음했지만 그 악단의 성격이 전집에서는 9번에 합당하다고 생각하여 7번을 빈 필과 재녹음했다. 단지 구성이 특이하다는 것 외에 각 오케스트라의 개성의 차이도 재미있으며, 보통의 전집이 일관성을 강조하는 데 비해 오히려 다양성에도 주목한 기획은 아주 신선하다. 쿠벨릭 원숙기의 음악은 말할 것도 없다. (의외로) 9번이 대단히 좋으며, 3번에서 두드러지듯이 전체적으로 지나치게 무겁게 되는 것을 피하고 선명하면서도 중용의 덕을 갖춘 훌륭한 전집이다.
　이탈리아제 박스로 잠시 나왔다가 곧 폐반됐기 때문에, 본사 발매로 1~3번은 아래의 희귀녹음 box, 4~6번과 7~9번은 각각 2for1 세트로 번거롭게 따로 구해야 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전부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한데, DG 본사에서 2for1 세트를 폐반시켰기 때문이다. 빨리 되살아나기를 바란다.

　그의 전 6곡 녹음은 스튜디오 실황 모두 적어도 7종은 된다. 내가 들어 본 Decca(빈 필), DG, Supraphon 녹음 중에서는 - 쿠벨릭 자신은 체코 필의 복귀 실황을 가장 좋아한 모양이지만 - 종합적으로 이 DG 녹음이 가장 좋다. 오케스트라가 기술적으로 전혀 흠잡을 데 없고 해석은 직설적이며, 인기곡인 1,2번에서도 대단히 진지한 연주를 들려 준다. CD 발매는 단독 음반보다는 다른 교향시 네 개 및 레바인의 ‘팔린 신부’ 발췌와 붙은 2for1을 권하고 싶다.

　모든 곡을 다 고르게 즐기기 어려운 드보르작 교향곡들보다 나는 이 녹음 쪽을 더 좋아한다. 쿠벨릭은 당연히 체코의 작품들에 특별한 연대감을 느꼈는데, 세련된 ‘슬라브 춤곡’과 ‘전설곡’, 강렬한 해석의 서곡집과 교향시집을 들으면 이 레파토리를 좀 더 애호해야 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CD에서는 ‘스케르초 카프리치오소’가 교향곡 전집에 들어갔고 ‘전설곡’이 스타바트 마테르와 붙어 있기 때문에 따로 모아야 하는 점이 좀 아쉽다.

　좋은 기획 box이다. 모차르트 ‘하프너’ 세레나데, 위에서 언급한 베토벤 교향곡 전집 중 1~3번과 7번의 단독 녹음, 멘델스존의 ‘한여름밤의 꿈’ 녹음과 리허설, 드보르작 현을 위한 세레나데, 베버 서곡 3곡 등 표준적인 레파토리 외에 체레프닌, 마르티농, 스트라빈스키, 쇤베르크 ‘구레의 노래’와 자신의 작품 등 현대 음악을 자주 다루던 그의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구레의 노래는 실황녹음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음향이 매우 좋으며, 멘델스존 서곡의 리허설에서 음향이 바뀌어 가는 것을 듣는 즐거움은 각별하다.

　클렘페러 음반과 함께 브람스 전집 최초의 스테레오 녹음으로 생각한다. 푸르트뱅글러의 강인하고 꿈틀대는 4번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너무 싱겁다고 생각하겠지만 - 사실 누가 듣더라도 힘이 넘친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 섬세하면서도 잘 흘러가는 음악은 40대 초반 쿠벨릭의 독자적인 해석을 잘 드러내 준다. 이 스타일 상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곡은 2번이며, 다음이 3번이다. 성음 라이선스 시절 1,4번이 발매되긴 했으나 2,3번은 나오지 않았고, 현재도 CD로 구하기가 그리 쉽지 않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