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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Szell(7th Jun. 1897 ~ 30th Jul. 1970)

[ From technique to perfection ]

George Szell [ from Sony Classical CD ]

   대형 개성형(個性形) 지휘자를 대표하는 푸르트뱅글러를 끝으로, 그런 류의 지휘자는 이제 더 나오지 않았음이 상식이다. 하지만 다른 스타일의 명지휘자는 계속 있어 왔다. 제임즈 골웨이가 '대단한 기교파로 기술적인 완벽을 추구한다'고 평했던 완전주의자,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을 더 이상 불가능할 정도로 치밀하게 연마한 '나는 실내악의 관점에서 오케스트라 단원의 집중력을 요구한다'던 앙상블리스트, 조지 셀은 그 대표적인 사람이다.

   죄르지 셀(György Szell)은 헝가리 부다페스트 태생이지만, 어릴 때 빈으로 이주하여 브람스의 친구였던 오이제비우스 만디체프스키 등에게 음악을 배웠고, J.B.푀르스터에게 작곡을, 리햐르트 로베르트에게 피아노를 공부했다(동문에는 루돌프 제르킨이 있고, 미국에서 많이 협연했다). 그는 10세에 빈 심포니와 모차르트 협주곡을 협연할 정도로 신동이었으며, 17세 때에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베토벤 '황제'를 독주 겸 지휘하고 같은 연주회에서 자작곡을 지휘했다.
   이런 화려한 청년 시절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유럽 오페라들을 거치며 성장했다. 베를린 왕립 오페라(1915~17), 스트라스부르(1917~18), 프라하(1919~21), 다름슈타트(1921~22), 뒤셀도르프(1922~24)를 거쳤고, 베를린 국립 오페라의 제 1 지휘자로 1924년 옮겼다. 이 기간 중 베를린 왕립 오페라에서는 R.슈트라우스 밑에 있었고, 그에게 직접 지휘를 배웠으며 그의 작품 레코딩 세션에서 지각한 그의 대역을 맡기도 했다. 뒤에 그의 작품을 많이 녹음했고 권위를 인정받았는데, 부분적으로는 직접 배운 점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후 1929년 프라하의 독일 오페라 정지휘자로 취임했는데, 이 시기부터 HMV의 녹음 명단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프라하로 연주 여행을 왔던 카잘스에게 우연히 제안해서 성사되었다는 1937년의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 녹음은 아직도 명연주로 이름 높으며, 런던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는 런던 필하모닉을 지휘하여 모이세이비치, 슈나벨 등과 협연했다. 이 음반들은 아직까지 CD catalogue에 다 살아 있다.
   그는 본격적으로 콘서트 지휘자로 1937년부터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프라하를 떠나 네덜란드 헤이그 레지덴티 오케스트라와 글래스고의 스코틀랜드 오케스트라의 상임을 맡으면서다.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1939년 셀은 우연히 1930년부터 객연했던 미국에 있었는데, 그대로 거기 남아서 활동하기 시작했고 후에는 귀화하여 이름도 '조지(George)'로 고쳤다. 토스카니니의 초빙으로 NBC 심퍼니를 지휘하기도 했으며, 특히 1942년부터 루돌프 빙이 주도하던 메트로폴리탄에 객연하여 명성을 높였다. 특히 바그너 오페라에 정평이 있었다고 전한다. 아직까지 '보리스 고두노프''탄호이저', '발퀴레'등의 실황 공연이 남아 있다. 나중에는 빙과 대립하여 "앞으로 절대 메트에 등장하지 않겠다"며 실제로 메트에서 한 번도 지휘하지 않았지만.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명성을 지금까지 퇴색시키지 않은 이유는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를 육성한 공로다. 에리히 라인스도르프가 상임을 맡고 있었는데, 1945년 셀이 객원 지휘했을 때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1946년 라인스도르프가 떠날 때 후임 물망으로 셀이 올랐다. 그는 전권(全權)을 위임받는다는 조건을 이사회에 내걸고, 이 조건이 승락되자 수락했다. 사람들은 셀도 라인스도르프나 로진스키처럼 더 좋은 오케스트라로 갈 사다리로 클리블랜드를 이용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셀은 그렇지 않았다. 성장할 조건은 있었으나 아직 유능한 오케스트라 조련사를 만나지 못했던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는, 이 역사적인 결단을 기점으로 현재 미국 top 3에 들어가는 거물로 성장했다. 셀은 이사회의 신임을 바탕으로 연주 일정, 프로그램, 단원 임면(任免)등을 모두 결정했다고 하는데, 원래 88명이던 단원을 104명으로 증원했고, 기존 단원의 2/3을 한 시즌 내에 갈아치워 가면서 지금과 같은 충실한 오케스트라로 일궈냈다. 는 지휘자로서는 대단히 엄격하여 타협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협연자 선정에도 대단히 엄격했다. 피에르 푸르니에의 회상은 유명하다. "처음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때의 프로그램이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중 한 곡과 R.슈트라우스의 '돈 키호테'였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저를 시험대 위에 올려 놓았던 것이죠." 1950년대 초에 이미 세계 1급 첼리스트로 명성을 얻었던 푸르니에마저 그의 시험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는 연주회에서 전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바흐를 혼자 연주해야 했다. 온화한 푸르니에였으니 망정이지, 포이어만이라면 아마 노발대발했을지도 모를 상황이었으리라1).
   클리블랜드의 치밀한 앙상블은 므라빈스키만큼이나 엄격한 훈련에서 기인하는데, 그의 오케스트라 조련은 '보통의 엄격한 수준'보다 훨씬 강력했다고 한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고 24년이나. 셀 자신은 "우리는 한 주일에 연주회를 여섯 번 여는데, 관객은 한 번만 볼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렇게 훈련받은 앙상블과 테크닉은 그의 사후 32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오케스트라의 핏속에 살아 있다. 한 예로, 90년대 중반에도 셀이 뽑아 놓은 단원들 중 그 동안 1/3만이 교체되었을 뿐이었다. 게다가 누가 객원 지휘를 오더라도, 단원들은 클리블랜드 시절의 전통 때문에 리허설 때 모두 꼿꼿이 앉아 지휘자만 쳐다본다고 한다. 심지어는 근래에 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사람들도 "내가 공을 들여 지휘해 훌륭한 결과를 얻는데, 찬사는 셀에게 간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을 정도다.

   클리블랜드를 육성하는 도중에도, 2차 대전 후 유럽이 안정되자 다시 객연을 활발히 가졌다. 잘츠부르크 음악제 출연(1948~69)외에 레코딩도 활발해서, EMI에서는 런던 심포니와 베를린 라디오 심포니를 지휘하고, DG에서는 단발로 푸르니에가 협연한 드보르작 협주곡, Decca에서는 친하던 클리포드 커즌의 협주곡 반주를 맡아 빈 필, 런던 심포니 등을 지휘했으며 후자와는 교향곡 등도 녹음했다. 특히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와는 관계가 길었는데, 단원들이 셀의 리허설을 감옥 같다고 비꼬긴 했어도 Philips/Decca에 약 LP 5장 분량을 남겨 놓았다. 클리블랜드를 이끌고 참가한 1967년의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는 당시 객원 지휘를 거의 안 하던 카라얀이 특별히 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2). 카라얀은 평시에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역량을 높이 평가했다고 전한다.
   그의 마지막 연주 여행은 19705월 말까지였다. 오사카 등을 거쳐 도쿄 우에노 문화 회관에서 22일 연주회를 가졌는데, 이 실황 녹음이 셀 최후의 녹음이다(일본 Sony에서 CD/SACD로 나왔다). 이 연주 여행 때 우리 나라에서도 드보르작 '신세계'를 포함한 프로그램으로 연주회를 가졌고(장소와 정확한 레파토리는 아직 확인할 수 없었다), 2개월 후인 730일 그는 클리블랜드에서 별세했다. 그는 자신의 건강이 악화되는 줄 알면서도 연주 여행에 응했다는데, 사인은 골수암이었다.

   그의 음악 스타일을 요약하면 간결함, 토스카니니적인 기교적인 완벽함, 오케스트라의 치밀한 앙상블, 직선적이고 (적절하지만) 강한 힘 등으로 규정할 수 있겠다. 이렇게만 말하면 같은 헝가리 출신인 프리츠 라이너(Fritz Reiner)와 구분이 안 간다고 불평할 분도 있을 텐데, 최소한 그는 앙상블 면에서는 라이너보다 훨씬 더 더 꼼꼼하다. 그는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를 맡을 때 '음악 표현을 위한 이상적인 악기'로 이 오케스트라를 만들 결심을 했다고 말했는데, 만년의 녹음들을 들어 보면 완벽주의자이자 실내악 연주에도 명인이었다던 셀의 경향이 그대로 나타난다. 카라얀이 미국에서 연주했을 때 '대편성 오케스트라도 실내악처럼 정치(精緻)하게 연주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평을 들었는데, 이 말은 아무래도 베를린 필보다는 셀/클리블랜드의 콤비가 받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여기에는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에 대해 놀랄 만큼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었다는 그의 치밀함이 한 몫 했음이 분명하다.

   왼편 자켓으로 염가로 나온 모차르트 교향곡집을 들어 보면, 현과 관의 치밀한 솜씨는 물론이고 특히 '주피터'4악장 푸가 처리가 파트당 한 사람씩만이 연주한 느낌을 줄 정도로 탁월하다. 이 까다로운 악장을 제대로 가닥 잡아 처리하기 뿐 아니라 푸가의 구조를 들려 주기는 절대로 쉽지 않은데, 셀은 이 둘을 너무 쉽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반면 정서적인 면에서는 이 연주를 다소 '군대풍'이라고 평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모차르트에게 센티멘털리즘(sentimentalism)은 없다"고 말했다는 칼 뵘의 엄격한 베를린 필하모닉 연주(DG)가 떠오른다. , 뵘과 셀이 다른 점은 뵘은 금관악기군(주로 트럼펫)을 거의 약주시켜 놓았는데 반해, 셀은 전면으로 확실히 떠올려 놓았다는 점이다. 사실 이 곡의 트럼펫은 음악적인 측면에서는 거의 중요하지 않은데, 두 연주의 인상은 이 점에서 이렇게 크게 달라진다. 빈에서 교육을 받고 자랐으면서도 그는 결코 모차르트를 '빈의 봉봉(bonbon)'으로는 다루지 않고 있다. 모차르트의 다른 레파토리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주지주의(主知主義)라 할 표현 방식은 가끔 작품을 놀랄 만큼 신선하게 들리게 해 준다. Sony의 음질 좋은 Masterworks Heritage series에는 셀의 녹음이 꽤 많이 들어 있는데, 특히 바르토크의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은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셀 콤비의 정교한 표현력이 잘 드러난 재미있는 연주다. 같은 헝가리계였던 라이너의 이 곡 연주(RCA)는 정평이 나 있는데, 좀 과장하여 둘의 공통점이라면 '엄격성(과 인 템포)'뿐 아닐까. 내게는 라이너의 연주는 한 방향으로 돌진하는 코뿔소, 셀은 감촉은 부드럽지만 내부는 단단한 구조가 서 있는 코르크(cork)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세련미에서는 셀이 확실히 한 수 위다. 누군가가 '벨벳으로 싸인 강철'이라고 셀의 연주를 평했다고 하는데, 이 연주는 그 좋은 예다. , 5악장을 듣다가 깜짝 놀라는 분이 계실 텐데, 악보의 일부를 셀이 생략하고 편집하였기 때문이다. 이 점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셀의 연주를 아주 좋아하는 편이지만) 라이너나 다른 연주 없이 바로 셀부터 들어 보시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20세기의 사고 방식의 기본으로, 원래 악보의 형태부터 아셔야 하지 않겠는가.

   그의 걸작 녹음에서 드보르작을 빠뜨릴 수는 없다. 셀이 정서적으로 너무 건조하다고 생각하신다면, 그의 드보르작을 추천하고 싶다. 헤리티지 시리즈에는 교향곡 7~9(1958~60년의 스테레오)이 올라가 있는데, 매우 훌륭하다고 평판이 자자하다. 결코 (우리가 바라는 만큼) 보헤미아 냄새가 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의 녹음 치고는 이례적일 만큼 서정이 표면으로 나와 있으며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이 훌륭하다. 교향곡 8번은 최후의 스튜디오 레코딩(70430일 마무리)EMI 음반으로도 구할 수 있는데, 커플링인 슬라브 춤곡 2곡과 함께 정밀한 앙상블, 부드러운 정서가 완전하게 조화를 이룬 정말로 훌륭한 연주이다. 염가로 구할 수 있는 '슬라브 춤곡'의 전곡 녹음(Sony), 세련되고 감칠맛이 감도는, 이 곡의 연주에서 항상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연이다.

   그의 다른 독일-오스트리아 음악도 경청할 만하다. R.슈트라우스가 특히 좋다. 작곡자에게 직접 배워서인지, '틸 오일렌시피겔', '돈 환', '죽음과 정화'(Sony)는 명연으로 알려져 있다. R.슈트라우스의 음향은 다소 무겁게 만들기 쉬운데, 셀의 연주는 항상 텍스처가 선명하고 결코 필요 이상 육중하게 들리지 않는다. 푸르트뱅글러처럼 그도 '차라투스트라'를 녹음하지 않았음이 안타깝다.
   
브루크너 연주는 클리블랜드와 정규 스튜디오로 교향곡 3,8(Sony), 빈 필하모닉과 잘츠부르크 실황 7(Sony)이 있다. 장대하면서도 그다운 깔끔한 연주이다. 말러는 4(Sony; 협연자 라스킨)6(Sony, 실황)이 있는데 내가 들어 본 6번에서는 역시 그다운, 비극적인 정서의 강조보다 전체의 치밀한 구성이 드러나는 연주다. 베토벤은 서곡집과 교향곡 전집이 있는데(Sony), 녹음에 대해 엔지니어와 상의하다가 셀 자신이 마음에 드는 마이크로폰을 자비로 사서 녹음에 썼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브람스 교향곡/서곡 녹음도 있는데(Sony) 하이든 주제 변주곡은 텍스처의 선명함에서 매우 칭찬할 만하다. 슈만 교향곡 전집(Sony)은 셀 자신이 '슈만의 마음을 보여 주겠다'고 말했다는데, '셀의 마음을 보여 준 연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헤리티지 시리즈의 비싼 가격이 문제긴 하지만.
   
그 외의 작곡가의 음반 중에서는 코다이 '하리 야노시' 모음곡, 프로코피에프 '키제 중위',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이 들어간 음반을 권하고 싶다(Sony 염가반). 존 컬쇼가 이끈 런던 Decca 세션들은 유명한데, 런던 심포니를 지휘하여 커즌과 브람스 협주곡 1, 헨델의 관현악곡,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을 녹음했다. 경이적인 사실은 이 객원 지휘에서도 앙상블이 클리블랜드를 지휘했을 때 못지 않다는 점이다. 런던 심포니의 적응력도 좋지만 셀이 제한된 시간 내에 오케스트라를 자신의 의도대로 장악하는 능력이 대단했음을 잘 보여 준다. 브람스 협주곡이야 너무 유명하니 내가 굳이 더 말할 필요가 없고, 헨델과 차이코프스키를 구하기 어렵다가 Original Masters 시리즈로 박스로라도 구할 수 있게 돼서 반갑다. 특히 (낡은 하티 편곡판이긴 하지만) 헨델이 대단히 훌륭하기 때문이다. 콘서트헤보우를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 5번과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은 낱장 CD로도 재발매됐는데(Philips; 지금은 오리지널 마스터즈 박스 안에 포함), 시벨리우스는 통상적으로 익숙한 영국-북유럽계의 연주와는 맛이 다소 다르다. 월튼, 힌데미트, 야나체크 등의 20세기 음악에서도 셀은 정평이 나 있는데, 아마 구조를 파악하여 정리하는 능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월튼 '힌데미트 변주곡'은 작곡자가 직접 셀/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의 연주를 듣고는 "고맙다... 이런 완벽한 연주에 대해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라 말한 정도로 훌륭했다는데, 클리블랜드와 연주한 녹음(Sony)을 구할 수 있다.

   셀의 레코드 레파토리 중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협주곡이다. 순수 교향곡/관현악곡 레파토리만 해도 엄청나지만, 셀은 특히 협연자 운이 좋았다. 위에서 언급한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은 특히 그렇다. 1937년에는 카잘스(HMV), 1962년에는 푸르니에(DG), 1969년에는 로스트로포비치(해적판)라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세 첼리스트와 모두 연주할 기회가 있었다. 이 곡의 팬이라면 아마 앞의 두 개 정도는 모두 갖고 계시리라 믿는다. 개인적으로는 푸르니에 협연은 이 곡의 기준으로서 가장 추천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는 브람스의 협주곡 4곡이 특히 좋다. 1938년 슈나벨과 협연한 피아노 협주곡 1(HMV)부터 시작하여 독주자들이 호화스럽기 짝이 없다. 특히 많이 추천되는 녹음은 커즌과 협연한 피아노 협주곡 1(Decca; 런던 심포니), 제르킨과 협연한 1,2(Sony), 오이스트라흐/로스트로포비치와 협연한 바이올린 협주곡2중 협주곡(EMI)이다. 바이올린 협주곡만 본사 CD 발매 목록에서 오래 빠졌다가 얼마 전에야 Great recordings 시리즈로 나왔고(왼편 자켓은 일본 발매 LP, 역시 일본 발매 CD도 들어왔다), 나머지는 전부 쉽게 구할 수 있다. 이 중 2중 협주곡은 거의 절대적인 위치에 올라 있다3). 베토벤 협주곡도 있는데, 피아노 협주곡 전집은 그가 아끼던 레온 플라이셔(Leon Fleisher)60년대 초까지(Sony), 1968년에 길렐스EMI에서 두 번 완성했다. 후자는 독주의 솜씨만 해도 초일류급이라 할 만 하며, 특히 '황제'가 돋보인다. 바이올린 협주곡은 1934년 후베르만/VPO 협연이 있는데(HMV), 오래 전부터 CD로 나와 있던 역사적인 연주다.
   
모차르트 협주곡도 꽤 많다. 제르킨과, 로베르 카자드쥐라는 두 Columbia 전속 피아니스트와 협연한 레코드들은 'long sell' 축에 끼는 고전인데, 특히 카자드쥐 협연이 유명하다. 카자드쥐 페이지에서 이미 설명했으니 여기서 다시 반복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아이작 스턴의 전성기에 녹음된 1,3,5번 협주곡(Sony)이 있다. 마지막으로, 매우 높은 신뢰를 받는 R.슈트라우스의 '돈 키호테'(Sony; 푸르니에가 첼로 독주)를 빼놓을 수 없으며, 같이 들어간 호른 협주곡 1(협연자는 블룸)도 언급하자.

   그는 젊었을 때 오페라 극장에서 오래 지냈고, 장년기에도 메트로폴리탄을 지휘했기 때문에 오페라 녹음이 많을 법한데도 불구하고 정식 스튜디오 녹음은 단 하나도 없다. 발췌라도 만족하신다면, 주저없이 바그너 '반지' 발췌를 추천한다(Sony; 오른편은 SACD 자켓임). 다른 전주곡/서곡들도 나와 있는데(역시 Sony고 라이선스로도 나왔었다), 매력이 '반지' 발췌만은 못해 보인다.
   그 외에 극음악이나 성악곡 반주라면 1969년 빈에서 빈 필하모닉과 녹음한 베토벤 '에그몬트' 극 부수음악(Decca), 슈바르츠코프를 반주한 R.슈트라우스의 '4개의 마지막 노래'와 가곡들(EMI; 런던 심포니와 베를린 라디오 심포니), 슈바르츠코프와 피셔-디스카우가 독창이라는 화려한 멤버의 말러 '아이의 이상한 뿔피리'(EMI; 런던 심포니)가 있다.

   그는 지휘봉을 들면 엄격과 고지식의 화신 같았고 도수 높은 안경 때문에 멀리서 보면 눈이 합쳐져 보여서 '외눈박이'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면 그렇게 사람 좋은 영감이 없었다고 전한다. 1954년 제 3 호른 주자로 출발하여 다음 해에 제 1호른 주자가 된(1977년까지 재직) 마이런 '마이크' 블룸(Myron 'Mike' Bloom)은 이렇게 말한다. "첫 해에 저는 (너무 긴장하여) 거의 좀비처럼 무대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습니다. 처음 중요한 솔로 파트를 다뤄야 하는 (R.슈트라우스의) '틸 오일렌시피겔' 연습에서 셀은 저를 무자비하게 몰아붙였고, 저는 거의 미칠 지경이었죠. 저는 '더 이상 이렇게는 못 하겠습니다'고 말하고, 연습 끝난 후 지휘자실로 갔습니다. 그는 들어오라고 했고, 저는 울음부터 터뜨렸습니다. 그는 포옹해 주었습니다. 믿을 수 없었죠...."

각주

  1. 포이어만은 성격이 나쁘기로 유명했다. 푸르트뱅글러가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을 자신과 협연하는 앞 프로그램에 놓았다고 격노했던 젊은 시절의 호로비츠도 아마 화내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2. 이 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연주회장에서 카라얀이 프로코피에프 교향곡 5번을 지휘하기로 예정되었는데, 이 곡에는 까다로운 첼로 파트의 부분이 있다. 셀은 연주회 전 첼로 주자들을 무대 뒤로 불러 따로 연습시켰다는데, 이것을 본 한 사람이 카라얀에게 "지금 셀이 하는 방식은 당신이 내내 강조한 방식의 정반대인데 괜찮겠어요?"라고 '고자질'했다. 카라얀은 "아, 저는 미처 몰랐습니다"고 답했지만, 실제로는 단원들이 셀한테 가도록 내버려 뒀다고 한다. 카라얀의 기억인즉 "그러자, 또 뭔가 색다른 연주가 나왔습니다".... 그 고집 센 카라얀이 그랬음도 재밌지만, 객원 지휘자가 알아서 할 문제까지 개입한 셀도 정말로 그 답다.
  3. 이 만년의 EMI 녹음 중 1968년의 길렐스 협연은 프로듀서 Paul Myers를 위시한 미국 Columbia의 기술진이 맡았으나, 1969년의 세션부터는 영국 본사의 Peter Andry 등이 맡았다.

The Resources

  • Yahoo! US ; Szell - history
  • Sony Classical CD MHK 63123 ; Reminiscence of Myron Bloom
  • Record images ; my records, Amazon(French and US regional division), Japanese HMV.

(c) 2003~, 이영록 ; 링크는 자유지만, 인용시에는 미리 메일을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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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ed ; 5th Jan. 2003
Last update ; 21st Jun.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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