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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fael Kubelik(29th Jun. 1914~11th Aug. 1996)

[ Sincere and earnest musician ]

Based on the contributed material at SPO magazine, May 2011 1]
Corrected on Dec. 2011

- 지금 푸르트뱅글러, 프리츠 부시, 오토 클렘페러 같은 거인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음악이 무엇인지 알려고 진지하게 노력하는 쿠벨릭 같은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요. (Andras Schiff)

Rafael Kubelik on session(from Testament SBT2 1322)

 우리 나라에서 라파엘 쿠벨릭을 무시하는 사람은 거의 못 보았지만 그렇다고 최고로 평가하는 사람도 별로 없는 모양이다. 사실 쉬프도 쿠벨릭을 ‘거인’ 등급으로는 보지 않았지만, 음악성 측면에서는 나는 그를 20세기 최고 중의 한 명으로 꼽는 데 전혀 주저하지 않는다. 최소한 카라얀에게 쏠린 (상당 부분 부당한) 비난을 그에게 하는 사람은 전혀 없다.

 라파엘 쿠벨릭은 저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얀 쿠벨릭의 35녀 중 여섯째로 체코의 비초리(Bychory)에서 태어났으며, 현대 레코드계에 남긴 유산은 아버지를 훨씬 능가한다. 라파엘은 아버지를 신처럼 생각했다고 하는데, 프라하 콘서바토리를 졸업할 때 파가니니 1번 협주곡과 자신의 바이올린 작품을 연주했다고 하니 바이올리니스트로 매진하려고 했어도 아마 최고 수준에 들기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의 반주자로도 일했고 피아노 녹음이 남아 있을 정도로2] 피아니스트로도 상당했다. 하지만 1928년 푸르트뱅글러의 지휘를 보고 감명을 받아 지휘를 하기로 결심한 후 체코 필하모닉을 20세 때부터 지휘했을 정도로 재능을 보여서, 불과 25세 때 브르노(Brno) 오페라의 음악 감독을 시작으로 나치 치하의 체코 필하모닉을 1944년까지 지휘했다. 그도 켐페처럼 나치를 싫어하여 나치식 경례를 거부했으며, 후에는 1948년 공산주의 쿠데타가 있자 그를 피해 “자유화될 때까지 돌아가지 않겠다”고 공언하며 서방으로 떠나고 말았다. “나는 이미 짐승 같은 나치 독재 치하에서 살았다. 원칙의 문제로, 다른 독재 아래에서는 살지 않겠다”고 인터뷰에서 얘기한 것을 보면, 체질적으로 간섭을 싫어하고 독재를 증오한 인물이었나 보다. 그는 1990년에야 체코 필하모닉에 복귀했는데, 애초에 자신이 1946년 조직을 도왔던 ‘프라하의 봄’ 음악제에서 스메타나 ‘나의 조국’을 지휘했으며, 이 실황은 Supraphon의 녹음으로 남아 있다.
 망명 후 발터의 추천으로 글라인드본에서 지휘한 이후 1950~53년 시카고 심포니, 1955~58년 코벤트 가든 등의 상임을 맡았으나 현대음악을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에 올린 그를 좋지 않게 생각하는 이사진 때문에 시카고 심포니에서 그만두는 등3] 강직한 성격 때문에 한 위치에서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1961년부터 18년 동안 바이에른 라디오 심포니를 맡은 것이 유일한 예외인데4], 이 때는 동시에 개시한 DG의 전속 계약과 함께 그에게 가장 충실한 시기였다5]. 이미 Mercury, HMV(EMI), Decca에 다수의 녹음을 남겼던 그는 DG에 베를린 필하모닉과 바이에른 라디오 심포니를 지휘하여 이전 녹음 레파토리의 대부분을 다시 녹음했다. 이 시기의 녹음 중 중심을 이루는 베토벤, 슈만, 드보르작, 말러의 교향곡 전집은 이름이 높다. 그가 얼마나 평가가 높았는지는, 한 사람이 이 네 작곡가의 - Decca에서 녹음한 브람스 전집까지 넣으면 다섯 명이다 - 교향곡 전집을 스튜디오에서 완성한 다른 사례는 아직 없다는 점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바이에른을 사임한 뒤에는 1980년대 중반 어깨의 관절염 때문에 정규적으로 지휘하기를 그만두고 앞에서 언급한 체코 필 복귀 등 특별 연주회만 맡았다. 그의 마지막 지휘는 199111월에 있었는데, 도쿄에서 9일 ‘나의 조국’과 프라하에서 11일 자신의 작품 ‘Invence a interludia’다. 그는 1996년 루체른 근교에서 타계했으며 프라하의 부친 무덤 옆에 묻혔다.

 쿠벨릭의 음악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쉬프의 말처럼 ‘진지함’인데, 선배들 중에서는 발터의 만년처럼 부드러운 따뜻함, 푸르트뱅글러의 살아 움직이는 템포, 클렘페러의 묵직한 중량감과 거대한 스케일, 의 정밀기계 같은 철저한 앙상블이 비교 대상일 게고, 동년배 중에서는 솔티의 강인한 힘, 번스타인의 활력과 좀 과장되기까지 한 서정, 카라얀의 세련된 정교한 연마 등 쉽게 두드러지는 특성이 없어서 일반적으로 지지를 좀 덜 받는지도 모르겠다. 부분적으로, 나는 그가 녹음을 싫어하지 않았더라도 부지불식간에 레코딩 스튜디오보다 실황에서 자신의 모습을 주로 드러내는 유형의 지휘자였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자신의 금언은 ‘con amore e umore(with love and humor)’ 였다는데, 그래선지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는 매우 인기가 있었지만 레코딩 세션에서는 연주가 충분히 연마되지 않아도 그냥 진행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월터 레그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그는 (세션에서) 집중력이 부족하다… 너무 쉽게 만족한다”라 말한다고 했으며, 존 컬쇼는 “빈 필하모닉의 세션에서 그는 오케스트라를 충분히 통솔하지 못해서, 녹음 통제실에 들어오는 소리는 ‘수영하는(swimming)’ 듯했다”고 회고했다.
 이러한 결점을 알면서도 HMV가 그와 1958년 재계약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그의 녹음은 인기가 있었으며, 내 사견으로는 DG 녹음 이후는 별로 그런 문제를 볼 수가 없다. 명실공히 DG 녹음은 그의 원숙기였으며, 이 때의 녹음에는 그의 진지한 음악이 대단히 성공을 거둔 사례들이 집중되어 있다. 가장 좋은 사례는 보스턴 심포니와 녹음한 ‘나의 조국’일 텐데, 극히 인기가 높은 ‘몰다우’에서도 격조 높은 표정은 ‘파퓰러 콘서트’와는 완전히 경지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쿠벨릭의 녹음 레파토리는 대단히 방대하며 인기곡의 경우 대부분 두 번 이상 남겼다. 1937년에 이미 HMV에 녹음이 있을 정도다. 1946HMV에 체코 필을 지휘해 다시 녹음을 시작했으며, 1948년 망명하며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본격적으로 HMV와 계약했다. 시카고 시절에는 HMV와 협정을 맺은 Mercury와 주로 녹음했으며, 1953~58년에는 빈 필하모닉과 Decca, 1958~61년에는 다시 HMV에서 로열 필하모닉과 빈 필하모닉, 1963~76년에는 DG에서 주로 베를린 필하모닉과 바이에른 라디오 심포니, 그 이후는 거의 바이에른 라디오 심포니와 1978~80년에는 CBS, 1981~85년에는 Orfeo와 주로 녹음했다. 초기와 후기 HMV 녹음들은 Testament가 꽤 발매했지만, Mercury 녹음은 현재 구하기 힘들며 DG 녹음들이 카탈로그에 가장 많이 남아 있다.
 고리적에 Philips에서 CD로 발매했던 Mercury 녹음은 시카고 심포니의 완성도 뿐 아니라 젊은 시기의 생기 있는 쿠벨릭을 대변한다고 명성이 자자하지만 나도 구하지 못했으니 생략하기로 하고, HMV 모노랄 시절에는 이다 핸델을 뒷받침해 준 베토벤과 브루흐 1, 푸르니에 솔로의 하이든 2, 솔로몬 협연의 브람스 1번 등 협주곡이 우선 떠오른다. Decca 시절의 인상적인 녹음은 푸르니에 독주인 드보르작 협주곡, 드보르작 교향곡 7,9, 브람스 교향곡 전집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첼로 협주곡은 푸르니에의 DG 녹음만 없었으면 역동적인 연주로 일급으로 추천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며 브람스 전집은 매우 독특한 연주로 칭찬받아 마땅하다. HMV 재계약 시기의 연주로는 빈 필을 지휘한 보로딘 교향곡 2번과 폴로베츠인의 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6번이라는 러시아 레파토리가 재미있는데, 비슷한 시기의 (내가 다소 외향적이라 생각하는) 므라빈스키 음반과 비교하면 쿠벨릭이 얼마나 고정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이 감정적인 레파토리를 다루었는지 확연하다. 그 외에는 로열 필하모닉을 지휘한 바르토크나 빈 필의 슈베르트, 모차르트 등이 있다. 모차르트는 41번을 CBS의 신반과 비교해 보았는데 오케스트라의 음색과 악기군의 균형이 더 낫다. 희귀성 때문에 자주 수집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으로는 그리 추천하고 싶지는 않지만 바이올리니스트 지오콘다 데 비토의 협연으로 모차르트 3번과 바흐 2번이 있다.
 DG 녹음은 베를린 필과 19632월 슈만 교향곡 1,4번에서 시작하여 19769월 바이에른 라디오와 드보르작 ‘스타바트 마테르’가 끝이다. 우선 기획이나 연주나 어느 모로도 최고급인 것은 베토벤 교향곡 전집으로 생각하며, 이미 정평을 얻은 보스턴 심포니의 ‘나의 조국’ 및 드보르작과 말러의 교향곡 전집이 유명하다. 말러의 전집은 화려한 외향성을 드러낸 녹음들 사이에서 담백하고 내면적인 연주로 돋보이는데, 7,8번 같은 거대한 규모의 곡에서도 이 성향은 여전하며, 바렌보임이 “쿠벨릭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내가 놓치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했을 정도다. 쿠벨릭은 모차르트를 경외했다고 하는데, 이 이미 많은 녹음을 했기 때문인지 DG에 한 녹음은 LP 2.5장이 전부다. ‘하프너’ 세레나데는 상쾌한 매력을 지닌 좋은 연주며, 대관식 미사 등은 진지한 분위기와 충실한 솔리스트들을 자랑한다. 장중하지는 않지만 솔직하며 투명한 슈만 3번 교향곡도 좋다. 특히 추천할 만한 것은 ‘슬라브 춤곡’과 ‘전설’ 등을 포함한 드보르작 관현악곡 전집 녹음이다. 이 시기에는 현대 음악도 상당히 녹음했으며 DGbox set로 구할 수 있다. 야나체크의 ‘글라골루 미사’, ‘사라진 사람의 일기’나 ‘타라스 불바’ 등은 그의 녹음이 거의 표준으로 꼽히고 있다.
 DG 시대 이후는 주로 바이에른 라디오를 지휘하여 녹음했는데, 그 때까지 DG에서 녹음하지 않던 브루크너와 모차르트 교향곡 등의 레파토리가 들어 있다. CBS에 있는 모차르트 후기 교향곡 중 5곡은 최근에 재발매되었는데, 들어 본 40,41번은 특별히 흥미롭지는 않았다. 뒤의 Orfeo 발매 중 스튜디오 녹음인 하이든 ‘천지 창조’는 추천할 만 하다. 바이에른 방송국에서 녹음한 실황이 AuditeOrfeo에서 꽤 많이 나와 있는데, 루돌프 제르킨을 받쳐 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집과 커즌과 협연한 베토벤 4,5번과 몇 모차르트 협주곡, 몇 말러 교향곡을 들을 수 있다. 커즌 솔로의 협주곡은 Decca의 스튜디오 녹음보다 음향이 자연스럽고 연주도 좋다.

 그를 콘서트 지휘자로만 생각하기 쉬운데, 경력 중 오페라 하우스의 경험이 상당히 있어서 그런지 오페라 스튜디오 녹음이 꽤 있다. DG의 ‘리골레토’, ‘로엥그린’, 피츠너 ‘팔레스트리나’, 베버 ‘오베론’, Decca의 니콜라이 ‘윈저의 명랑한 아낙네들’과 ‘마탄의 포수’, EMI의 ‘화가 마티스’, 바이에른 방송국 녹음의 ‘마이스터징어’와 ‘파르지팔’이 있다. 이 중 대단히 신선하고도 엄격하게 다듬어 낸 ‘로엥그린’은 훌륭한 가수진과 함께 정평이 있으며, ‘팔레스트리나’도 호화로운 가수진과 장대한 스케일, 박력 있는 연주로 이름이 높다(더군다나 지금은 Brilliant의 염가로 재발매). ‘마탄의 포수’도 색다른 맛이 있다. 그 외 코벤트 가든의 ‘트로이인’과 ‘오텔로’ 등 실황녹음들을 합하면 잘 연주되지 않는 작품을 꽤 높은 빈도로 다루었음을 알 수 있다. 쿠벨릭은 바이올린과 피아노, 지휘까지 연주가로서만이 아니라, 레파토리의 시대와 장르라는 점에서도 - 대부분 평균 이상의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 정말로 전천후 음악가였다.

각주

  1. 공개에 동의해 주신 SPO Magazine에 감사드린다.
  2. 에른스트 해플리거 등과 녹음한 야나체크 '사라진 사람의 일기'(DG)가 대표적.
  3. 미국 오케스트라의 이사진은 권한이 매우 강력하다. 유럽과는 달리 정부 보조금 등이 거의 없기 때문일 수도 있는데, 조지 셀이 클리블랜드에서 그렇게 큰 권한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도 이사진의 전적인 신임 때문이었다고 한다.
  4. 1974년 메트로폴리탄 음악 감독을 겸임했지만 채 1년 정도밖에 가지 못했다.
  5. 사실 바이에른 방송국 지위도 방송국의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아 부임 초기 사임하려다가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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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2011~, 이영록 & SPO; 링크는 자유지만, 인용시에는 미리 메일을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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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ed ; 31st Dec. 2011
Last updated ; 22nd Sep.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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